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우리가 영원을 끝없는 시간지속이 아닌 무시간성으로 이해한다면, 현재 속에 사는 사람은 영원히 사는 것이다.
- 비트겐슈타인의 “논고” 6.4311 중에서 -
환단고기(桓檀古記)는 역사와 설화가 씨와 날로 엮여져 있다. 학계에서는 이 자료를 일종의 판타지 같은 위서(僞書)로 보는 시각이 정통으로 되어 있다. 즉 담긴 그 내용이 사실중심보다는 국수주의를 자극한 흥미본위라는 것.
그러나 정사(正史)와 야사(野史)의 구별은 영원할 수 없다. 어차피 역사는 숨겨진 그림을 짜 맞추는 직쇼퍼즐(jigsaw puzzle)과 같기 때문이다.
부여(扶餘)의 세 여자 파소(婆蘇), 유화(柳花), 소서노(召西弩)는 환단고기에 등장한다. 그들은 각각 개성이 달랐지만 다음의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
1. 생존시기 - 분명치는 않지만 대체로 기원전 1세기 무렵으로 추정
2. 시조모친 - 신라, 고구려, 백제 삼국을 개시(開始)한 임금들의 어머니
3. 출산일화 - 정숙(貞淑)한 여인상이란 기대치에서 벗어난 이미지
한반도 최초의 정사로 인정받는 삼국사기(三國史記)는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 났다고 전한다. 지금은 이 설화를 사실로 인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환단고기는 부여의 한 공주였던 파소가 배타고 내려가서 아비 모르는 혁거세를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오늘날 경주 선도산(仙桃山 380m)에는 시조모를 지선(地仙)으로 모신 성모사(聖母祀)가 남아있다.
하백(河伯)의 딸 유화가 사통(私通)한 기록은 삼국사기와 환단고기가 서로 일치한다. 다만 고구려 시조 주몽의 친부가 부여의 황족인데, 사기에서는 해모수(解慕漱)로, 고기에서는 고모수(高慕漱)로 성씨가 다르게 나타난다. 이것은 태양(해)이 하늘 높이(高) 있기 때문에 우리가 말을 글로 표기할 때의 차이로 보인다. 다행히(?) 삼국유사(三國遺事)는 양쪽을 같이 썼다.
연타발(延陀勃)의 딸 소서노는 전남편 우태(優台)와 사별하고, 이어서 부여에서 졸본으로 망명해온 주몽과 재혼하여 그와 함께 고구려를 건국했다. 그녀는 비류(沸流)와 온조(溫祚) 두 아들을 두었는데, 사기는 주몽의 친자설과 우태의 혈통설을 함께 올렸다. 그런데 비류만 우태의 아들이고, 온조는 주몽의 아들이라는 설도 가능하다. 소서노는 온조를 세워 백제를 일으켰다.
신라, 고구려, 백제가 이웃하면서 짧게는 육백년, 길게는 천년의 역사를 이어가면서 공존 또는 병립할 수 있었던 것은 인류사에 전대미문(前代未聞)의 획기적인 사건이다.
이 사실은 세 나라가 처음부터 서로 다른 나라가 아닌 하나의 공동체 의식으로 묶여있었다고 볼 수 있다. 시조모였던 세 여자가 같은 부여족이었고, 그들의 자궁에서 삼국이 시작된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모계사회라는 뜻의 스펙트럼을 넓게 사용한다면, 삼국시대는 모계사회에서 잉태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소서노의 카리스마는 모계사회의 한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유화와 파소의 일부 부끄러운 출산정황은 난생설화로 미화시켰다. 주몽의 경우, 유화를 통하여 알로 태어나서 알에서 깨어난다. 그리고 혁거세는 아예 하늘에서 바로 알로 떨어져 거기서 태어났다.
예로부터 10 이란 수는 하나의 완성된 전체로서 존중됐다. 우리말에 “열 십(十)”은 의미가 깊다. 열은 오픈(open)으로, 십은 크로스(cross 씹)의 상징으로 통한다. 로마자 X는 10의 크기이며, 영문자 X는 섹스(sex)를 가리킨다. 더하기(+)는 남녀 한 쌍의 두 몸이고, 곱하기(x)는 교접 때 두 마음이 이룬 넓이이다. 남자의 뿌리 씨는 여자의 밑 입을 열고 자궁까지 들어간다.
남자가 사정(射精)할 때의 무아경은 마치 종교의 엑스터시(ecstasy) 체험과 비슷하다. 남자는 평상시 자아가 의식하고 있을 때 몸과 맘이 따로 분리된 갈등을 겪는다.
그러다 여자와의 크로스를 통하여 이것의 경계가 풀리고(relaxation) 허물어진다. 무경계(no boundary)의 희열을 맛보는 것이다. 사정은 찰나지만 죽음과 구원의 양면 얼굴을 동시에 만나는 체험인 것이다.
대지(大地)를 가이아(Gaia) 여신으로 보며, 묘혈(墓穴)을 음택(陰宅)이라 한다. 죽음은 모태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 여자가 머무는 곳에 뚫린 구멍이 있다. 그 곳은 한 남자에게 세상의 중심이며, 그 너머 영원의 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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