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송키는 봉림삣쭉 송킨갑다
스크롤 이동 상태바
이 송키는 봉림삣쭉 송킨갑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 추억 속의 그 이름> 송곳대

 
   
  ^^^▲ 매실이 노랗게 익어가고 있다
ⓒ 이종찬^^^
 
 

송곳대야 송곳대야
장끼처럼 푸더덕 푸더덕 날아가서
보리밭에 깜부기 쑤욱쑤욱 뽑아내어
통통하게 살 찐 쌀보리로 피어다오

송곳대야 송곳대야
대낮에도 어른대는 허깨비 같은 보릿고개 끌어다가
굶어 죽은 순이 아배 무덤가에
할미꽃으로 피어 비석이 되어다오

송곳대야 송곳대야
촘촘 솟은 탱자나무 가시 따서
이내 손발에 버찌처럼 송송 돋는 소버짐
뿌리까지 모조리 따가주

쌀보리가 제법 알이 차오르고, 파아란 매실이 어른 손가락 한마디 크기 만하게 열릴 때면 삐비가 희고 길쭉한 꽃대를 밀어올렸다. 우리 마을을 휘돌아 흐르는 도랑가 여기저기에서도 하얀 찔레꽃이 피어나고, 마을 곳곳에서는 아카시아꽃이 하얗게 피어나기 시작했다.

보릿고개가 시작되고 있었다. 해마다 그맘 때가 되면 본격적인 보릿고개가 시작된다는 증표였다. 특히 그때가 되면 그나마 우리들 허전한 입을 채워주던 삐비도, 찔레순도 먹을 수가 없었다. 삐비는 이미 속살이 밖으로 길쭉하게 삐져나와 버렸고, 찔레순도 그 여린 가지가 나무토막처럼 딱딱해지기 때문이었다.

"가자."
"오데로?"
"아카시아꽃이나 따 묵으로 가자."
"아카시아꽃은 향기는 좋은데 묵으모 비릿해서 파이다(안좋다)."
"그래도 배가 고픈데 우짤끼고."
"그라지 말고 송키나 베끼(벗겨) 묵자."

그랬다. 야트막한 앞산과 마을 곳곳에 하얗게 매달린 아카시아꽃은 우리 마을에 아카시아 향수를 뿌린 것만 같았다. 하지만 우리들의 허기진 배를 채우기에는 그리 좋지 않았다. 아카시아꽃은 처음에 입에 넣으면 달착지근했지만 뒷 맛이 몹시 비릿했다. 그리고 많이 먹으면 헛구역질이 올라오기도 했다.

앞산에 몇 그루 있는 벚나무에 매달린 버찌도 빨간 빛을 띠고 있어 아직 따먹을 때가 아니었다. 버찌는 머루처럼 까맣게 변해야 따 먹을 수가 있었다. 산딸기도 빛깔은 제법 빨간 빛으로 변해가고 있었으나 이 주일 정도 더 기다려야만 했다. 보리서리를 하기에도 조금 일렀다.

 

 
   
  ^^^▲ 송곳대야 송곳대야
ⓒ 이종찬^^^
 
 

그때가 되면 우리는 낫을 들고 다랑이밭이 계단을 이루고 있는 앞산으로 몰려들었다. 그 앞산 남쪽자락에는 살구나무와 복숭아나무가 심어져 있는 과수원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그 과수원 바로 옆에는 공동묘지가 있었다. 그 공동묘지 주변에는 소나무가 마치 울타리처럼 빼곡이 둘러쳐져 있었다.

"송충이가 붙어 있을지도 모른다. 잘 보고 비라(베라)."
"새순이 올라오고 있는 바로 요 아래 있는 송키가 물이 철벅철벅하게 나오는 기 진짜로 맛있는 송키다."
"중간 가지는 비지 마라. 소나무가 난쟁이가 되모 우짤끼고."

그랬다. 우리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이 소나무 중간 가지는 베지 않았다. 그리고 소나무 곁가지 중에서도 마악 파아란 새순이 돋아나고 있는 바로 아래 가지를 낫으로 베어냈다. 그리고 파아란 새순을 낫으로 잘라낸 뒤 새순 아래 있는 소나무 가지의 껍질을 낫으로 슬쩍슬쩍 벗겨냈다.

소나무 껍질을 벗겨낼 때에도 약간의 손재주가 필요했다. 왜냐하면 소나무의 거무스름한 겉껍질만 얇게 벗겨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하얀 속껍질만 남으면 마치 하모니카를 불 듯이 입에 대고 이빨로 긁어 먹었다. 소나무 속껍질은 보기보다 물기가 많았고 제법 달착지근하면서도 향긋했다.

"에이! 이 송키는 봉림삣쭉 송킨갑다."
"와?"
"봉림삣쭉 심뽀 맨치로(처럼) 바싹 말라가꼬 물기 하나 안 나온다 아이가."
"그라이 송키로 잘 보고 비라 안 카더나. 그라고 니가 빈 그 송키처럼 빼빼 마른 그런 거는 못 묵는다카이. 퍼뜩 가서 새로 비가 온나."

 

 
   
  ^^^▲ 여린 순의 아래 마디를 잘라 껍질을 벗겨 먹었다
ⓒ 이종찬^^^
 
 

그렇게 소나무 속껍질을 이로 모두 긁어먹고 나면 마치 엿가락처럼 하얀 송곳대만 남았다. 하지만 우리들은 그 송곳대를 아무 곳에나 버리지 않았다. 우리들은 몇 개씩이나 긁어먹고 남은 그 하얀 송곳대를 하나씩 들고 송곳대야, 송곳대야, 라고 소리치면서 저마다 무슨 소원을 빌다가 산골짝을 향해 휙 집어던졌다.

나도 그때 그 송곳대를 오른손에 들고 허공으로 휘이 돌리면서 빌었던 소원이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 내가 무슨 소원을 빌며 그 송곳대를 던졌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어렴풋하게 기억나는 것은 끼니 때마다 외할아버지 밥상에 오르던 그 허연 쌀밥을 배불리 먹게 해달라고 빌었던 것 같다.

"아나?"
"그기 뭐꼬?"
"삶은 감자다."
"이 귀한 기 오데서 났더노?"
"우리 옴마가 아까 아부지 중참한다꼬 정지(부엌)에서 삶았다."
"니는?"
"아까 많이 묵었다."

그래. 우리들이 송키, 라고 부르던 그 소나무 가지. 속껍질을 모두 벗겨먹고 나면 이내 이름이 송곳대로 바뀌던 그 소나무 가지. 지금도 파아란 새순이 길쭉하게 돋아나고 있는 소나무 가지를 바라보면 그 맛있던 송곳대의 기억과 함께 문득, 한쪽 눈을 찡긋하며 하얀 덧니를 드러내고 배시시 웃던 그 가시나가 생각난다.

 

 
   
  ^^^▲ 송홧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 이종찬^^^
 
 

그 가시나는 나만 보면 아나, 하면서 여러 가지 먹거리를 주곤 했다. 그러면 나는 그게 뭔지 뻔히 알면서도 일부러 그기 뭐꼬? 하면서 그 가시나가 건네주던 먹거리를 받아먹곤 했다. 그리고 나는 입에 침을 꼴깍 삼키면서도 그 가시나한테 니는? 하고 물었다. 그러면 그 가시나는 늘 아까 많이 묵었다고 했다.

그 가시나와 나의 대화는 그것뿐이었다. 그저 눈빛만 보아도 서로의 속내를 뻔하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가시나와 나는 누군가처럼 손 한번 잡지 않았다. 그저 음식을 주고 받으면서 잠깐 잠깐 닿는, 그리고 그때마다 찌릿하게 전해오는 그 가시나의 따스한 체온을 느끼는 게 전부였다.

아나
그기 뭐꼬?
내 맴(마음)이다
니는?
니 맴을 가꼬 안 있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기획특집
가장많이본 기사
뉴타TV 포토뉴스
연재코너  
오피니언  
지역뉴스
공지사항
동영상뉴스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 서울특별시 노원구 동일로174길 7, 101호(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617-18 천호빌딩 101호)
  • 대표전화 : 02-978-4001
  • 팩스 : 02-978-830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종민
  • 법인명 : 주식회사 뉴스타운
  • 제호 : 뉴스타운
  • 정기간행물 · 등록번호 : 서울 아 00010 호
  • 등록일 : 2005-08-08(창간일:2000-01-10)
  • 발행일 : 2000-01-10
  • 발행인/편집인 : 손윤희
  • 뉴스타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타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towncop@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