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내게 그믐달로 살라 한다
스크롤 이동 상태바
산은 내게 그믐달로 살라 한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로 보는 세상 52>박목월 '산이 날 에워싸고'

 
   
  ^^^▲ 토종 바나나라고도 불리는 으름꽃
ⓒ 으름/우리꽃 자생화^^^
 
 

산이 날 에워싸고
씨나 뿌리며 살아라 한다
밭이나 갈며 살아라 한다

어느 짧은 산자락에 집을 모아
아들 낳고 딸을 낳고
흙담 안팎에 호박 심고
들찔레처럼 살아라 한다
쑥대밭처럼 살아라 한다

산이 날 에워싸고
그믐달처럼 사위어지는 목숨
그믐달처럼 살아라 한다
그믐달처럼 살아라 한다

이 시는 1949년에 나온 <청록집>에 실린 시다. 이 시를 읽으면 금방이라도 내 자신이 흙내음이 물씬 풍기는 어느 한적한 시골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아무런 고통도 슬픔도 없는 그런 세상... 우리 인간도 그저 대자연의 한 부분처럼 그렇게 살아갈 수만 있다면 그 어떤 원한이나 미움, 아픔, 절망 등이 생길 수 있겠는가.

여기에서 산은 세상살이의 온갖 어려움이자 내가 태어난 고향이다. 다시 말하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산 같은 온갖 장애물들을 만나다 보니, 오늘도 자연 그대로인 채 그기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고향이 시인의 마음을 잡아 끄는 것이다. 그래서 산은 시인더러 이 세상의 더러운 꼬락서니 더 이상 보지 말고 고향의 품에 돌아와 씨 뿌리고 밭을 갈면서 살아가라고 하는 것이다.

흙 속에 씨를 뿌리면 이내 싹이 트고 자라나 꽃이 피고 열매를 맺듯이 그렇게 살아가라고 하는 것이다. 아니 시인 자신이 그렇게 살아가고 싶은 것이다. 내가 살아가는 모습이 호박이든 들찔레나 쑥대밭 같은 모습이든 그게 무슨 상관이랴. 또한 제 아무리 고개를 치켜들고 이 세상을 활개쳐 보아도 결국 대자연의 순환의 이치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그리하여 때가 되면 누구나 그믐달처럼 사위어지고 마는 것을. "그믐달처럼 살아라 한다"라는 것은 모든 것들은 언젠가는 그믐달로 기울어지고 만다는 것을 깨치고 살아가라는 말이다. 사람이든 풀과 나무든 처음 태어나면 점점 차오르는 것만 보일 뿐이다. 하지만 보름달처럼 모두 다 차오르고 나면 그때부터는 어떻게 되겠는가.

'청록파'라고 하면 박두진, 박목월, 조지훈 시인을 말한다. 이 시인들은 서로 시를 쓰는 방법은 조금씩 달랐지만 모두 대자연을 소재로 인간의 심성을 담은 시를 써온 시인들이다. 청록파란 이름 또한 1946년 6월에 이들 세 시인이 <청록집(靑鹿集)>이란 공동시집을 펴내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래서 '국화 옆에서'의 시인 서정주는 이 세 시인들을 자연파라고 불렀다.

박목월 시인은 '나그네'에서 보듯이 향토적 서정의 바탕 위에서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삶의 의식을 민요조로 노래했다. 이에 비해 '승무'의 시인 조지훈은 우리의 고전미에 문화적 동질성을 담아 일제에 저항하는 시를 주로 썼고, '해'의 시인 박두진은 시 속에 자연에 대한 사랑과 기독교적인 신앙을 심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가장많이본 기사
뉴타TV 포토뉴스
연재코너  
오피니언  
지역뉴스
공지사항
동영상뉴스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 서울특별시 노원구 동일로174길 7, 101호(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617-18 천호빌딩 101호)
  • 대표전화 : 02-978-4001
  • 팩스 : 02-978-830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종민
  • 법인명 : 주식회사 뉴스타운
  • 제호 : 뉴스타운
  • 정기간행물 · 등록번호 : 서울 아 00010 호
  • 등록일 : 2005-08-08(창간일:2000-01-10)
  • 발행일 : 2000-01-10
  • 발행인/편집인 : 손윤희
  • 뉴스타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타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towncop@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