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무언가가를 기다리는 빈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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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무언가가를 기다리는 빈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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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보는 세상 61> 박몽구 “빈잔”

 
   
  ^^^▲ 갯쑥부쟁이그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 우리꽃 자생화^^^
 
 

너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시간은 기린 목보다 길다
문 밖으로 돌려진 내 마음은
술이다
벌겋게 타고 있다
내가 걷고 있는 길이
돌밭뿐인데도
기꺼이 뿌리를 내려
이쁜 꽃이 된 사람아.

오늘은 왜 이리 늦는지
너를 기다리고 있자면
나는 다 비어서
빈 잔이 된다
채워지기를 기다리며
저물도록 말라가고 있다.

누가 그랬던가요. 잔은 채워야 제 멋이 난다고. 그렇습니다. 선반 위에 가지런하게 엎어진 빈 잔은 아무리 바라보아도 그리 허전하게 여겨지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바로 세워진 잔, 하필이면 텅 비어 있는 그런 잔을 바라보면 어딘가 모르게 쓸쓸하고 허전하게만 느껴집니다.

빈 잔의 그 비좁은 공간, 그 공간이 왜 그리도 슬퍼게 보이는 것일까요. 마치 누군가 자신의 텅 빈 공간을 채워주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10분이 지나고, 1시간이 지나고, 다시 2시간이 지나도 아무도 그 빈 잔을 채워주지 않습니다.

누군가 그 잔을 얼른 씻어 선반 위에 가지런하게 엎어놓았다면 그리 슬프게 보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언뜻 보면 금방이라도 누군가가 그림자처럼 소리없이 다가와 저 빈 잔을 채워줄 것만 같습니다. 빈 잔 또한 긴 목을 쭈욱 빼고 흔들림 없이 그렇게 똑 바로 서 있습니다. 빈 잔은 누구를 저토록 애타게 기다리는 것일까요.

시인은 진종일 그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다리는 사람은 바로 시인의 메말라가는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줄 그런 사람, 바로 마음이 아름다운 그런 사람일 것입니다. "너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시간은 기린 목보다 길다/문 밖으로 돌려진 내 마음은" 술이 되어 "벌겋게 타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다리는 아름다운 사람은 좀처럼 오지 않습니다. 돌밭을 걸어가고 있는, 앞으로도 그렇게 걸어가야만 할 시인에게 서슴없이 다가와 따스한 사랑으로 감싸준 사람. 그 아름다운 사람은 바로 시인이 몹시도 사랑하는, 그리고 목숨을 바쳐서라도 끝까지 지켜주어야 할 사랑하는 그 사람입니다.

그 아름다운 사람 또한 시인의 마음과 같습니다. 아름다운 그 사람은 채워도 채워도 늘 비워지는 시인의 마음을 행여 놓칠새라 늘 곁에 서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혹시나 잘못하여 제풀에 넘어져 깨지지는 않을까, 혹시나 실수를 하여 잔이 쏟아지지는 않을까, 늘 지켜보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아무리 기다려도 그 아름다운 사람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천천히 목이 말라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조바심까지 듭니다. 행여, 오다가 교통사고라도 나지 않았을까. 갑자기 무슨 큰 일이라도 생긴 것일까. 좌불안석입니다. 그래서 시인의 마음은 진종일 저 빈 잔처럼 쓸쓸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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