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으로 이런 말들이 여자에게만 쓰이고 있다는 점에서 불순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한 편의 성*性에만 붙여지는 것은 불건전한 현상임에 틀림없다. 그렇다고 해서 개똥남이나 된장남이라는 말도 상대적으로 생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옛날 환향녀 또는 화냥년이라는 말이 있었다. 몽고에 끌려 갔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즉 환향*還鄕한 여성을 지칭하다가 의미가 확장된 단어이다. 차후 화냥년은 성이 문란한 여성을 저질스럽게 비하하는 단어로 쓰이게 되었다. 그런데 성이 문란한 남성을 비하하는 말은 여간해서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화냥년에는 편파적이고도 혹독한 성차별 관념이 개재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개똥녀나 된장녀에도 화냥년처럼 왠지 여성 비하의 파시즘이 함의되어 있다. 그러므로 나는 이런 단어의 사용에 내켜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유행어에 반영되어 있는 사회적 코드까지를 부인할 수는 없다. 모든 언어에는 사회성이 있게 마련이다. 화냥년에도 외적의 침입과 성의 수탈이라는 역사적 얼룩과 함께 경위야 어떻든 다른 남자에게 몸을 허락한 여성을 백안시하는 남성들의 이중적 집단 무의식이 숨어 있다.
마찬가지로 개똥녀에도 오늘날 한국 여성들의 지나친 애완동물 애착 현상이 나타나 있다. 인간의 애완동물 집착은 내가 보기에도 부자연스럽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동물 학대 행위라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을 터이다. 개중에는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이 세련된 현대인의 생활 풍모라는 오해를 갖고 있는 사람은 혹시 없는지? 대관절 뭐가 그리 외로워서 초라하고 누추한 동물을 볶고 지지고 다듬고 껴안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같은 이치로 된장녀에도 한국 사회에 실재하는 특정 양상이 개입되어 있다고 봐야 하겠다. 된장녀를 명품 선호 여성과 직결하는 것은 피상적인 관점이다. 기실 된장녀란 전통적인 관습 중 여성에게 이로운 것은 수용하면서도 불리한 점은 여성 차별이라고 반발하는 여성을 풍자하는 데에서 비롯된 말이다.
이를테면 한국에는 신델레라 드림에 젖어 왕자에게 눈도장을 찍히기 위해 명품으로 치장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페미니즘을 극단적으로 신봉하는 여성이 이외로 많다는 것이다. 이런 견해를 가진 사람들은 한국의 스타벅스 커피값이 유난히 비싼 것까지 된장녀들의 책임이라고 몰아부친다.
사실 된장녀의 애환과 진실은 다른 데에 있다. 그네들은 커피 맛도 가격도 미각적으로 또는 합리적으로 헤아리지 못하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명품 소비를 인격의 세련성과 결부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된장녀는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능력도 의지도 근면성도 없으면서 남자의 경제력에 의존해 사치를 일삼는 여자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언필칭 된장녀는 조건 좋은 남성과 결혼해야 한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한다는 것이다.
유부녀 중에도 된장녀가 의외로 많다고 한다. 그네들은 외간 남성과 골프를 치러갈 때에도 그린피 등의 비용을 남성이 부담해야 여자로서의 자존심이 선다는 요상한 논리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소름끼치는 점은 된장녀 슬하에서 자라는 딸은 십중팔구 된장녀가 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똥인지 된장인지, 다시 말해 삶에서 가치없고 더러운 똥과 가치 있고 맛 있는 된장을 구분할 수 있는 개념이 없는 여자가 바로 된장녀라는 것이다. 즉 그네들은 삶의 진정한 가치를 헤아릴 줄 모르는 일견 거지처럼 불쌍한 여인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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