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러독사 노무현은 민주주의 도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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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러독사 노무현은 민주주의 도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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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독특한 버릇

 
   
  ^^^▲ 노무현 대통령^^^  
 

1. 페러독사

페러독사(paradoxa)란 페러독스(역설, 궤변)를 말하는 자라는 뜻으로 그리스 시대의 소피스트들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할 일은 없고 말로 벌어먹고 사는 자들이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며 결국은 역설을 말하는 말싸움꾼을 지칭하는 말이다.

헬라어로서 명사의 끝에 a를 붙이면 남성명사가 되어 버린다. 페러독사의 역사는 로마의 정치가·법률가·학자·작가로 이름높았던 시세로 (Marcus Tullius Cicero)의 저술에 등장한다.

시세로가 BC 46년에 저술한 “브루투스, 궤변론자, 웅변가” (Brutus, Paradoxa, Orator)에 등장한다. 이는 서양철학에 나오는 이야기이고 문학에서는 디아트리베(diatribe)=논쟁자로 말하기도 한다.

생물학(곤충학)에서의 페러독사도 있다. 페러독사란 사마귀의 일종이다. 교미를 마치고 나면 여지없이 수컷의 머리부터 으적으적 깨물어 먹는 모습이 이율배반적이며 도무지 가납할 수 없고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종자인지라 역설적 궤변론자를 뜻하는 페러독사라는 이름을 붙였다.

또 뿔 달린 개구리에도 페러독사(flog-Paradoxa)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개구리에 뿔이 달렸거나 사마귀이거나 둘 다 역설적이다.

궤변론자인 페러독사들에게는 전형적인 어법의 틀이 있다. 철저한 이중적인 논리가 그 특징이다. 곧 진리를 희석해서 자신의 주장을 옳은 것으로 만들어내는 궤변은 자신의 주장임에도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 앞에서는 반드시 이중적인 어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정일은 전형적인 페러독사이다. 그의 말은 전세계적으로 신용을 잃어버린 궤변이요, 앞으로는 평화를 말하고 뒤로는 잔인하고 야비한 술수로 무장한 페러독사일 뿐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을 좌파적 신자유주의자라고 표현했다.

좌파도 아니고 우파도 아니라는 묘한 주장인데 이런 주장이 전형적인 페러독사들의 전형적인 언어구사법이다. 즉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고 궤변을 늘어놓는다는 뜻이다.

현재 노무현 대통령의 노선을 따르고 있는 이종석 라인의 언어구사 역시 동일한 페러독사의 어법을 사용한다. 국회 국감현장에서 반복되고 있는 이종석 장관과 한명숙 총리의 당근과 채찍론 역시 궤변이다.

2. 페러독사의 원조

자랑스럽게도 한국의 대통령 중에 페러독사의 원조는 김대중이다. 김대중은 김영삼 대통령과의 대선에서 어이없는 표차로 낙선하자 자신의 입으로 정계은퇴를 확고히 선언하고 혹시 뒤따를지도 모를 후환을 피해나갔다.

이후 IMF사태를 빙자하여 소위 5.18 민주화운동권의 추대를 받는 외관상의 형태를 취하며 슬며시 정계에 복귀하여 대통령직을 움켜쥐었다. 이 부분에서는 식언자라는 표현이 가장 적합하다. 대통령이 되고 난 후의 행보는 전형적인 페러독사이다.

김대중은 햇볕정책론을 내어 놓으면서 북한의 전쟁위협을 강조했고 평화를 위한 남북정상의 대화라는 이중어법을 사용했다.

국민에게는 이 수단 밖에 없다는 공갈을, 북한의 김정일에게는 러브콜을 던졌다. 미국까지 속아 넘기기 위해 국정원을 통해 북한에 달러를 퍼부어 주고 남북정상회담을 이끌어 냈던 이중행보는 사기이며 페러독사의 전형이다.

페러독사는 이들에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송두율과 오슬로 대학의 박노자, 강정구 등 친북색깔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서 특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페러독사가 되기 위해서는 달변가이며 웅변가라는 전제조건이 성립이 되어 있어야 한다. 거짓을 진실보다 더 진실되게 포장할 수 있는 언어구사의 능력이 있어야 한다.

성경은 모든 거짓의 아비는 사탄이라고 했다. 사탄이 하는 일은 진리를 희석하여 거짓으로 만들어 놓는 일이다. 모든 언어에는 뜻이 있고 반대의 개념이 동전의 양면과 같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뒤집으면 반대가 되고 만다.

페러독사들은 양면을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이중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독특한 버릇이 있다.

3. 페러독사의 쩍쩍이

페러독사의 입에서 나오는 주장을 들어 보면, 분명 원래의 뜻과 다른 말을 하는데 개념상으로는 틀린 것이 없다. 하지만 글로 표현될 때는 이 대목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들의 말에서는 뜻이 모호한 단어 몇 개가 결정적인 주장을 하는 대목마다 반드시 차용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가령 포괄적, 상징적, 점진적, 포용적, 정치적, 현실적 등 쩍쩍이(관형사)가 붙어 있는 단어를 빈번하게 사용한다는 특징이다.

노 대통령의 말을 들어 보면, 한 문장에 무려 3, 4개의 쩍쩍이(관형사)가 들어 있다. 만약 쩍쩍이가 붙어있지 않다면 만들어 붙여서라도 한 문장에 반드시 1개 이상을 들여다 쓴다. 왜 이렇게 쩍쩍이를 좋아할까?

명사의 뒤에 붙거나 붙이거나 하는 ‘-적’ 이라는 쩍쩍이는 1인칭 단수를 3인칭복수로 만들어 버린다. 예를 들어보자. ‘정치’는 명사이다. (설명을 위해 명사를 1인칭단수로 표현한다)정치에 적을 붙이면 ‘정치적’이 되는데 정치적은 명사이면서 관형사로 쓰인다.

명사에 적 하나가 붙으니 당장에 3인칭복수가 되고 말았다. 정치라고 하면 듣는 사람은 정치라는 단 하나의 명사를 떠올리는 반면, 정치적이라고 하면 정치에 관련된 그런 것이라는 3인칭 복수의 개념으로 떠오른다.

순수한 사람의 용어사용은 단순하면서 명료한 단어를 사용하나, 소위 꾼들은 복잡하면서 모호한 단어를 사용하는 특징이 있다. 이 용어 사용에 따라서 순수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갈린다. 순수한 사람의 말에는 쩍쩍이가 붙지 않는다.

순수한 사람은 나와 내 책임이라는 경계가 명확하다. 그러나 꾼은 책임의 경계에서 나는 빠지고 너희가 등장한다. 쩍쩍이를 사용하는 원인이 여기에 있다.

명사에 관형사를 붙여 만든 쩍쩍이가 몇 개 들어가면 뜻이 완전히 달라진다. 나는 없고 너희들로 둔갑해 버린다.

뜻이 전혀 달라졌는데도 개념상으로는 틀린 말은 아닌 것으로 들려진다. 하지만 기록되면 사정이 다르다. 몇 개의 단어의 뜻을 의도적으로 다르게 말한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페러독사들은 언론을 싫어한다. 언론과 싸우는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말은 한 순간에 허공으로 날아가 사라지지만, 글은 그대로 남아 있다.

언론은 이들이 남겨 놓은 말을 근거로 활자화하여 비판한다. 모든 학문이 책이나 글을 비판의 근거로 삼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말은 뒤집으면 바뀌지만 글은 뒤집지 못하게 되어 있다.

아무리 발뺌을 해도 녹취록이 있고 말보다 더 빨리 기록할 수 있는 속기사들이 있다. 노 대통령이 좌파적 신자유주의자라고 자신의 정체를 밝힌 것은 더 이상 뭉기고 나갈 수 없는 명백한 증거물들이 언론과의 싸움과정에서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조중동의 필봉들은 과거 박정희 대통령시절부터 날카롭게 비판해 왔던 관록이 있는 필진들이며 마음만 먹으면 누구의 사상이라도 분별해 낼 수 있는 실력자들이다. 그 날카로운 필끝은 페러독사들의 폐부까지도 드러낼 수 있을 정도로 예리하다.

노무현 시대에 좌파의 대명사로 떠오른 학자들이 있다. 송두율, 강정구, 박노자의 노선이다. 이들의 사상이 좌파라는 것은 그들이 강연한 내용이나 혹은 좌담에서 혹은 강의를 통해 주장한 내용을 가지고 판단한 것이 아니다.

이들이 학자라는 지위(학문의 자유에서 너그럽게 인정하는 전문가라는 지위)를 사용하여 좌파사상을 전파하기 위해 남겨 놓은 글이 있기 때문에 그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보수필봉들의 수준은 현재 좌파 페러독사들을 감별해 내는 수준까지 도달해 있다. 이분들 가운데 조갑제, 지만원 씨의 필은 직설적이며 명료하기 이를 데 없는 날카로운 필을 가진 분으로 평가된다. 대한민국의 사상가들은 아직 죽지 않았다.

4. 페러독사 노무현, 5.7%의 상징적 의미

인권을 앞세운 노무현의 페러독스(paradox)는 소수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논리로 민주주의를 도살했다. 민주주의란 다수결의 원칙을 가지고 있다. 다수를 위해서라면 소수의 논리나 주장은 묵살되게 되어 있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통전적인 접근으로 갈 때, 다수의 입장은 다수를 위한 논리를 준거로 하게 되어 있다. 소수의 논리는 그들만의 논리라는 뜻이다.

적어도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들은 나와 너의 유익을 추구하게 되어 있지 자신만의 유익을 추구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다수의 그들이란, 소외계층을 말할 수도 있겠으나 이익집단을 말할 수도 있다. 둘 다 자신들의 유익을 구하는 계층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평범한 다수의 입장은 서로의 입장이며 모두의 입장으로 공존하는 원리를 담보하게 되어 있다.

특히 노무현 시대에 들어 와서는 소수의 인권 보호라는 미명하에 기획탈북이니 조용한 외교니 과거사 정돈이니 인권위원회니 여성인권보호니 수도권이전이니 국정홍보니 등등의 듣도 보도 못한 용어들이 하루를 멀다하지 않고 뉴스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결국 하루 자살자 40명, 최고의 이혼률과 최저의 출산률, 살인적인 세금율과 바다이야기 여기에 부동산 정책 자폭에 핵실험까지, 거리에는 넝마주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넘치고 굶어 죽는 사람들의 수도 매년 1000명을 넘는다니 대체 소수의 인권보호는 어디로 갔나. 천자봉으로 날아갔나. 작년 한파에 얼어 죽었나.

소수의 약자를 보호한다는 인권의 논리는 탈북자에게만 적용되어진 논리에 불과했다는 증거이며 북한의 김정일을 지원하기 위한 말장난이었음이 방증되어졌다.

5.7%. 노 대통령의 국정지지도의 수치이다. 참여정부를 통해 4년 동안 국정을 펼친 결과가 5.7%의 국민에게만 잘해주었다는 뜻이다.

이 말은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5.7%의 소수자를 위한 정책을 펼쳤다는 말이다. 5.7%에는 포함되어 있는 사람들은 누굴까. 인권과는 하등 관계가 없는 참여정부의 공직자, 공무원 등과 친북자들만 재미를 봤다는 소리이다.

친북좌파론자, 신자유주의론자, 사상의 이중국적을 가지고 말놀음으로 세월을 보내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도살한 노무현 대통령. 그는 민주주의 도살자이며, 페러독사일 뿐이다. 그에게 프록페러독사라는 별칭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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