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협 기자의 실크로드 기행[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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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협 기자의 실크로드 기행[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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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실크로드의 요충 페샤왈

힌두쿠시의 산록, 아프카니스탄과 국경을 접하는 지역은 북서 변경주(NWFP)라 부른다. 파단 족이 사는 이 지역이 왜 프론티어(변경)라 불리우고 있는가? 그것은, 인더스강 하류지역의 발전된 주와 비교할 때, 주 면적의 60 퍼센트 이상이 미개척의 산악지대라는 연유에서 온 것이다.

페샤왈은 그 북서 변경주의 수도首都

페샤왈에서는 두 개의 길이 교차한다. 하나는, 중국으로부터 파미르고원을 넘어 남하한 길,
또 하나는 머얼리 로마까지 이어지는 서 아시아의 사막으로부터 카이발 고개를 지나, 동인도로 향하는 길이다.
페샤왈은 옛부터 실크로드의 요충, 국제경제의 중심지였던 것이다.

사람이 움직이면 길이 열린다

길이 어울리면 저자市場가 들어선다.필자는 우선 페샤왈의 중심부인 '갓사니바잘'을 돌아보기로 했다. 갓사나바잘의 중심은 '쵸크얄갈' 광장이다. 대리석의 불렄으로 만들어진 기념탑을 중심으로 비즈니스 센터가 즐비하다. 은행 옆에 낡고 너저분한 환전상들이 수십 동棟,지붕들을 나란히 맛 대고 장사하고 있다.

낱낱의 점포는 두 칸 정도의 넓이에 판자로 칸을 막고 한결같이 낡은 금고와 전화기 한 대가 놓여 있을 뿐, 살풍경 그대로다. 눈썰미가 별로 인, 망을 보는 듯한 남자 두 셋이 어딘가 수상쩍은 모습으로 거리를 바라보며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점방 안 쪽에는 뚱보주인이 100 루피 지폐를 100 매씩(원화로 100만원),커다란 스테-플러로 찍어서 다발로 만들고 있다.

'오늘 레잇Rate은 얼마지요?

"지금은 미국의 중간선거전이니까 달러가 올라 있겠지요?"

"그야 그렇지만, 어제 아르헨티나와 영국의 전쟁이 시작되었으니까, 오늘은 약간 내려갔소."

전쟁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달러가 내려간다는 핑계는 얼른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저 멀리 남반구 포클랜드의 분쟁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국제 감각에는 솔직히 말해 놀랄 따름. 여기는 이른바 블랙 마켓(지하시장)이다. 근대화 과정에서 한국에서도 그랬었지만, 외화부족에 고민하는 파키스탄에서는 해외여행을 위한 달러지참을 1인당 2년간에 5백달러로 제한하고 있다. 내로라 할 만한 산업이 없는 파키스탄에서는 외화획득방법을 해외 거주자로 부터의 송금, 혹은 가지고 돌아오는 달러에 기대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공정 환률보다 10퍼센트 가까이 좋은 환율로 교환하는 환전상에 인기가 쏠리는 것이다. 당국으로 보아서도, 불법적인 교환을 막기가 거북한 입장이다. 필요악이랄까, 블랙마켓은 그래서 점점 번성하고 있다. 이 부근이 폐샤왈로 늘 가장 바쁜 비즈니스 센터지만, 근대적인 이미지는 찾아 볼 수가 없다. 낡은 목조건물의 2층이나 3층이 사무실이나 주거로 되어 있다.

촘촘히 살펴보면 기둥은 녹綠,청靑,베이지, 다갈색 등의 색으로 칠해져 있고 딱딱하고 보잘 것 없는 장식물이나 조각이 널려 있다. 1층 처마에는 필자에겐 다만 한낱 문양紋樣에 불과한 예의 아라비아 문자로 씌어 진 간판이 결려있다. 그 옛날에는 이 정도도 꽤나 모던한 것이었겠다. 기나긴 역사와 지방 색에서 오는 텃세 탓일까 깡그리 빛 바래고 말았다.

관광객 중에는, 이편이 오히려 정취가 있고 오소독스한 분위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건물은 낡았다하더라도, 이 거리가 지닌 생활력 에너지에는 압도당한다. 거리는 소음의 도가니였다. 파단인, 아프카니스탄인, 미국인, 중국인, 백, 청, 핑크, 갈색, 갖가지 색의 민속복장, 이슬람의 모자나 터번을 쓴 사내들, 그 한 복판을 당나귀에 이끌리는 승합마차, 소형의 삼륜트럭을 개조하여 택시로 바꾼 동력 차, 지프차, 마이크로 버스등이 내 달린다.

마차 등에는 5~6인, 조그만 동력 차의 객석에도 3인은 앉아있다. 땀이 베이고 먼지투성이인 사내들이 발 디딜 틈도 없이 조여 앉아 있는데도 한마디 말이 없다. 일방통행의 소로(小路)라고는 하지만, 길모퉁이에 교통신호라곤 하나도 없다. 실로 무질서하기 짝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결코 교통사고 따위는 일어나지 않는 것이 불가사의할 정도다. 바깥 길에 면하여 일용잡화, 식료품을 파는 상점이 줄줄이 서 있다.

과일가게의 진열장에는 볏짚으로 짠 광주리가 놓여 있고, 빨갛게 물이 오른 석류 알이 담겨져 있다. 천장에서는 바나나가 내려뜨려져 있고, 그 아래엔 귤, 사과가 단보드(board)상자에 든 채 나란히 놓여 있다. 백열등 전구가 묘하게도 반가움을 부른다. 다른 진열대 위에는 마른 나무열매가 팔리기를 기다린다.

호두,피너츠,아몬드,잣,해바라기,수박씨등 종류도 풍부하고 값이 싸다. 상당량의 말린 과일(Dry fruit)이 이란, 아프카니스탄으로 부터 유입된다고 한다. 형형색색의 사탕과자가 더미더미 쌓인 상점 앞을 지난다. 페샤왈 특유의 흑사탕 냄새로 취하고 말듯 하다. 찌익찌익 소리를 내며 야채를 벗기고 있는 상점도 있다. 제각기 정식 호칭이 있겠으나, 양고기 햄버거,새鳥고기, 카레, 생선튀김, 어느 것이나 입맛을 돋군다.

돌연 눈앞 통로에서 처녀를 대동한 품위 있어 보이는 부인이 깔개를 펼쳐 놓고 장사를 시작한다.
헌 옷가지와 자기가 쓰던 물건들인지, 팔찌나 목걸이를 내 놓는다. 아프카니스탄에서 피난해 온 난민 모녀였다. 필자가 방문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페샤왈 주변에 250만 명이나 되는 아프칸 난민이 있었다.

긴장 감도는 국경거리

"언제나 이렇게 경찰관이 서 있을 게 뭐람. 이거야 원, 데모대를 기다리는 기동대와 다를 게 없잖아." 듣는 이도 없이 혼자 중얼거린다. 이날 토크얄갈 광장은 전에 없던 긴장감이 감돌았다. 길모퉁이에 페샤왈 경찰의 대형 지프가 대기 중이고, 광장에는 최루탄을 손에 든 감색제복의 경관이 줄을 서 있다.

"실은 어제, 전前 지사가 자택에서 암살됐지 뭡니까. 배경은 잘 모르겠지만 파키스탄에서도 유력한 정치가였으니까 정치적인 불만분자의 테러겠지요. 소련이 아프칸에 들어오고 부터 완전히 양상이 달라졌습니다."

페샤왈 대학에서 영문학을 배워 장래 저널리스트가 되기를 바라는 젊은이가 설명해 주었다. 소련병사에게 쫓긴 아프칸 난민이 폐샤왈에 흘러들어, 그에 편승, 파키스탄을 쳐들어 오려는 외국인들이 갖가지 공작을 벌이고 있었다. 지금 페샤왈은 외국 스파이의 소굴이라 한다.

사실 요 2~3년사이 바잘에서만 수 차례에 걸쳐 알 수 없는 폭파사건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

"그래서 우린 데모대를 조직하여 이러한 테러, 외국의 간섭에 대하여 성난 얼굴을 표명하는 것입니다."

광장의 경비는 이와같은 데모에 의한 혼란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었다. 자세히 바라보았더니, 근처건물의 창, 혹은 옥상에도 사복으로 총을 검어 쥔 경관이 지켜 서 있다.

이웃나라의 정치정세 변화가 직접 자기들 사는 곳에 영향을 미친다. 페샤왈은 역시 국경거리로구나 하는 인상을 지을 수가 없었다.

깃사니바쟐

바쟐에 한 발짝 들어서자, 거긴 몇 백년 변치 않는 장사세계였다. 각 종의 다채로운,실로 가지가지 물품들이 길을 메우고 있다. 바잘의 노변 몇몇 집중 하나는 '차이하나'라 불리우는 찻집이다. 칫집 안은 7~8평의 방이 주 개쯤 이어진 듯한 좁고 긴 방에 융단이나 볏 자리를 깔아 놓았을 뿐, 탁자나 의자가 없다. 길 가에 면한 창에는 흔히 서양 호텔등에서 볼 수 있는 난간이 붙은 작은 발코니가 달려 있다.

그 옛날, 길에 선 예인藝人 노랫 꾼이 이 발코니 너머 방에 있는 손님에게 말을 걸어 노래를 선사했다한다. 이 바잘의 통칭인 '깃사니'란 이야기를 들려주는 예인이란 뜻이다. 한국 풍으로 말하자면 만담가랄까. 예전부터 파단 속의 영웅전설이나 연애 담의 목소리가 흘렀던 '차이하나'는 그러나 지금은 만담가 마저 사라지고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로 떠들썩하다.

어느 찻집이나 입구근처의 한단 높은 곳에 부뚜막이 있고, 프로판가스 불이 타오르고 있다. 그 위에는 홍차와 밀크가 든 작은 도자기 포트가 7~8개나 올려져 있어 비등하는 거품이 슈~쓔~ 소리를 낸다. 하나의 포트에서 네잔이나 나와, 1 루피50바이사스, 한국 돈으로 150원 정도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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