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협 기자의 실크로드 기행[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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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협 기자의 실크로드 기행[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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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지티로드GT Road 따라 인도 국경에서

펀쟈브(Panjave) 평원

필자를 태운 헬리콥터는, 경쾌한 엔진소리를 남긴 채 '라왈빈티'의 헬리포트를 날아올랐다. 인도로의 길을 더듬어 GT로드를 내려가는 것이다. 우리는 하늘과 육로 두 갈래로 나뉘어 펀쟈브 평원을 따라 '라흘'로 향하기로 하였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평원은 산이라곤 하나도 없어 '펀잡' 지방의 광활함을 알 수가 있었다.

'라왈빈티'를 나선지 20 분, 보드왈 고원이 GT로드를 사이에 두고 좌우로 드넓게 펼쳐져 있는 것이 보였다. '보드왈'고원은 소형의 그랜드캐년을 옮겨다 놓은 듯 볼수록 장관이다. 사막과 같은 사암 대지를 흐르는 강이 1 천만년이나 긴 세월, 침식을 되풀이하면서 만들어 낸 계곡인 것이다. 풀 한포기 없이 노골적으로 이를 드러낸 바윗더미, 울퉁불퉁한 지층모양이 마냥 아름답다.

7 세기 초 중국 당 나라의 '현장삼장'도 경전을 찾아 인도에 가는 도중 이 근처를 지나고 있다. 현장 또한 이 광경에 감동하였던 모양으로 ' 이 곳은 이전에 '마하삿드바' 왕자가 몸을 던져 굶주린 호랑이의 희생물이 된 곳으로 지금도 그 때를 말해 주는 듯 흙 밭은 피로 물들어 새 빨갛고, 초목도 붉은 색을 띄고 있다'고 인상기印象記를 남기고 있다.

' 이 대지에서는 옛 동물의 화석이 헤아릴 수 없이 나옵니다. 저도 어릴 때는 곧잘 파헤치러 다니곤 했지요' 파키스탄 공군의 비행사 '라쟈아리브'소령이 가득히 웃음 띈 얼굴로 뒤를 돌아보며 가르쳐 주었다. '보드왈'고원에서는 4 백만 년 전의 동물화석이 발견되고 있다. 기린, 사슴, 코뿔소, 악어 등의 대형동물을 비롯하여 다람쥐나 쥐 등의 화석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10 만년 이상이나 되는 태고 인이 상당한 집락集落을 형성하여 살았다는 사실을 여기에서 발견된 석기에서 알 수 있다. 헬리콥터에 흔들리면서 이러한 설명을 듣고 있자니, 어느 새 GT로드는 풍요로운 전원지대에 들어가고 있었다. 봄을 만난 듯한 유채 꽃이 마치 황색융단을 깔아 놓은 듯 널려 있다. 멀리 밭 한 가운데 커다란 흙 만두와 같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마니가랴'의 불탑이다. 그것은 벵갈 보리수가 늘어선 길, GT로드로부터 동쪽으로 8 백 미터 정도 들어 간 보리 밭 가운데 우뚝 서 있었다. 육로로 달려 온 촬영 진이 불탑주위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헬리콥터의 굉음을 듣고 근처 마을 어린이들은 물론 어른 들 까지도 달려 나왔다. 마치 벌집을 쑤셔 놓은 듯 시끌벅적한 모양이 내려다 보인다.

그대로 불탑을 촬영하자 영락없이 '마니갸라' 마을 사람을 한데 모아놓고 기념촬영이라도 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일단 내려서 육로의 스탭에게 마을 사람들을 정리하도록 시킬 작정이었다.

'불탑근처에 내릴 수 있겠습니까?'
'OK 알았습니다.'

헬리콥터는 파키스탄 공군의 것이기 때문에, 어떤 장소에도 자유자재로 내릴 수가 있다.

지상에 내려서자 정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었을까 의아스러울 정도로 수많은 구경꾼들이 몰려 있었다. 마을 경찰관까지 나서 정리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었으나, 한번 모여든 군중은 그렇게 간단히 돌아가려 들지 않았다. 잠깐 군중과의 고집스런 문답이 계속되었으나, 결국 헬리콥터를 잠깐 멀리 떨어져 있게 하기로 하였다.

불탑은 30 미터 정도의 높이를 가진 반구형으로, 간다라 유적의 동쪽 끝을 가리키는 것이라 알려져 있다. 헬리콥터는 GT로드를 넘어 일단 서쪽을 향했다 .우리들은 그 곳에서도 몇 개의 불탑을 보았다. GT로드를 가로질러 반대쪽에서도 그다지 보잘 것은 없지만, 불탑이나 승원 유적을 나타내는 듯한 돌더미들이 꽤나 큰 규모로 여기저기 남아 있다.
필자는 '현장삼장'이 남긴 다음과 같은 기술을 떠 올렸다.

'대략 60 미터의 높이를 가진 이 '스투파'는 대단히 예술적인 장식이 드러나 널리 세상에 불가사의한 광채를 발하고 있다. 이 스투파의 주위에는 조그만 스투파를 포함, 백개를 넘는 수많은 절간이 세워져 있다. 병에 지친 사람들이 몰려들어 완치를 바라고 있다. 스투파의 동편에는 승원이 있어 백명이 넘는 대승불교 승이 수행하고 있다.'

간다라 문화의 융성기를 지나 7 세기 무렵의 번영을 전해 주는 것으로 보아 지난날의 당당함을 엿볼 수 있었다.

'지금의 불탑은 나중에 세워진 것입니다. 아쇼카 왕이 건립했던 최초의 것은 한결 더 큰 것으로 더욱 훌륭했던 모양입니다.'

소령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뒤를 돌아보자, 군중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마니갸라'의 불탑만이 봄볕에 빛을 더 한층 반사하고 있었다.

시알코트, 옛 이름 '사카라'

다시금 GT로드에 돌아 온 필자는, 아카시아가 늘어선 길을 따라 라흘로 향했다. 예전에 알렉산더 대왕이 악전고투하였던 인더스의 지류, '제룸' 과, '추나브' 강을 지났다. 어느 쪽도 지류라고 부르기엔 걸맞지가 않다. 당당한 강이다. '추나브'강을 지나자 이내, GT로드를 질러 동쪽으로 길을 잡았다. 다음 목적지 '시알코트'로 향하기 위한 것이다.

필자는 라흘 박물관의 관장인 달Dahl 박사로부터 한 유적지에 관한 정보를 얻었다. '시알코트'에서 서쪽으로 들어 간 '사이불'에서 5 년 전부터 발굴조사가 이뤄지고 있으며, 그것은 기원전 2 세기경의 유적임에 틀림이 없고, '미린다 왕'이라는 그리스 왕의 도읍지가 아닐까 하는 소문이 나 돌고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엔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으나 '미린다' 왕이야말로 동서 교류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GT 로드는 버스나 트럭이 줄을 이어 오가는 산업도로지만, 이 '시알코트' 가도街道는 조용한 길이다. 길 양쪽에는 큰 나무들이 무성하여 녹음터널을 만들었고, 그 밑을 두 마리의 소가 끄는 달구지가 마른풀을 실은 채 천천히 지난다.

마른 풀 위에 눌러 앉은 사나이가 졸린 눈으로 간헐적으로 채찍을 휘두른다.

길가는 온통 보리 밭, 조그만 개천을 지나는데 여자들이 세탁하느라 바쁜 손길을 움직이고 있다. 한 시간 반쯤 지나 '시알코트'의 거리에 도착하였다. 이 곳 역시 버스, 트럭, 마차의 소음은 다른 곳과 한 가지였으나 사람들 인상은 얼핏 보기에도 달라 인도에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려 주는 듯 했다.

거리의 중앙 높은 언덕이 공원으로 되어 있었다. 붉은 벽돌로 지은 집이 처마를 맞댄 채 즐비하고, TV 안테나가 숲을 이루고 있었다. 집 동편에 저~ 쪽에 무성한 숲이 보이는데 그 곳이 바로 인도란다. 이 곳 '시알코트'는 그 옛날, '사가라'라 불러 중국에는 사갈沙鞨로 알려진 마을이었다. 지금은 그저 한 지방의 작은 도시에 불과하지만 예전엔 실크로드에 어울리는 활발한 사연이 전개된 무대였다.

이야기의 무대 '사가라'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삼장법사'의 묘사가 있다.

'깊은 골과 하얀 성벽이 이 도시를 둘러싸고 있다. 거리는 각 종의 보시당布施堂에 의하여 곱게 꾸며졌으며, 10 만이나 되는 호쾌, 웅장한 저택들이 늘어서 있다.도로는 코끼리, 말, 보행자로 넘쳐흐르고, 어여쁜 남녀 무리가 줄을 잇는다. 왕족, 사제자, 서민, 노예들 제각각의 계층 사람들이다.상점에는 갖가지 직물이 풍성하게 쌓여 있고, 아름다운 꽃과 향료를 파는 상점들로 부터는 뱡향芳香이 둥둥 떠 다니고 있다. 도시에는 화폐, 금, 은, 동, 보석이 충만하여 찬란한 보석나라 같다.'

'달Dahl' 관장으로 부터 들은 '사이불' 유적은 보리 밭 한 가운데 높이 20 미터 정도의 언덕에 있었다. 전체가 고분과 같이 되어 있다. 구릉은 흙벽으로 둘러 있고 비스듬히 기울어진 사면斜面에는 발굴된 벽돌벽이나 돌로 지은 계단들이 군데군데 노출되어 있다.

언덕 위에 올라서자 서남쪽으로 푸른 '펀쟈브평원'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이 곳이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리스 왕이 살았던 장소가 아니었을까. 간데 없는 인걸을 그리는 듯 푸른 하늘에 흰 구름 한 점이 두둥실 떠 있고, 어디선가 이름 모를 새 소리가 '꾸룩 꾸르룩' 들려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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