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김씨는 명절을 일주일 앞둔 시점만 되면 신경이 예민해지는 걸 느낀다. 머리가 무겁고 가슴이 답답해지고 소화도 안 되고 기운이 없어지면서 사소한 일로도 남편과 아이들에게 괜히 짜증이 는다. 이런 증상은 명절 기간 중에 최고조에 달했다가 명절을 보내고 나중에 집에 돌아와서도 한동안은 지속되는 경향이 있다. 김씨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남편과 시댁의 관습 때문에 스트레스를 엄청 받는다.
음식 만들고 상 차리고 설거지를 하는 일쯤은 그렇다 치더라도, 평소에는 집안일을 잘 도와주던 남편이 막상 시댁에서는 시시한 프로를 보면서 TV앞을 떠나지 않는 것, 남자들의 술자리가 끝나기까지 내내 시중을 들어야 하는 것, 힘들어서 친정으로 먼저 가고 싶어도 남편은 시부모님 눈치만 보는 것, 시어머니의 고집에 시누이들이 올 때까지는 친정에 갈 수도 없는 것. 김씨는 자기가 이 집안의 부속품일 뿐 아무런 권리도 없는 그저 부엌데기가 된 기분에 마음이 상할 대로 상한다.
명절을 맞아 주부들이 겪어야 하는 맘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명절 후유증으로 주부들이 정신과 진료실을 찾는 경우는 아주 흔하다. 대부분 우울증, 신체화장애, 수면장애, 스트레스 인한 불안장애 등으로 도움을 청하러 오는 것이다. 사실은 더 심한 증상을 겪는 주부들도 많을 텐데, 그들이 진료를 받으러오지 않아서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실로 상당수의 주부들이 명절의 스트레스로 고통 받고 있다.
우리의 사랑하는 아내와 어머니들을 이토록 힘들게 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명절 문화에 대한 재고가 필수적이다. 온 나라가 이 문제로 일 년에 두 번 몸살을 앓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너무 요원하다. 그나마 많은 젊은이들과 일부 어르신네들의 의식이 점차 바뀌어 가는 것을 보면서 그나마 긍정적 자세를 잃지 않을 수 있겠다. 일상생활에서 구체적으로 적용해 볼 수 있는 방법들로, 첫째, 가족회의를 통해 남녀노소의 역할을 분담하고, 가급적 일의 양을 간소화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보는 것이 좋다.
가령, 명절 기간 중에 한 끼는 전적으로 남자가 차리도록 하는 것, 해마다 음식 수를 1-2가지씩 줄이는 것, 한 상에 모든 음식을 다 내놓지 말고 나눠 먹어서 설거지 수를 줄이는 것 등이다. 둘째, 며느리에 대한 배려심을 키우는 기회를 만들자. 며느리의 친정 가는 시간을 미리 정해놓아 불안해하지 않도록 한다.
명절 기간이 길 경우에는 며느리들도 한번 외출해서 자기들끼리의 친목 시간을 갖도록 타임아웃을 준다. 남편들은 명절 이후에 아내에게 하루 이틀 정도 마음대로 쉴 수 있도록 포상 휴가를 줘보도록 한다.
외국인들의 눈에 이상하게 비치는 현상 중에 하나가 바로 명절 대이동이다. 전쟁도 아닌데 국민의 절대 다수가 주기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이러한 불합리한 대이동이 에너지 측면에서 엄청난 낭비를 초래함에도 불구하고 누구하나 감히 고쳐나가자고 말하는 이가 없다. 대이동으로 인한 혼잡과 국력 손실을 막기 위해서라도 융통성 있고 다양한 명절 문화가 절실히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분위기가 더 개방적인 가정들에서는 가족여행처럼 명절 연휴기간에 복잡한 상황을 피해 가족들만의 돈독한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 남자들도 과도한 음주나 장시간 운전하는 일로 인해 체력이나 생활리듬의 균형이 깨질 수 있는데, 충분한 휴식과 스트레칭 등으로 신속한 회복을 도모하는 것이 좋다.
남편들도 분명 스트레스를 받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부당하게 더 맘고생을 하는 것은 아내들임을 생각하면서, 설사 마음에서는 우러나지 않더라도 기술적으로 ‘여보 고생 많았어!’, ‘우리 식구들 때문에 미안해’, ‘잘 참아줘서 고마워’라는 말을 표현한다면, 더 편안한 명절이 될 것이다.
싱글 명절 증후군
학원 강사를 하고 있는 올드미스 박씨는 다가오는 추석이 또다시 고역이 될 것 같아서 벌써부터 걱정이다. 평소 가벼운 불면증이 있는 터라 집에 내려가서 며칠 푹 쉬고 싶은 마음도 간절한데, 매년 설과 추석에 고향에 내려가서 가족 친지들에게 들었던 얘기들을 또 들어야 할 생각을 하면 별로 귀향길이 내키지 않는다.
시집가라는 얘기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가기 싫어서 안 가는 것도 아니고, 정작 시집을 못 가서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당사자임에도 남들이 생각 없이 던지는 말들에 기분 상하는 것을 조절하기가 힘들다. 그녀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또 다른 얘기는 ‘얼굴 좋아졌다’는 식의 말들이다. 대놓고 ‘살쪘다’라고 눈치 없이 하는 말을 들으면 속이 뒤집히는 것을 느낀다. 그런 말들에 의연해질 법도 한 대, 의지로 안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항상 내려가는 고향 길은 기대감이 컸었는데, 올라오는 귀성 길이 해마다 점점 더 우울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마음의 고향마저 잃어가는 것 같아 서글퍼진다.
결혼이 늦어진 미혼남녀들이나 취업을 못하고 있는 젊은이들도 명절에 여러모로 스트레스를 받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사람들이 별 뜻 없이 내뱉는 말에도 자격지심이 과도하게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대비하려면 미리 상황을 예측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좋다. 사람들의 말은 단지 나에 대한 관심의 차원에서 나온 것임을 스스로에게 상기시키면서, 나도 무심정하고 의례적인 대답 패턴을 만들어 두었다가 자동적으로 나올 수 있게 하는 것이 그래도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는 길이다.
예를 들어, “왜 결혼 안하냐?”라고 묻는 친구가 있다면, “너는 왜 결혼했냐?”라고 가볍게 반문을 할 수도 있다. 그것도 자신이 없다면, 오는 손님들이 볼 수 있도록 현관문에 피해야 하는 대화내용을 ‘유머러스한 금지문’으로 걸어두는 것도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재치 있게 피해갈 수 있는 한 아이디어다.
새로운 명절 문화의 정착을 위한 제언
어쩌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똑같이 고생하며 움직이고, 다들 모여서는 어쩌면 그렇게 똑같게들 명절을 보내는지 생각할수록 그 획일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다. 명절에 가족들끼리 모여 할 수 있는 놀이는 딱 두 가지다. 하나는 TV 시청이고, 다른 하나는 고스톱이다. 그 외의 놀이 문화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명절의 본래 취지가 조상의 덕을 기리고, 가족 간의 우애와 화합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면, 지금의 명절은 그 목적에서 한참 벗어난 것이 틀림없다. 지금의 명절 문화도 나름대로는 필연적인 역사적 산물이기에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는 이도 있지만, 모든 사람을 힘들게 만드는 구습이라면 언제든 합리적으로 고쳐나가려고 하는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싶다.
한 사회의 문화를 바꾸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소요될지 모르나, 한 가정의 분위기를 바꾸어 나가는 것은 의외로 짧을 수도 있다. 점차 더 많은 가정들이 변해간다면 그만큼 사회의 변화도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 획일화된 명절 문화에 대해 각 가정마다 고유의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갈 수도 있다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기존 문화의 비합리성에 대해 평상시에 부모님 세대를 납득시키는 노력과, 형제 동서 올케들 간에도 단지 명절의 전통을 답습하기 보다는 진정으로 가족의 만남에 대한 기쁨을 회복시킬 수 있는 새로운 대안 마련을 위해 지혜를 모으는 것이 요구된다.
다행히 모두가 공감할 수 있다면, 그 가정의 명절은 빨리 행복을 찾을 것이고, 설사 가족 간의 협의가 원활하지 않더라도 차후에 젊은 세대만큼은 더 합리적이고 모두가 즐거울 수 있는 그들만의 명절문화를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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