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협 기자의 실크로드 기행[3]
스크롤 이동 상태바
박선협 기자의 실크로드 기행[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직선거리 1만3천킬로의 비단 길, 그 장대한 여로

03. 카이발 고개의 수수께끼, 파단 족族

1994년 8월, 파키스탄 최대의 도시 '카라치'는 햇볕이 쨍쨍한 여름이었다. 아라비아 해海로부터 불어오는 40도를 넘는 열기가 거리를 온통 뒤덮어 증발시키기라도 할 듯 무덥다. 근대적인 빌딩사이로 반세기도 지난 영국 통치의 그림자를 전해주는 목조건축이 남아 있다.

이 거리에서 필자는 처음으로 그 수수께끼 부족의 한 남자를 만났다. 그는 에어 콘의 효과라고는 아예 없는 택시를 운전, 공항까지 태워다 주었다.

'선생님, 다음 오실 땐 꼭 '폐샤왈'에서 '카이발 고개'를 들려주세요'

돌연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던 운전기사가 들릴 듯 말 듯한 빠른 말로 권유해 왔다.
두둑하게 숱이 많은 눈썹, 부리부리한 눈매와 도드라진 코, 넓은 어꺠, 신장도 180 Cm는 넘어 보였다. 결코 핸섬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건강미에 넘친 얼굴의 젊은이였다.

'페샤왈은 좋은 곳입니다. '파슈돈'의 거리이기 때문입니다.'
'파슈돈? 파단 사람들 말인가요?'
'그럼요. 파단인, 저도 파단 인 입니다.폐샤왈 근처 델라 마을 출신입니다'
'파단이라면 산악지대의 장쾌하고 용감한 부족이라 들었는데 이런 도회지에도 있군요.'
'물론 이슬라마바드에도, 라흘에도 있습니다. 인도, 타이, 필리핀, 미국 세계 각지에 퍼져 살고 있지요. 무엇보다 파슈돈은 우수하기 때문이죠. 한국에는 없습니까?'

자랑스럽게 떠들어대는 으쓱한 표정의 청년을 앞에 둔 채, 필자는 무더위도 잊고 아리송한 기분에 휩싸였다.

파단 족의 사나이가 눈앞에 있다. 힌두쿠시 산록의 전설적인 부족의 젊은이가 필자가 탄 차를 운전하고 있는 것이다.

파단 족! 실크로드의 수수께끼 부족. 파키스탄에서 아프카니스탄에 걸쳐 활동하는 산악부족. 용맹 과감성으로 이름 떨친 이들은 17 년전 소련이 아프카니스탄을 침공한 이후, 계속하여 격렬한 저항을 벌여, 중장비의 소련도 손을 들고만 적이 있다. 그리고 지금 다시 그 때 도와 준'미국'이라는 거대한 세계 앞에서 전투라는 생존 깃발을 휘날리고 있는 것이다.

파단 족은 무기 만들기의 명인이기도 하다. 전통적으로 무기를 만드는 일에 능숙해 자동소총은 말할 것도 없이 최신식 소형미사일까지 수手작업으로 생산한다. 전리품 중에서 새로운 무기를 발견하면 즉시 이것을 분해, 연구하여 모조품을 만들어 낸다.

그런 일을 전해 주는 일화가 있다. 20여 년 전인가 영국의 챨스 황태자가 이 마을을 방문했을 때의 이야기다. 마을 사람들이 황태자가 가지고 있는 호신용 소총을 선망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당혹해 하면서도 태자는 마을 사람들 소망대로 총을 건네 준 채, 마을을 순회 시찰하였다.

이윽고 한 나절이 되어 돌아 온 황태자 앞에, 앞서의 마을 사람들이 두 자루의 총을 들고나섰다. 하나는 황태자의 총, 다른 한 자루는 마을 사람들이 만든 모조품이었다. 황태자는 두 자루의 총을 손에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았으나 자기의 이름까지 똑같이 박혀 있어 도무지 진품을 구분할 수가 없었다 한다.

이야기의 진위야 알 수가 없으나 그들의 무기제조 솜씨를 나타내는 그럴싸한 일화임엔 틀림없다. 필자는 파단 족 젊은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들의 생활을 돌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험준한 산악생활, 실크로드의 요충지에서 스스로를 지키면서 삶의 기반을 구축하여 온 사람들, 그들 파단 족이야말로 실크로드 2 천년의 역사 속에서 약동하는 증언자가 아닐까.

파단 족의 역사는 길다.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투스'의 역사서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남아있다.

'바크드윜 국의 카스트로스시 주변에 살고, 여러 인도 인 중에서도 가장 호전 적이다.'

또한 알렉산더 대왕이 힌두쿠시를 지나고자 했을 때 완강히 저항했던 유명한 산악부족이 그대로 오늘날의 파슈돈, 즉 '파단 인'에 다름 아닌지, 어떤 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고대인종과 뒤에 이 땅에 유입된 사카, 대월씨, 흉노등 실크로드에서 활약하던 민족이 혼합되어 지금의 '파단 족'이 이루어진 것만은 틀림이 없을 것이다.

국경거리 둘크 햄

카이발 고개는 역사의 고개다. 수 많은 영웅, 패자覇者가 이 고개를 넘었다. 현재는 파키스탄과 아프카니스탄의 국경으로 고개 서 쪽에 검문소가 있다. 파키스탄 쪽 검문소를 '둘크 햄'이라 하며, 이 국경선을 '듀란드라인'이라 부른다.

1893 년 아프카니스탄 전쟁 종결 무렵, 인도-아프카니스탄을 분할하는 국경협정에 조인한 영극 듀란드 경의 이름을 딴 것이다. '파단 족'의 생활권은 이 국경선을 사이에 두고 아프카니스탄과 파키스탄에 퍼져 있다. 오전 11시가 지나자 국경은 분주해 지기 시작했다. 사람의 왕래가 빈번 해지고 트럭, 버스, 마차가 오락가락 한다. 아프카니스탄 쪽에서 농작물을 실어 와 생활 필수품을 가지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남자들은 머리에서부터 모포를 꾸욱 눌러 써 얼굴만 빼꼼히 내 보였는데 키의 두 배가 넘는 봇짐을 지고 있다. 봇짐 속에는 면이나 포, 양동이 등의 일용품이나 보리 등 식료품을 담고, 여자들은 머리에서 손끝까지 오는 하얀 베일을 쓴 채, 조그만 쇼핑백을 들었다.

국경이라 느낄 수 있는 표시라면 파키스탄 쪽에서 2 명의 말레지아 민병이 소지품을 간단하게 체크하고 있는 것뿐, 사람들은 트럭, 버스를 포함하여 그야말로 자유롭게 국경을 넘어 오가고 있는 것이었다. 말레지아 인이 들려주었다.

'여기는 파단 족의 땅입니다. 선조 대대의 토지를 수수하게 지나다니는걸 누가 뭐라겠습니까?'
'그러나 무슨 수로 '파단 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까?'
'뭐라구요? 모두 안면이 있다구요. 낮선 사람이 있으면 이내 발견되고 말지요. 의심스런 인물은 출신 부족을 불러 얼굴을 보입니다. 얼굴이 패스보드(Passport)니까요.'

소지품을 체크하고 있는 민병을 건너다보자 기묘한 동작이 눈에 들어왔다. '이 사람이다'라고 생각되는 무리를 불러 세운 뒤 무엇인가 뒤지고 있다. 이 국경에는 곧바로 통행을 허가 받아 지나가는 사람과, 일일이 소지품을 풀어 장시간 서성거리는 사람들의 두 부류가 있다. 별다른 곳이 아니다.

'국경체크'라는 이름아래 눈감아 주는 대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머리에서부터 뒤집어 쓴 모포란 참으로 편리한 것이어서, 그 뒷전에서 몇 푼의 돈이 오가는 것이다. 실로 그 타이밍은 절묘하다. 이렇게 통행자에게서 금품을 수수하는 것은 조금도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이미 수세기에 걸쳐 행해져 온, 이 고개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의 지혜'인 것이다.

돌연, 저~쪽 아프카니스탄으로 부터 찢어질 듯한 자동소총의 연발소리가 들려왔다. 이쪽 파키스탄측의 병사들도 아연 긴장, 움직임이 자못 활발해 보였다. 숲 속에서 몇 사람의 전령이 뛰어나와 보초에게 화급火急을 알린다. 그때까지, 신경도 쓰지 않고 있던 필자에게 대해서도, 아프카니스탄 쪽에 카메라를 돌리지 말라는 경고가 떠러졌다.

'아프카니스탄의 게릴라와 소련 병의 충돌입니다.'
'게릴라는 이 부근에도 많이 있습니까?'
'저 숲 건너편은 아프카니스탄의 게릴라, 무자하딘의 땅입니다. 거의 매일 총성이 들리지요.'
'파키스탄으로부터 적쟎은 무기가 흘러든다고 들었습니다만.'
'천만에, 파키스탄이 아니라 북서변경의 부족지구로부터지요.'
'부족지구도 파키스탄의 영역이 아닙니까?'

'기실은 파키스탄 정부의 통치아래 있긴 합니다만, 거기에는 오랜 세월관습에 기반을 둔 규율이 있어 파키스탄의 법률도 미치지 않습니다. 예컨대 교역을 하고자 하더라도 세관이 없고, 살인을 저지르더라도 경찰이나 재판소도 없습니다. 모두 부족장의 책임아래 해결되지요. 선생님의 여행도 이 땅의 마리크(부족 장)가 허가하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슬라마바드에서 동행한 정보성情報省의 담당관 '밀져'씨는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씨~익 웃는 것이었다. [계속]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가장많이본 기사
뉴타TV 포토뉴스
연재코너  
오피니언  
지역뉴스
공지사항
동영상뉴스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 서울특별시 노원구 동일로174길 7, 101호(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617-18 천호빌딩 101호)
  • 대표전화 : 02-978-4001
  • 팩스 : 02-978-830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종민
  • 법인명 : 주식회사 뉴스타운
  • 제호 : 뉴스타운
  • 정기간행물 · 등록번호 : 서울 아 00010 호
  • 등록일 : 2005-08-08(창간일:2000-01-10)
  • 발행일 : 2000-01-10
  • 발행인/편집인 : 손윤희
  • 뉴스타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타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towncop@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