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허기진 창자에 몸 푸는 무청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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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허기진 창자에 몸 푸는 무청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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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보는 세상 59] 강형철 '무청 실가리'

 
   
  ^^^▲ 막 수확기에 접어 든 매실
ⓒ 이종찬^^^
 
 

목이 잘린 채
축 늘어진 머리카락으로
빨랫줄에 걸려 있다

언제쯤에나
시린 세상 풀어헤치고
보글보글 거품 게워내며 끓어오를까
새벽 인력시장 꽁탕 치고 돌아앉은
다리 밑 식객들의
허기진 창자에 몸 풀까

지금 이 세상을 바라보면 온통 흥청망청 넘쳐나는 물질에 겨운 사람들이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누구나 끼니 때마다 허연 쌀밥과 여러 종류의 반찬을 배불리 먹고, 누구나 칼처럼 주름이 잘 잡힌 좋은 옷을 입고 다니고, 누구나 티끌 하나 보이지 않는 깨끗하고 반듯한 집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눈높이를 낮추어 도심의 구석진 곳을 자세히 살펴보면 엄청난 오물더미 속에서 지독한 내음이 나는 폐수가 흐르고 있습니다. 또한 그 오물더미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하루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움푹 패인 눈동자를 두리번거리고 있는 모습도 보입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폐수처럼 냄새 나고 더러운 옷을 입고 있습니다.

흑과 백.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흑과 백뿐입니다. 우리들이 꿈꾸는 여러 가지 아름다운 색깔들, 그런 색깔들은 아예 보이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물질자본주의라는 사회는 극과 극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아니면 저것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니 되는 그런 구조를 갖고 있는 것이 물질자본주의이기 때문입니다.

무는 주로 뿌리를 먹는 채소입니다. 하지만 무청이 없는 무 뿌리가 어찌 존재할 수 있을까요. 또한 무 뿌리를 자를 때에는 비록 쓸모 없어 보이던 그 무청도 잘 말려 찌게를 끓여먹으면 무 뿌리가 흉내낼 수 없는 무청 만의 독특한 맛을 냅니다. 그리고 우리들 허기진 뱃속에 들어가 무 뿌리처럼 피가 되고 살이 됩니다.

시인은 무청을 통해 우리 사회의 모순을 꼬집어내고 있습니다. "목이 잘린 채/축 늘어진 머리카락으로/빨랫줄에 걸려 있"는 무청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바로 오늘 새벽에도 인력시장에 몸 팔러 나갔다가 "꽁탕 치고 돌아앉은" 그런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무청과 인력시장에 나온 사람들이 모두 같은 처지라는 그 말입니다.

그래서 아랫도리만 잘린 채 버려진 무청이,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그런 사람들의 "허기진 창자에 몸"을 푸는 것입니다. 이처럼 무청은 그들과 함께 울분과 분노를 삭이기 위해 지금 빨랫줄에 걸려 있는 것입니다. 유유상종이라고 했던가요. 이 시에서 시인이 바라본 무청은 바로 아픈 무청이 아픈 사람들의 허기진 속을 채워줄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시를 읽으며 우리들은 다시 한번 우리 사회의 어둔 구석을 잘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우리 사회에서 버림받게 되었고, 얼마나 힘겹게 살아가는지를 두 눈 똑똑히 뜨고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구요. 그 모습은 어쩌면 내일 다가올 내 자신의 모습일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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