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츠페터와 김사복의 정체
힌츠페터와 김사복의 정체
  • 지만원 박사
  • 승인 2018.10.15 1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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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츠페터와 김사복은 1975년 10월 3일, 포천 약사봉 장준하 추락지점 근방에서 한민통 핵심간부인 함석헌, 계훈제 그리고 독일기자 힌츠페터, 그와 함께 행동하는 녹음담당 헤밍루모어 등 많은 사람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했다. 장준하가 약사봉에서 추락사 한 날은 1975. 8. 17.이다. 49제 직전에 이들이 포천 약사봉을 찾았다는 사실은 이들이 당시 반 유신운동으로 탄압받던 장준하와 깊은 동맹관계로 뭉쳐 있다는 것을 나타내 준다.

▲ ⓒ뉴스타운

김사복은 1974년 장준하가 ‘개헌청원 백만인 서명운동 선서’를 했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을 때 함석헌과 함께 있었으며, 1972년에도 재판에 출두하는 함석헌과 장준하를 수행하였다. 2018.5.14. “‘택시운전사’ 주인공 김사복씨, 민주화운동 인사와 오랜 인연”의 제하의 기사를 낸 연합뉴스에 의하면 “김승필씨는 ‘아버지가 5·18 전부터 민주화운동 인사들과 교류를”고 전했다 한다.

▲ 함석헌(왼쪽에서 두 번째 흰 옷을 입은 이), 장준하(맨 앞 안경 쓴 이) 선생 사이로 김사복씨의 모습이 보인다. 1974년 1월 개헌청원 백만인 서명운동 선서를 한 뒤 재판을 받게 된 장준하 선생을 모시고 김사복씨가 서대문 형무소 재판장에 간 날이다. (사진제공=김승필씨) ⓒ뉴스타운

더욱 관심을 끄는 대목은 1975년 8월 15일 국립극장 8.15 기념 행사장인 극립극장에 문세광을 태워다 준 고급 세단이 김사복씨가 소유한 3대의 세단 중 하나이며, 문세광을 태워가 극립극장 앞에서 하차시킬 때 마치 문세광이 귀빈인 것처럼 특별한 모션을 쓴 운전사 황수동(31)이 김사복의 고용인이라는 사실이다.

▲ 1974년 8월 17일자 ‘동아일보’ 기사. 뒷부분에 '김사복'이라는 이름이 보인다. ⓒ뉴스타운

김대중의 국민연합은 남한의 한민통-반국가단체

[대법원 1990. 9. 11., 선고, 90도1333, 판결]

함석헌과 계훈제는 ‘국민연합’(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한 국민연합(1979.3. 김대중 결성)의 핵심인물들이다. 국민연합’은 1980년 5월 7일 제1차 ‘민주화촉진선언’을 발표했고, 이어서 5월 16일 제2차 민주화촉진선언을 발표함으로써 감히 국가를 상대로 선전포고를 했다. 여기에 동참한 21명 명단이 있다. 윤보선 함석헌 김대중 고은 김병걸 안병무 김용식 문익환 김승호 오태순 예춘호 서남도 김종완 김택암 한완상 이태 함세웅 계훈제 장덕필 한승헌.

전라도와 한국 좌익세계에서 김대중은 민주화의 신으로 추앙되고 있다. 그 뿌리는 5.18이고, 5.18은 김대중이 주도했다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김대중은 1980년 5월 16일 국가를 향해 선전포고를 했다는 이유로 5월 17일 밤중 구속됐다. 이렇게 구속될 수 있는 선전포고를 그는 왜 감행했을까? 5.18이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데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확신 없이 그런 무모한 짓을 했다면 그는 생각 없는 돈키호테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계산이 정확한 사람이다.

김사복과 힌츠페터의 정체 분석

한민통은 대한민국을 전복시키기 위해 김대중이 1972년 일본에서 결성한 반국가단체다. 규모는 작지만 북한과 같은 성격의 대한민국 적대세력인 것이다. 김대중이 1979.에 한국에 결성한 국민연합은 사실상 한국판 한민통이었다. 김사복 아들이 제공한 사진들에는 김사복과 힌츠페터의 정체성이 드러난다. 국민연합 요원들은 이미 오래 전 힌츠페터를 포섭하고, 김사복을 포섭하여 5.18 정치공작 작전에 대비했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박정희의 생명을 노린 문세광도 한민통 소속이다.

총알이 빗발치는 광주에 힌츠페터와 김사복은 2회씩이나 갔다. 5월 20일에 갔고 23일에 갔다. 취재 차원이 아니라 공작 차원에서 간 것이다. 5월 20일, 그는 아주 짧은 시간만 광주에 머물다 동경으로 날아갔다. 북한이 촬영한 5월 18일의 사진(곤봉으로 때리는 사진)을 포함해 공수부대가 시위꾼들을 무섭게 진압하는 광경을 독일로 송고한 것이다. 힌츠페터가 광주에 머무른 시간은 불과 몇 시간이다. 그 짧은 시간에 그 많은 사진들을 수많은 곳에서 촬영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누군가가 촬영한 사진들을 받아 동경으로 날아가 독일로 송고한 것이다. 그리고 23일 다시 김사복과 함께 광주 외곽으로 갔다.

5월 23일, 김사복의 택시에서 내린 힌츠페터는 접선장소에서 대기하고 있던 북한특수요원(태권도 7단, 통역자 등)들의 차를 타고 샛길을 통해 광주로 들어갔다. 도청에 도착하자마자 북한정치공작조가 마련한 무대를 정신없이 찍었다. 이에 더해 북한 공작팀이 5월 21일의 화려한 특공작전을 담아놓은 영상들을 받아가지고 다시 일본으로 갔다. “푸른눈의 목격자” 이름으로 방영된 대부분의 영상들은 5월 18일과 21일 상황이었다, 이 영상들은 힌츠페터가 찍을 수 없었던 영상들이다. 힌츠페터의 얼굴은 2015년 10월 10일 북괴 노동당 창건 제70주년 기념행사장에도 나타나 있다.

그렇다면 힌츠페터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는 5.18 영상으로 대한민국을 모략한 공작원이다. 그러면 그는 누가 포섭했을까? 북한일까 김대중의 국민회의일까? 그는 이미 국민회의의 함석헌 계훈제 등과 한 통속이었음이 밝혀졌다. 이런 그를 놓고 빨갱이들에 포섭된 간첩, 북한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북한측 애국자라 부르는 것은 조금도 지나친 점프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김사복의 정체는 무엇일까? 북한을 위해 목숨을 내놓았던 힌츠페터와 한 팀으로 움직였다. 그 역시 목숨을 내놓고 힌츠페터를 도왔다. 그리고 1975년부터 김사복-힌츠페터-국민회의 간부들-장준하와 같은 반체제 인물들과 함께 움직인 인물이다. 이런 그를 놓고 빨갱이라 평가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논리적 귀결일 것이다. 간첩 힌츠페터와 반국가 반체제 인물들과 공동해온 그를 놓고 간첩이라 의심하는 것도 논리의 비약은 아닐 것이다.

(지만원의 시스템클럽 ‘힌츠페터와 김사복의 정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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