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빛 꽃망울이 아름다운 은난초 ⓒ 우리꽃 자생화^^^ | ||
세상의 묵은 때들 적시며 씻겨주려고
초롱초롱 환하다 봄비
너 지상의 맑고 깨끗한 빗자루 하나
옳커니! 모름지기 시란 것은 요렇게 쓰는 것이렷다. 쓸데없이 많은 말이 필요없고, 현란한 수사가 없어도 우리들 가슴에 저절로 와 닿는 시. 그래, 시란 것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이 시를 읽으면 어디선가 이런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짧은 시 속에 하늘과 땅의 이치가 소롯히 담겨 있습니다. 시인은 하늘에서 내리는 빗방울을 바라보다가 문득 "세상의 묵은 때들 적시며 씻겨주"는, 즉 하늘이 이 세상의 묵은 때를 쓸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인의 심상처럼 내리는 빗방울을 오래 바라보세요. 그러면 문득 내리는 빗방울이 어마어마하게 큰 하늘의 빗자루로 보이는 때가 있을 것입니다. 내리는 비가 스며들지 않는 곳은 없습니다. 비를 피해 처마 밑에 서 있어도 비의 내음이 처마 밑으로 스며듭니다.
비를 피해 방 안으로 들어와도 곳곳에 비내음이 풍겨옵니다. 비가 닿지 않는 곳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내리는 비는 이 세상의 묵은 먼지를 쓸어주는 것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삼라만상의 생명의 끈이기도 합니다.
시인이 바라보는 비는 "지상의 맑고 깨끗한 빗자루 하나" 입니다. 그것도 여름비나 가을비가 아닌, 생명의 봄비입니다. 그래서 시인이 바라보는 그 하늘의 빗자루는 "초롱초롱 환하"게 빛나는 것입니다.
박남준 시인은 전주에 있는 모악산 자락에서 '모악산방'이라는 간판을 걸어두고 제 홀로 살아가고 있는 시인입니다. 지금은 나이가 사십대 후반에 접어들었지만 아직까지도 결혼을 하지 않은 숫총각입니다.
하지만 나는 박남준 시인에게 이렇게 속삭이고 싶습니다. 모악산방에서 삼라만상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제 홀로 살아가는 것들이 있더냐고. 한포기 풀도 자라면 꽃을 피우고, 이윽고 져서 열매를 맺고 사라지듯이, 시인도 하루속히 좋은 인연을 만나 한포기 풀처럼 오손도손 살아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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