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은장도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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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은장도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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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를 탐험하는 다이빙 포인트 세 곳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

-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 중에서 -

조선은 이성계(1335-1408)에 의한 고려의 멸망(1392년)에서 대한제국으로 국호변경(1897년)까지 잡아도 5세기 넘게 이어져왔다. 조선을 시대별로 크게 나누면, 왕권을 확립한 15세기는 초기, 당파로 분립된 17세기는 중기, 외척에 휘둘린 19세기는 말기로 잡을 수 있다. 각각의 상징인물로서 초기는 세조(1417-68), 중기는 송시열(1607-89), 말기는 안동 김씨(1805-64)이다.

16세기는 초기와 중기를 잇는 연결고리이다. 이 시기에는 자신에 대한 정체성이 약한 왕들이 줄지어 보좌에 앉으면서 왕권은 무너졌고, 권력은 중신(重臣)들의 손에서 놀아났다. 이때 선비들은 크게 훈구파(勳舊派)와 사림파(士林派)의 두 줄기로 갈렸고, 서로 왕을 끼고 치고받았다. 몇 번의 사화(士禍)를 거치면서 권신(權臣)들은 정배(定配)되거나 사약(死藥)을 받았다.

중국대륙은 기원전에 춘추전국시대가 있었다. 절대강자가 없었기 때문에 천하가 전쟁으로 날 새는 불안한 시기였다. 그러나 이때 인류문화의 빅뱅(big bang)이 일어났다. 유가(儒家), 도가(道家), 묵가(墨家), 법가(法家), 병가(兵家) 등으로 대표되는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철학이 시대적 요청에 따라 등장했기 때문이다. 참으로 역사는 역설적으로 설명하지 않을 수 없다.

16세기 조선의 분위기가 이와 비슷했다. 국왕을 꼬드기는 사대부들의 말싸움이 교묘하기도 했지만, 그런 반면 그것이 논리와 학문을 발전시킨 측면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성리학을 중심으로 한 문림(文林) 4천왕의 등장이다. 화담 서경덕(1489-1546), 퇴계 이황(1501-70), 남명 조식(1501-72), 율곡 이이(1536-84)가 바로 그들이다. 기(氣)가 핵심주제였다.

세계에 내놓을만한 한국철학은 16세기를 고비로 절정의 호경기를 맞았던 것 같다. 그러나 “큰 나무는 그늘도 짙다”고, 이런 자랑꺼리에도 한 중요한 문제가 가볍게 처리되고 있었다. 즉 정치의 전면에서 남자들이 조명을 받고 있는 동안 안방의 후면에선 여자들이 표정을 잃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남자에 의하여 여자는 희로애락의 감정을 속이도록 강요당하고 있었다.

사실은 고려 때까지만 해도 여자를 으뜸으로 하는 모계사회의 유풍(遺風)이 짙게 내려오고 있었다. 예를 들면, 신혼초기에 처가살이하는 전통이나 딸에게도 상속을 균분하는 관습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조선 초기까지도 이런 풍속은 이어진 듯 하다. 율곡과 교산 허균(1569-1618) 등은 외가 집에서 출생했고, 퇴계는 부인의 상속덕택으로 빈곤한 삶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16세기에 기 철학이 남자들에 의하여 화려하게 전개되었다면, 이때의 다른 한 특징은 여필종부(女必從夫)의 어두운 풍속이 가정에서 확립되고 있었던 것이다. 여자는 다만 아들 낳는 도구로 취급되고 있었다. 사회 잠재력의 절반인 우먼파워(woman power)가 획일적으로 평가절하 당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진리처럼 통하는 시대였다. 남자에 의한 여자의 집단학살이나 진배없다.

열녀(烈女)가 지아비의 죽음 따라 스스로 목숨을 버린 여자라면, 절녀(節女)는 살아있을 때 정절(貞節)을 지키고자 자결한 여자이다. 은장도는 이때 필요한 소품이다. 만약 이렇게 죽은 여자가 정말 있었다면, 그녀는 아마도 죽기까지 엽기적으로 자해해야 할 것이다. 남자는 가증스럽게 가문의 출세를 위하여 출가외인이라며 따돌림 했던 딸이 이렇게 죽기를 바라고 있었다.

탐험목적에 따라 다르겠지만, 바다에서 다이빙하고 싶다고 해서 아무 곳이나 제멋대로 뛰어 들어가서는 안 된다. 바둑에서의 맥(脈)이나 인체의 혈(穴)처럼, 안전수칙이 지켜지고 전문가들이 개척해놓은 지점이 따로 있다고 한다. 관광객이라면, 해저의 산호초와 열대어를 구경하고 싶을 것이다. 수중세계는 마치 접혀있던 공간이 차례대로 풀어지듯이 눈앞에서 펼쳐진다.

신사임당(1504-51), 황진이(152X-5X), 허난설헌(1563-89) 이 세 여자는 16세기에 반(反 anti-) 은장도를 실천한 대표적인 페미니스트(feminist)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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