지리산 소쩍새가 물고 온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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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소쩍새가 물고 온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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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원규 네 번째 시집 <옛 애인의 집> 펴내

 
   
  ^^^▲ 이원규 <옛 애인의 집> 표지
ⓒ 솔^^^
 
 

밤새 너무 많이 울어서 두 눈이 먼 사람이 있다
('부엉이' 모두)

누가 밤을 새워 꺼이꺼이 울고 있는가. 누가 밤새 가슴 속에 맺힌 한들을 눈물로 씻어내려 하는가. 부엉이? 부엉이는 누구를 상징하고 있는가. 시인 자신인가? 아니면 이데올로기로 인해 지리산에서 그렇게 죽어간 빨치산들의 혼백이 부엉이로 환생하여 밤을 새워 울다가 당달봉사가 되어버렸단 말인가.

1998년, 갑자기 서울을 훌쩍 떠나 지리산 피아골에 있는 낡은 집에다 '피아산방'(彼我山房)이란 간판을 걸어놓고 시를 쓰고 있는 이원규(41) 시인이 네 번째 시집 <옛 애인의 집>(솔출판사)을 펴냈다. 이번 시집은 모두 66편의 시와 함께 사진작가 이창수씨의 지리산 풍경이 시와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밤마다
    이 산 저 산
    울음의 그네를 타는

    소쩍새 한 마리

    섬진강변 외딴집
    백 살 먹은 먹감나무를 찾아왔다

    저도 외롭긴 외로웠을 것이다

    ('동행' 모두)


6년 전, 10여 년 동안 밥줄을 지켜주던 서울을 버리고 지리산으로 들어가 '밤마다/이 산 저 산/울음의 그네를 타는//소쩍새 한 마리'가 되어버린 시인이 이원규다. 스스로 떠났던 세상살이였지만, 소쩍새가 울어대는 지리산의 밤은 몹시 외롭기만 하다. 문득 문득 이 세상에 남겨두고 온 사람들이 그립다.

하지만 시인은 서러움처럼 밀려드는 외로움을 견뎌내는 법을 안다. 오죽했으면 '백살 먹은 먹감나무"에 앉아 있는 소쩍새가 동무처럼 보였겠는가. 그랬다. 이원규는 고교 1학년 때 백화산 만덕사에 입산했던 경험이 있다. 그때 만약 신군부의 법난만 아니었다면 시인은 포승줄에 묶이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대로 스님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팍팍한 서울살이를 할 때에도 이원규는 늘 그때가 그리웠을까. 그래서 모든 것을 훌훌 벗어던지고 자신의 어머니(빨치산 아내)의 흔적이 묻어나는 그 지리산으로 들어간 것일까. 그리고 이제는 스스로 불상이 되어버리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노자의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도를 깨친 것일까. 그도 아니면 그의 말처럼 온몸으로 시를 밀고 나가기 위해서였을까.
 


    그믐께마다
    밤마실 나가더니
    저 년,
    애 밴 년

    무서리 이부자리에
    초경의 단풍잎만 지더니

    차마 지아비도 밝힐 수 없는
    저 년,
    저 만삭의 보름달

    당산나무 아래
    우우우 피가 도는
    돌벅수 하나

    ('월하미인' 모두)


자신과 역사 앞에 놓인 현실을 사실 그대로 노래하던 이원규 시인. 그런 시인이 자기에게 주어진 현실을 남겨둔 채 그렇게 지리산으로 들어가 버리다니. 그가 6년 동안 지리산에서 얻은 것은 풍경소리처럼 맑은 시편들이었을까. 아니다. 그가 지리산에서 얻은 것 또한 저만치에서 바라본 이 세상살이다.

하늘에 걸린 달이 그믐이 되었다가 다시 만삭으로 차오르듯이 그가 얻은 것 또한 자연과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사람살이다. 시인이 바라보는 그믐밤은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요, 보름달은 만삭이며, '당산나무 아래/우우우 피가 도는 /돌벅수 하나'는 새롭게 태어난 아기였던 것이다.
 


    행여 봉두난발로 울고 싶은 날
    신갈나무 숲으로 오세요
    꺾어버린 나뭇가지 아래로
    미나리아재비과의 나를 찾아오세요

    다만 한 가지
    잊지는 마세요
    그대가 외면하는 동안
    나도 몰래 시퍼렇게
    독초가 되었다는 사실을

    ('홀아비바람꽃' 몇 토막)


시인은 지리산 곳곳에서 자라고 있는 야생초들을 사람살이에 비유한다. 그래서 '행여 봉두난발로 울고 싶은 날'이면 '미나리아재비과의 나'를 찾아오라고 한다. 그리고 나즈막하게 이렇게 속삭인다. '그대가 외면하는 동안/나도 몰래 시퍼렇게/독초가 되었다' 라고.
 


    남들 출근할 때
    섬진강 청둥오리 떼와 더불어
    물수제비를 날린다
    남들 머리 싸매고 일할 때
    낮잠을 자다 지겨우면
    선유동 계곡에 들어가 탁족을 한다
    ......

    일하는 것이 곧 죄일 때
    그저 노는 것은 얼마나 정당한가
    스스로 위로하며 치하하며
    섬진강 산 그림자 위로
    다시 물수제비를 날린다
    이미 젖은 돌은 더 이상 젖지 않는다

    ('독거' 몇 토막)


그리고 "남들 출근할 때/섬진강 청둥오리 떼와 더불어/물수제비를 날"리고, '남들 머리 싸매고 일할 때/낮잠을 자다 지겨우면/선유동 계곡에 들어가" 발을 씻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일하는 것이 곧 죄일 때/그저 노는 것은 얼마나 정당한가'라며 스스로 위로한다. '이미 젖은 돌은 더 이상 젖지 않는다'라며 아직도 흔들리고 있는 자신의 마음에 쐐기까지 박는다.

'지리산에 얼굴을 묻고 생의 한철 잘 놀았다. 詩(시)는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라 했던가. 6년 만에 남은 것은 이것뿐이다' 라고 자서(自書)에 밝혀놓은 이원규 시인. 그는 언제쯤 '옛 애인의 집'으로 다시 돌아올 것인가. 아니, 그는 언제쯤이면 시라는 화두마저 모두 깨버리고 진정한 자유인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옛 애인의 집>은 지극히 현실주의자였던 시인 이원규가 그 현실을 저만치 놓아두고 그 스스로 자연이 되어 다시 이 현실을 바라보고 있는 시편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시인 이원규는 주어진 현실을 도피한 것이 아니다. 아니, 더 주어진 현실을 깊이 있고 폭넓게 바라보기 위해서 오늘도 지리산에 그렇게 머물러 있는지도 모른다.



 

 
   
  ^^^▲ 이원규 시인
ⓒ 이종찬^^^
 
 

시인 이원규는 누구인가?
1980년 신군부 법난 때 포승줄에 묶여 하산

"'다래술을 담그며'를 읽을 때엔 곰삭은 친구와 술 한 잔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거울 속의 부처'에서는 존재에 대한 근원적 물음 앞에 선 벌거벗은 한 인간의 고뇌가 가슴 저렸고, '봄비 속으로 사라지다'를 읽으니 알 수 없는 외로움에 끈끈한 정이 그리워졌다" (지리산 실상사 주지, 도법 스님)

시인 이원규는 1962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1984년 <월간문학>에 '유배지의 풀꽃'을, 1989년에는 <실천문학>에 연작시 '빨치산 아내의 편지'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대구에서 대학을 다니던 그는 1984년 휴학을 한 뒤 홍성광업소로 들어가 막장 광부로 일했다. 그 후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온 이원규는 <노동해방문학>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일했으며, <월간 중앙>에서 기자생활을 하기도 했다.

시집으로는<빨치산 편지><지푸라기로 다가와 어느덧 섬이 된 그대에게> <돌아보면 그가 있다>가 있으며, 산문집으로 <벙어리 달빛>을 펴냈다. 1998년에는 시집<돌아보면 그가 있다>로 제16회 신동엽창작기금을 수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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