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밭 가에서 조선낫이
목놓아 운다.
작석(作石)더미 져다 부린
등굽은 아버지의 지게가
부황난 황토 구렁에서 따라 운다.
황소가 밀고 간
눈물로 허덕인
황토 영마루 바람꽃 피고
조선 소나무처럼 불거진 목민(牧民)의
뼈마디 뼈마디에 바람이 분다.
할아버지 동학군(東學軍) 선두에 서서
죽창 들고 외치던 소리소리,
일어선 분노가
쾅쾅 죽은 역사를 찍을 때
쓰러지던 어둠의 계곡.
어둠에서 다시 빛나던 저 조선낫.
어이 된 것이냐, 어찌 된 것이냐
빈 두렁에 앉아 목놓아 우는 소작인(小作人).
육척(六尺) 무명 올이 다 해져도
헤칠 수 없는 향산(鄕山)의 안개를
어쩌랴, 어쩌랴, 안개에 젖으며
풍토병(風土病)을 앓는 애비여 애비여.
깔끄러운 까락에 걸려
목청을 잃어 버린
피맺힌 우리들의 식도(食道),
그 속을 넘는 허기에 취해
술래가 된 아이들……
땅두더쥐는 지금 어느만큼
뼈가 남아 있는가.
아이들아 아이들아
청보리를 밟아라!
밟으면 밟을수록 돋아나는
청보리를 밟아라
죽지 부러진 비둘기가
빼앗긴 혼(魂)을 부르며 울고 가는
누구나 목민심서(牧民心書)를 엿듣지 않는 밤.
청보리만 살아서 방을 지키는가.
어둠 속에서 다시 돋는가.
^^^▲ 청보리를 바라보면 이상하게 배가 고프다 ⓒ 청보리/이종찬^^^ | ||
푸르른 오월의 들판에서 청보리가 패어나고 있습니다. 해마다 청보리가 팰 때면 보릿고개로 허덕이던 어린 날의 기억이 새삼 떠오릅니다. 얼굴과 손, 발등, 무릎에서 부황난 육신처럼 허옇게 피어나던 버짐들. 찔레순을 꺾어먹고, 삐비를 뽑아먹고, 아카시아 꽃잎을 아무리 따먹어도 결코 채워지지 않았던 그 허기진 배.
해마다 보리가 팰 때면 토끼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논둑에서 쑥쑥 자라나는 풀을 배불리 뜯어먹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파랑새가 되고도 싶었습니다. 파랑새가 되어 푸르른 하늘을 자유스러이 떠돌다가 솜사탕처럼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하얀 구름을 쪼아 볼 터지게 입에 넣고 싶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우리들은 장끼처럼 남의 집 보리밭으로 살금살금 기어들어가 시퍼런 조선낫으로 마악 여물어가는 청보리를 한아름 베서 불에 그슬려 먹기도 했습니다. 비비면 비빌수록 톡톡 불거지는 그 파아란 보리알갱이. 그 고소한 보리알갱이를 마구 입에 넣다가, 숯껌뎅이가 된 얼굴을 마주보며 배를 잡고 깔깔거리기도 했습니다.
이 시는 마악 패어나는 청보리를 통해 부황난 우리 민초들의 가난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말만 들어도 지긋지긋한, 아니 무섭기만 했던 그 보릿고개라는 말은 왜 생겨났을까요. 그리고 누가 겪어내야만 했던 보릿고개인가요. 그렇습니다. 시인은 이 시에서 보릿고개의 원인은 썩어빠진 관리들에게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할아버지 동학군(東學軍) 선두에 서서/죽창 들고 외치던 소리소리,"도 모두 찢어지게 가난한 현실을 극복하고자 일어선, 민초들의 마지막 몸부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어선 분노가/쾅쾅 죽은 역사를 찍" 어도 그 보릿고개는 여전히 두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동학군들의 그 뜨겁던 함성을 그리워합니다. "쓰러지던 어둠의 계곡"일지라도 기어이 그 모순을 딛고 "어둠에서 다시 빛나던 저 조선낫"을 못내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동학군의 함성은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이미 늙고, 병들고, 죽어갔습니다.
청보리를 바라보는 시인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마지막 희망을 걸어 봅니다. "아이들아 아이들아/청보리를 밟아라!/밟으면 밟을수록 돋아나는/청보리를 밟아라" 라고. 그렇습니다. 청보리는 바로 그 지긋지긋한 보릿고개의 대명사이며, 그 보릿고개는 바로 민초들의 삶을 짓밟는 부패한 관리들의 살찐 얼굴이었습니다.
지금은 그 허기진 보릿고개가 아예 사라진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는 그 지긋지긋한 보릿고개가 여전히 살아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지금의 보릿고개는 그때처럼 배가 고파 몸부림치던 그런 보릿고개가 아닙니다. 지금의 보릿고개는 마음이 허기지는 그런 무시무시한 보릿고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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