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파란 울음 떨구는 오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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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이 파란 울음 떨구는 오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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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보는 세상 56>김수영 “풀”

 
   
  ^^^▲ 오늘도 들판 곳곳에서 보랏빛 꽃을 피워올리고 있는 지칭개
ⓒ 이종찬^^^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 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오늘은 아침부터 바람이 몹시 거세게 불고 있습니다. 아직 태풍이 불 때가 아닌 오월인데도 마치 태풍이 불어오는 전야처럼 그렇게 세찬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늘 고요하기만 하던 산사의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이 바람이 불 적마다 무척 요란스레 울고 있습니다.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언뜻 보면 금방이라도 뿌리채 뽑혀 어디론가로 날아가 버릴 것만 같습니다. 마악 돋아난 여린 잎사귀가 바람에 찢겨 날아가고 있습니다. 아직 다 자라지도 못한 채 저렇게 찢겨 날아가는 여린 나뭇잎을 바라보면 마음이 슬프기만 합니다.

그 나무 아래에는 여러 가지 풀이 자라고 있습니다. 잔디풀도 자라고 있고, 그 잔디풀 속에서는 토끼풀도 긴 목을 뺀 채 어여쁜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이미 씨앗을 모두 날려버린 엉겅퀴도 긴 꽃대만 덩그러니 남긴 채 긴 목이 허전한 듯 이리저리 두리번거리고 있습니다.

풀. 그렇습니다. 풀이란 이름 속에는 이 땅에서 자라는 온갖 하찮은 식물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의 눈에 띄어 정원에 예쁘게 심어진 그런 풀 보다도 아무 곳에서나 뿌리를 내리고 잘 자라나는 그런 풀이 훨씬 더 아름답습니다. 또한 그런 풀은 온몸이 밟히고 잎사귀가 이리저리 찢어져도 어느새 또다시 새파랗게 자라납니다.

이 시에서 시인이 말하는 풀은 가난한 민초들이요, 바람은 그 민초들을 마구 짓밟는 절대 권력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바람이 거세게 부는 날, 바람보다 먼저 드러누웠다가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풀을 통해 가난한 민초들의 삶을 역설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민초들은 가진 게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늘 저들에게 짓밟히고, 착취를 당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저들은 마지막으로 숨겨둔 생명의 끈인 보리쌀 한 되마저도 몽땅 다 빼앗아 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날이 흐리"면, 풀들은 풀뿌리부터 먼저 눕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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