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끼리, 우리 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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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끼리, 우리 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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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사이에 여자가 끼어있어야 한다고?

바다에는 말뚝을 박을 수도 없고, 담장을 쌓을 수도 없다. 아무 자국도 남기지 않는다. 바다처럼 텅 비어 있는 공간(空間)이야말로 당신이 만드는 시(詩)의 자리이다.
- 이어령의 “시(詩)를 쓰려거든 여름바다처럼 하거라” 중에서 -

남자는 타고난 외톨이가 아닐까. 다른 사람끼리는 그렇다 치더라도, 심지어 할아버지-아버지-아들 한 핏줄 삼대(三代)까지도 만나면 서로 부딪친다. 삼대는 똑같은 Y염색체가 유전되어 이어졌지만, 삼각형의 꼭지 점처럼 셋으로 따로 갈리기는 마찬가지이다. 가능하다면 삼대는 떨어져 사는 게 더 좋다.

우리끼리 따로 놀자, 어릴 때부터 남자가 동무들에게 해온 익숙한 말이다. 일단 이렇게 편을 가르면 저희들끼리는 잘 어울려야할 텐데, 모임의 주도권을 놓고 다시 곧 다툰다. 만약 평화가 유지되고 있다면, 그것은 그들 사이에 순서가 정해진 다음부터일까. 그래서 남자들은 모이면 줄을 서고, 열을 지어 민족을 이룬다. 그리고 각기는 그런 갈등에서 벗어난 고향을 찾는다.

민족과 고향은,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고립된 남자들이 애써 추구해온 문화유산이다. 그러나 여자에겐 민족과 고향이란 개념이 본능적으로 흐릿하다. 어쩌면 여자는 자기 자신이 곧 민족과 고향의 시원(始原)이라는 긍지를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다만 한 남자의 씨를 잉태하면서부터이다.

인류는 처음부터 근친혼금지의 원칙을 지켜왔다. 당연하게 딸은 다른 씨족으로 보냈다. 여자교환이며, 여자로서는 환승(transfer)이다. 그리고 다른 씨를 가진 한 아이의 어미가 된다. 이때 여자는 자기가 낳은 아이의 고향이 되고, 이 아이는 그 마음의 크기만큼 한 민족의 애비로 성장한다. 할머니-어머니-며느리의 이종(異種) 삼대는 삼각형의 꼭지 점을 잇는 변과 같다.

15세기 지중해에서는 세 명의 남자를 주목할만하다.
1. 로렌초 데 메디치(1449-1492) - 르네상스를 이끈 엔진
2. 메흐메드 2세(1451~1481) - 동로마제국을 멸망시킨 술탄
3. 크리스토퍼 콜롬버스(1451~1506) - 아메리카 신대륙 발견

같은 시기의 한반도에도 자랑스러운 남자 세 분이 있었다.
1. 신숙주(1417-1475, 호 보한재) - 한글창제를 주도한 능력
2. 성삼문(1418-1456, 호 매죽헌) - 죽음까지 초극한 지조
3. 김시습(1435-1493, 호 매월당) - 삶과 자유의 지평을 확장

위에서 열거한 남자들은 모두 위인(偉人)들인가? 음, 그렇다. 어릴 때 읽었던 위인전집에 낄만한 인물로서 손색이 없다. 그래서 작가가 좀 과장되게 그려놓은 그들의 삶에 가려서 우리는 쓸데없는 열등감에 빠져 있었다. 이름 지어, “위인콤플렉스”라고나 할까. 그러나 필자는 그들이 위인이기 때문에 샘플로 잡은 것은 아니다. 말 그대로, 하나의 남자로서 샘플일 뿐이다.

동화나 위인전의 이야기는 대체로, 착한 사람이 현재의 고난을 극복하고 장래에 자기의 꿈을 성취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성공담을 돋보이게 하기 위하여 호의호식하던 나쁜 사람이 반대로 거꾸러진다는 대조를 설정한다. 그러나 이런 구도에는 문제가 있다. 어떤 사람이든 선악이 공존하며 일장일단이 있기 마련이다. 사람은 누구든지 별 차이가 없고, 모두 비슷하다.

지상(地上)의 물방울은 모두 바다에 이르고, 그 근원을 바다에 두고 있다. 물방울은 분자식이 H2O로서 서로 구별이 없기 때문에 그것들 사이에서는 선악의 구별이 없고, 승패가 있을 수 없다. 물방울은 한마디로 물질로서 정직할 뿐이다. 위인과 폐인의 차이는 얼마나 정직한가 하는 정도(degree)이다.

태백산에는 약 천 미터 높이의 삼수령(三水嶺)이 있다. 이 분수령에 떨어진 빗방울은 남한강, 낙동강, 오십천 세 갈래로 나뉜다. 그러나 흐르는 방향과 하천길이 다를 뿐 결국은 흘러내려 모두 해수면 영(零) 미터에서 모인다. 바다는 가장 낮은 곳에 있다. 그런 곳이야말로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다.

인류문화의 척도는 그때의 여성지위와 그 높이에 따랐던 것 같다. 삼각형의 뾰족한 꼭지가 남자라면 꼭지를 잇는 변은 여자이며, 그 넓이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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