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협 기자의 실크로드 기행[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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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거리 1만3천킬로의 비단 길 그 장대한 여로

^^^▲ 필자 박선협씨^^^
02. 불로장수不老長壽의 마을, 훈자

훈자의 삶

훈자 강에 면한 카라코룸 하이웨이가 오른 쪽으로 큰 굴곡을 이룬 곳, 이곳을 돌아들면 눈 앞에 돌연 봄이 전개된다. 훈자 강을 사이에 두고 약간 큰 농지가 있다. 게다가 산허리에 이르는 경사면에는 돌담에 의지한 조금조금한 계단식 논밭이 만들어져 있다. 거기에 심어 진 살구나무가 일제히 꽃을 피워 계곡마을은 아스라이 핑크 빛으로 물들어 있다.

활짝 핀 벚꽃을 보는 것과 같은 광경이다. '군제라브'고개로부터의 길이 험준한 자연 그대로의 것인 양 급격한 단애斷崖의 연속이었던데 비해 여기는 별천지, 도원경을 생각케 한다.

세계적인 장수마을인 '훈자'는 알렉산더 대왕 말기의 후예가 살았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카라코룸 하이웨이가 개통된 후 '훈자'의 삶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수도 40, 한 학교에서 60~70인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고등학교도 3 개 있으며, 의무교육은 아니지만 적령자의 7~8 할이 통학하고 있다.

옛부터 있었던 개인병원 이외에 정부에서 세운 병원도 두 곳이나 있다. 마을 사내들도 농업이외의 직업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마을의 8 할이 경찰관, 학교선생, 전문직업인 혹은, 도로건설 등 정부의 지방개발사업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그러나 변함없이 '훈자'마을 사람들의 아침은 빠르다. 기도를 드리기 위해 오전 4시 반에는 기상한다
그들은 열성적인 이슬람교도들이다. 7 시까지는 아침식사를 끝낸다. 식사는 감자, 무우, 양배추, 콩 등 야채에 계란 거기다 '피이티'라고 불리는 여린 향료가 들어 간 흑빵과 묽은 홍차가 메뉴의 전부이다.

3 식 모두 이와 별 차이가 없다. 눈에 뒤덮이는 겨울이면, 야채를 채취할 수가 없다. 그 때문에 땅에 굴을 파서 야채를 보전한다든가, 지하실에 건조시켜 보존하는 지혜가 생겨났다.

어린이들은 8 시경이면 삼삼오오 모여서 산길을 돌아 학교에 간다. 수업은 오후 2 시경까지, 어린이를 학교에 보내고 나서부터 농업에 종사하는 사내들은 혼자서 혹은, 부인을 대리고 들판에 나간다. '훈자'의 여자들은 '일 벌레'들이다. 아침식사가 끝나 설거지를 마치기가 바쁘게 들에 나가 밭일을 하고, 쉴 때는 나무 아래서 수를 놓는다.

식용으로 키우고 있는 양, 산양, 소의 뒷바라지도 여자들이 도맡는다. 한 집당 평균 7~8 인의 가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가족들의 세간을 혼자서 처리하기 때문에 꽤나 바쁜 일과를 보낼 수 밖에 없다. 농업의 수입은 계절에 따라 다르다.

여름엔 과일수확으로 그 수입이 겨울에 비하여 높은 편이다. 연간 1 만 루피의 수입이라 한다. 한국 돈으로 일백만원에 해당된다. '훈자'의 고급직종은 경찰관으로 1 개월에 7~8백 루피, 한국 돈으로 7 만원에서 8 만원의 급료를 받는다. 그러나 대개 한 집안에는 그 외에도 일손이 있고, 농업수입까지 합치면 한 가족이 월 2 천~ 3 천 루피(20만~30만원)의 현금 수입이 있는 셈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식료의 대부분은 자급자족이기 때문에 이 정도의 수입으로도 대충 살아나갈 수가 있다. 무엇보다도 귀중한 것은 살구, 만개한 꽃이 가을이면 수 많은 열매를 달게 하지만, 그 살구야말로 겨울의 보존식품으로 없어서는 안될 물건이다. '훈자'에는 오락시설이 빈약하다.

그러나 어린이들은 놀이에 관한 한 천재다. 해가 질 때까지 산의 경사면 빈터를 이용하여 하키나 풋볼에 몰두한다. 어른에게는 이것이라 할 만한 오락이 없다. 저녁식사 후와 잠들기 전의 짤막한 사이에 라디오를 듣는다 든가 담소를 나누는 정도다. 아침이 이르기 때문에 9 시가 지나면 잠 자리에 든다.

물론 취침 전의 기도고 빼 놓지 않는다. 표고 2 천 5 백 미터, 레스트 하우스에서 바라보면 밤의 장막이 내린 '훈자'는 각별한 정취를 안고 있다. 3 백미터 가량 아래의 '카타코룸'하이웨이가 훈자 강어귀에 면해 일직선으로 뻗어 있다. 마을 전체를 둘러싸듯 낮은 구릉이 있고, 배후에, 라카포시, 울탈, 디란이라는 7 천미터급의 거봉이 받치고 있다.

때 마침 동쪽 하늘에 떠 오른 달빛에, 높은 산의 눈벽이 떠올라 산록은 완전히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이 그림자 사이로 민가民家의 불빛이 여기저기 깜박이며 확연한 삶의 숨소리를 전해 준다. '훈자'는 아직 완전하게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물론 외등도 몇 안될 뿐 아니라 그림자가 진 골짜기에서는 달빛에 드러난 '카라코룸' 하이웨이의 아스팔트가 은색의 반사를 보여준다.

아리무랏드 할아버지

'잘 오셨습니다. 한국에서 나를 만나러 일부러 오시다니.....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텐데......, 어서 드십시요'
'훈자'의 아침 죽인 '다우트스프(보리 스프)'를 권하면서 '아리무랏드' 할아버지는 자리에 가 앉았다.
'올 해 나이가 어떻게 되셨습니까?'
'내가 태어났을 무렵엔 호적같은 것이 없었기 때문에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내 기억으로는 일백팔세라고 생각합니다.'

'아리무랏드'할아버지는 장수마을 '훈자'에서도 제일 나이가 많은 어른이다.
'장수비결은 무엇인가요?'
'무엇보다 하는 님 덕분이겠지요. 거기다 식사도 있고요. 감자, 시금치 등 땅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변변챦은 음식으로 일관 해 왔습니다.'
'중국에 다녀오신 적이 있다면서요?'

'여덟 번이나 다녀왔습니다. 우리 집은 대대로 왕궁에서 왕의 심부름을 하면서 일해 왔습니다. 중국에는 왕 대리로 세금을 바치기 위해 갔었지요. 다슈구르칸에 가서 거기서 새로운 말과 안내인을 받아 야르칸트를 지나 가슈칼까지 여행하는 것입니다.'

1 개월이나 걸리는 고난의 여로旅路였다 한다. 중국 측의 환영행사도 대단했던 모양. 귀로에는'훈자'의 밀(왕)에게 5 백필 이상 나가는 비단 답례 품과 커다란 병에 든 차가 여러 개 보내졌다 한다.

'50년 전의 '훈자'는 행복했지요. 사람들은 왕을 존경하고 검소환 생활에 만족하며 살았습니다. 사치나 호사스러움을 말하지 않는다면 이처럼 좋은 곳은 없을 것입니다.'
'가족은 몇 사람이지요?'
'단 한번만의 결혼으로 아들이 둘, 딸이 둘 태어났습니다. 지금은 1 백 정도로 분가가 되어 한 집에 15 인이 있으니까 1 천5 백인의 일족이 있는 셈이지요.'

'아리무랏드' 할아버지는 다리와 허리가 약해졌다는 것 이외는 건강하며, 병치례 한번 앓아 본 적이 없다 한다. 귀도 눈도 정상이다.

'유감스럽게도 가난해서 마누라를 얻지 못하고 있지만 언젠가 돈이 모이면 또 한번 결혼하고 싶소이다. 한국에 누구 좋은 사람 없습니까?'

찻잔을 앞에 두고 주위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집 밖에서 격렬한 리듬이 들려 왔다. 노인 집을 방문한 필자를 마을 사람들이 환영해 주는 것이었다. 집 앞 조그만 광장에 춤추는 들러리가 생겨났다. 소리를 듣고 달려나온 어린이들이 모여 춤 추고 있었다.

악기 편성은 큰북이 둘, 작은북을 둘 씩 매달아 놓은 것이 셋, 날라리와 같은 나팔이 둘이었다. 단조롭기는 하지만 애조를 띠고 휘 감겨 오는 음악에 따라 사람들이 교대로 경쟁하듯 춤 췄다. 광장을 둘러 싼 집집마다 지붕과 지붕에 여자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춤추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장식물을 다는 것도 잊은 채, 춤추는 손놀림, 빠른 발놀림에 웃음이 사라질 줄을 몰랐다.

이럴 때 '훈자'여자는 실로 밝고 아름답고 풍부한 표정을 보여 준다. 몸에 걸친 복장도 빨강, 노랑, 파랑으로 선명하여 마치, 꽃이 피어난 듯 아름답다.

돌연 박수가 터졌다. '아리무랏드' 할아버지를 선두로 5 인의 장로들이 춤 마당에 등장한 것이다. 필자를 위해 환영의 춤사위를 보여 준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본 바탕 훈자 댄스다'라는 듯. 양모로 짠 발목까지 쳐진 긴 옷소매를 높이 쳐들고 춤추기 시작한다. 왼 발을 중심으로 리듬에 맟춰 흔들~흔들 돌아간다. 힘차고 격조 높은 본격적인 춤이다.

춤이 절정에 달할 무렵에는 어른, 어린이 합쳐 2 백인은 됨직 했다. 필자는 이 기력이 정정한 노인들의 건강과 '훈자'의 훈훈한 전통이 언제까지나 이어지길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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