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과 나
5.18과 나
  • 지만원 박사
  • 승인 2018.10.29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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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은 지만원으로 인해 진실 찾을 것…이전의 5.18은 “반역적 사기극”

▲ ⓒ뉴스타운

5.18의 대명사는 광주인이 아니라 지만원

‘5.18민주화운동’에는 주역이 없다. 시위를 조직한 사람도 없고, 시위를 지휘한 사람도 없다. 도깨비가 시위를 지휘한 것이다. 5.18에는 두 개의 성격이 공존한다. 하나는 ‘사기극’ 다른 하나는 ‘진실탐구’다. “5.18의 진실탐구”에는 주역이 있고, 그 주역은 지만원이다. 빨갱이들은 5.18을 윤상원과 동일시하려다 실패했고, 박남선과 동일시하려다 실패했다. 박남선은 1954년생으로 중학교 2년 중퇴하였고, 1973.에는 절도죄, 1979.에는 협박죄로 각 징역형과 벌금형을 선고받은 파렴치 족이다. 수많은 언론들이 이 인간을 5.18의 영웅이라고 띄웠고, 이번 재판을 통해서도 그는 재판정에 나와 그가 600명을 총 지휘했다고 큰 소리를 쳤다. 광주 부장판사 7명은 박남선을 ‘5.18의 영웅’으로 판결했다. 하지만 그의 허풍은 1980.8.18. 전교사 계엄보통군법회의 검찰부에 출두해 진술한 ‘피의자신문조서’에 의해 해괴한 허풍인 것으로 들통났다. 나는 이 문서를 광주법원에 제출했지만 광주의 부장판사들은 이 모두에 눈을 감았다.

민주화라는 마패는 산산조각 나고 5.18에는 “반역의 사기극“이라는 붉은 딱지 붙어

이런 것을 놓고 언론들에서는 지만원이 광주의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고소를 당했고, 손해배상 소송을 당해 뉴스타운 호외지 발행과 관련해서는 광주법원으로부터 8,200만 원을, 대형 화보책 ”5.18영상고발“에 대해서는 9,500만 원의 손해배상판결을 받았다며 대서특필했지만, 그것은 광주의 단말마요 훗날 뭇 국민들로부터 손가락질 받을 일생일대의 오점일 뿐이다. 본인들만 아니라 그들의 자식들도 손가락질을 받을 것이다. 이런 저질 판결이 얼마나 오래 가겠는가. 결국 남는 것은 진실뿐이다. 사기극은 진실을 이길 수 없고, 세도는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야만은 문명을 이기지 못한다. 5.18이라는 물건은 이제 지만원의 소유가 됐다. 민주화라는 초특급의 마패는 산산 조각났고, 이전의 5.18에는 ”희대의 반역적 사기극“이라는 붉은 딱지가 붙은 것이다.

‘내가 광수다’ 하고 나타난 전라도 부나비 14명, 모두 소송사기꾼들

전 광주시장 윤장현과 전 5.18상임이사 김양래가 나서서 18명의 광주변호사들로 “지만원 죽이기 변호인단”을 구성하여 전라도-광주 땅 구석구석에서 이름 없이 살아가는 14명의 부나비 인생들을 소송에 내세워 ”네가 제 몇 번 광수라 하라“며 소장들을 써주었다. 이들에 대한 형사소송은 다행히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고 있다. 2016.5.19. 첫 재판이 열린 이래 재판부가 3번째 바뀌었다. 지난 10월 25일, 이들 14명에 대한 증인신문이 다 완성되었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최종 답변서에 이들 14명은 모두 소송사기범들로 증명돼 있다. 상황에 대한 알리바이, 시간에 대한 알리바이가 전혀 엉뚱하고 얼굴이 영 아니다.

얼굴에 대해서는 노숙자담요가 과학적 분석을 제시했지만, 광주변호사 18명은 흐린 사진 2-3장 내놓고 ”육안으로만 척 보아도 전라도 인간이 제 몇 번 광수임에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이 황당한 억지는 서울재판에서 전혀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황당한 억지가 손해배상을 물리는 광주부장판사들에게는 일사천리로 통했다. 광주법원의 부장 판사들 7명과 보조판사들 14명, 국가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법복을 입은 것이 아니라 전라도 야바위꾼들의 이익을 확보해주기 위해 대한민국의 법복을 더럽히고 있는 도둑놈들이다.

애국심 없었다면 북한군개입 상상 못했을 것

“설마 1980년 광주에 북한군 집단이 와서 게릴라 폭동을 일으켰을라구?” 지금도 이런 상상을 또라이나 할 수 있는 상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많다. 심지어는 남보다 자기가 더 똑똑하고 잘났고, 더 애국자라며 유튜브 방송을 하는 똑똑이들도 ‘북한군개입’ 주장을 또라이로 매도한다. 하물며 바쁘기로 소문난 정치인들이야 어떻겠는가? 5.18 직전, 일본의 통일신문에는 북한이 대규모 게릴라 부대를 남한에 투입할 것이라는 첩보를 보도했다. 2008.7.4. 연합뉴스는 “1965년 모택동이 김일성에게 남한에 무장게릴라봉기를 일으키라고 강요했는데 이 말을 듣는 순간 김일성은 금방 잘 이해가 안 됐지만 곧 그 의미를 깨닫고 차츰 대담하게 특수군을 수만 명 단위로 양성하여 대남침투 및 해외수출에 사용해왔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비범과 또라이 사이

이 통일신문 보도 내용은 일본을 통해 당시 전두환에게도 전달됐다. 전두환이 이 첩보를 미군 당국과 의논했지만 미국은 현실성 없다고 오판했다. 미국의 정보판단이 항상 살아있는 것은 아니다. 정보는 판단하는 사람의 능력에 달려 있다. 나는 석사 박사 과정 5년 동안 미군 장교단 및 세계 28개국, 장교단에서 차출돼온 미해군대학원에서 세계적 두뇌들과 경쟁해서 그 학교 창설 이래 최고의 천재로 인정받았다. 마지막 구두시험에 참여한 각 분야 교수들이 어려운 질문들을 했지만 나는 오히려 그 교수들이 알지 못하는 분야에 대해 강의까지 했다.

그 많은 교수들은 나의 논문지도 교수단 5명에 당부했다. “저 사람의 두뇌를 잘 활용해 미해군에 실질적인 기여가 되고, 세계 학문분야에 기여하는 논문을 쓸 수 있도록 잘 좀 지도해 달라” 결국 내 논문은 그들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들이 상상하지 못했던 기적을 일구어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무리 격조 높은 미국 연구소에 있는 사람이라 해도 그런 사람들의 판단을 무조건 수용하지 않는다. 미국의 정보판단에 대해서도 나는 참고만 한다. “이 문제는 미국장교들도 못 풀어” 함께 공부를 했던 몇 몇 선배들의 패배의식이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

나처럼 불의에 몸 날렸던 청년, 난 아직 보지 못했다

내가 갖 소위가 되어 전방부대에 투입된 순간이었다. 고생하는 하사관들에게 행패를 부리는 고참 대위 작전과장을 패주었다.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이 하극상 사건이 무사했다면 사람들은 믿어줄까? 베트남에서였다. 갖 육군 중위를 달고 있을 때 한국군을 무시하는 한 미군 고참 소령을 보고 분노하여 그의 발밑에 대고 M16을 쏘아댔다. 그러고도 무사했다. 중위를 달고 7개월 동안 육군본부 장군 전속부관을 하면서 정인숙의 남동생을 패주었다. 정일권 국무총리가 김계원 참모총장에게 “지중위를 엄벌하고 결과보고할 것” 이런 전통문을 보냈다. 나는 정인숙 집에 찾아가 그녀와 담판했고, 이어서 국무총리실에 정복 입고 들어가 “이 전통 작성한 비서관 누구냐, 국무총리가 이런 거나 처리하는 직책이냐” 대들어 결국 그 전통문을 사문화시켰다.

육사 졸업 만 9년 만에 전군에서 1명만 뽑는 유학시험을 쳤는데 영어 100점 만점에 97점을 받아 신기록을 세웠다. 장교들을 불신하는 베트남의 사병 세계에서 나는 1년간 포대장을 한 후 이임사를 다 하지 못했다. 병사들도 울고 나도 울었기 때문이다. 국방연구원에 가서는 육해공군이 내가 나타나기만 하면 긴장들을 했다. 내 관찰결과가 그대로 국방장관에게 전달됐기 때문이다. 나로 인해 전군에 자원관리참모가 새로 생겼고, 부대마다 회계정보가 전산처리 됐다. 여기까지 만 읽은 사람들, 아마도 나를 또 허풍 떠는 또라이로 여길 것이다.

기적으로 인생 궤도에 오른 내 스토리도 거짓말로 듣는 사람들 있을 것

그러나 나는 가는 곳마다 남들과 많이 달랐다. 육사 들어갈 때 낯선 소령이 불합격된 내 키를 올려주었고, 낯선 대령이 천사처럼 나타나 내 부족한 체중을 올려주었다. 이 역시 허풍이라고 생각들 할 것이다. 모두가 상상 밖의 일이라고 치부할 것이다. 바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북한군 개입을 상상하지 못하는 것이다.

김대중의 반역행위 보고도 빨갱이 때려잡을 무기 개발할 생각 못한 주제에

5.18때 나는 미국에서 마지막 논문 손질을 하고 있었다. 5.18에 대해 관심조차 없었다. 1995년부터 1997년 대법원 판결이 있을 때 세상이 그렇게 떠들썩했어도 나는 5.18에 대해 무관심했다. 그때 나는 신문과 방송을 “신선한 충격”으로 장식했던 프리마돈나였다. 내가 망가지기 시작한 것은 살아있는 권력 김대중을 배신(?)하고 그를 빨갱이로 몰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김대중은 나를 참으로 좋아했다. 그를 만나서가 아니라 그가 내 칼럼과 방송 내용들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웃는 얼굴에 침을 뱉었으니 김대중으로서는 괘씸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다. 내가 북한군 개입을 처음으로 의심하기 시작한 것은 김대중의 반역행위를 속속들이 음미하면서부터였다. 그는 무슨 짓이든 벌이고 시치미를 뗄 수 있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5.18이 사기극이라는 사실을 널리 알려야 김대중이 번식시킨 이 땅의 빨갱이들을 소탕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바로 이 시기였다.

자신과 사회에 바친 극기는 없고 탐욕만 키운 위장 애국자들

나를 또라이로 만든 집단은 우익에 더 많았다. 게으르고 비범하지 못한 사람들이 뒷골목에 다니면서 나를 매도한 것이다. 뒷골목에서 나를 매도하는 사람들은 내게 따라붙은 성가만 바라보고 배가 아픈 것이다. 그들은 내가 갖은 저돌적인 성격을 갖지 못했고, 내가 이 세상에 바친 각고의 극기를 바친 적이 없다. 노력도 없고 능력도 없는 것들이 탐욕만 키운 것이다. 전라도 것들이 무서워 벌벌 떨고 조심하는 생쥐 같은 인생들, 5.18 건드렸다 큰 코 다친다며 말 한마디 하지 않았던 인생들, 5.18이 대세라는 생각에 광주에 아부했던 인생들, 모두가 다 어두운 곳에서만 번성하는 바퀴벌레들일 뿐이다.

애국을 외치면서, 빨갱이 때려잡자 목소리를 높이면서 “빨갱이 때려잡는 핵폭탄이 바로 북한특수군”이라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는 가식 자들, 이런 못난 사람들이 어려운 이 시기에 국민들의 시선을 산만하게 분산시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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