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자 우 루안의 동양판 '햄릿'의 연극 장면이 삽입된 초반부는 앞서 언급한 무협 영화의 계보를 이으면서 전국 천3백 만여 관객 동원에 빛나는 이준익 감독의 영화 <왕의 남자>와 중국 고유의 경극을 선보였던 첸 카이거 감독의 <패왕별희>를 떠오르게 한다.
이들 영화를 떠오르게 하는 건 어딘가 모르게 <왕의 남자><패왕별희> 등과 달리 익히 잘 알려진 서양 고전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보는 관객들에게 이후 사건 전개에 대한 예측이 가능케 해 긴장감을 다소 감소시킨다.
갑작스런 황제의 죽음으로 황위를 이은 동생 리(유게 분)의 황후가 된 완(장쯔이 분)의 선택은 황태자이자 옛 연인인 우 루안(다니엘 우 분)에 대한 그녀의 태도가 영화 시작과 결말부 설정이 마치 야누스처럼 상반된다. 이 때문에 영화는 마치 연극의 막을 연결하듯 여러 개의 에피소드를 이은 분절된 표정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내러티브의 부족과 화려한 스펙터클과 대규모 예산을 쏟아 붓는 헐리우드식 영화를 답습하고 있다는 느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추석 극장가에서 다크호스로 불릴 만 한다. 대륙 기질의 중국색을 바탕으로 한 화려한 영상미가 과거 90년대 정소동, 서극 감독의 무협 판타지와 장이모우 감독의 <영웅><연인> 이후 국내 관객들에게 무협 영화의 진수를 경험할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권력욕에 눈 먼 숙부와 연인을 버린 여자 '완'이 태자 암살을 놓고 쫓고 쫓기는 추격신에서는 황금색, 붉은 색 그리고 검은 색 등으로 인간의 욕망을 형상화했다. 이로 인해 영화의 미적 감각은 전편 <영웅><연인>을 잇고 있지만, 이명세 감독의 국내 영화 <형사:Duelist>와 또 다른 색채 미학을 선보인다.
^^^▲ 영화 <야연>의 주연 배우 다니엘 우와 장쯔이(오른쪽) ⓒ 롯데엔터테인먼트^^^ | ||
200여 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 <야연>은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중국 당나라 이후 5대 10국의 혼란기를 풍미하던 한 여자의 욕망과 순수에 대한 동경 그리고 이로 인한 비극을 그렸다.
중국의 톱스타 장쯔이가 욕망 앞에 주저하는 황후 '완'으로 열연을 펼쳤고, 칸 국제영화제 장이모우의 <인생>으로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중견배우 유게는 황제 리로 변신해 멋진 악역 연기를 선보인다. 그는 자신을 독살하려는 황후의 독배를 마시기에 주저하지 않아 리 캐릭터에 은근한 매력을 느끼는 일부 관객도 찾을 수 있다.
붉은 꽃잎이 가득한 수영장 크기의 대형 욕조 속의 황후 완은 권력과 욕망에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영화 초반부 태자 우 루안이 한 편의 시조는 그를 연모하던 여자 칭에 의해 다시 읊어지면서 이제 어머니(국모)가 되어버린 황후 리에 대한 태자의 연정을 애절하게 드러낸다.
아버지와 결혼한 완으로 인해 푸른 대밭을 배경으로 유유자적하게 은둔하던 우 루안에게는 고요를 깨뜨리는 말 말굽 소리와 무자비한 살인을 일삼는 자객이 찾아 든다. 은둔지 주변 연못 수중 속에 숨을 멈춘 채 공포에 떠는 우 루안의 모습은 하얀 눈발 속에 검붉은 선혈로 시각화 된 궁중 권력의 암투를 넌즈시 예고한다.
올해 초 홍콩 금상장 시상식때 노팬티 차림으로 참석해 논란을 일으켰던 샛별 주신(저우쉰)이 또 다른 여자를 사모하는 태자에게 순정을 바치는 여자 칭으로, 다니엘 우는 아버지와 재혼한 연인 완이 황제를 독살한 숙부와 결혼하자 복수심에 가득찬 태자 우루안으로 각각 변신해 그림 같은 춤사위를 펼친다.
영화 초반부 완의 결혼 소식을 들은 우 루안이 연인을 찾아가 펼치는 대결은 앞선 두 배우의 춤사위와 함께 이 영화가 주는 또 다른 시각의 향연이다. 당초 권력욕에 눈 먼 것처럼 보였던 완이 우 루안과 함께 겨루는 검 대결을 통해 사랑보다 깊은 애증을 드러내는 듯 한 이 장면은 영화에서 놓치면 안되는 명장면 중의 하나다.
세익스피어의 연극 '햄릿' 처럼 궁극적인 비극을 지향하고 있으나 이 영화는 인간의 욕망과 그 무상함을 깨닫게 하는 측면에서 서양의 고전을 동양 사상 중 '불교철학'으로 해석한 '동양판 햄릿'이라고 부르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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