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민주시대의 새 종을 치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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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민주시대의 새 종을 치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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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화 민주시대에의 경고

6일 경남 창녕의 유명한 온천 휴양지 부곡하와이에선 이색 모임이 있었다. 부산 대구 경남 경북 등 4개 시·도 광역의원 170여명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이다.

'대체적으로 지방분권확립을 위한 유급제 요구'가 거세게 불 붙은 분위기 였다. 득표활동에 1분1초가 아까운 야당 한나라당의 대표주자들이 '뒤질소냐' 몰려 들었다. 이유는 이날 영남지역 광역의원 세미나의 표심을 훑기 위한 것. 한표가 아쉬운 당권주자들에겐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대목 장터가 선 셈이다.

그리하여, '주자들도 대체로 유급제 찬성' 견해를 밝혔다. 이 짤막한 단신은 한국 풀뿌리 민주정치의 산실로 여겨지고 있는 광역의원들의 욕구불만을 터뜨린 자리라는 점에서 의미부여면에서는 별로 관심의 대상이라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류의 요구나 주장은 비단 어제 오늘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통과의례에 다름아닌 이벤트성 정치행각의 하나 쯤으로 치부될 수도 있다는 차원이 있어서이기도 하다.

광역의원의 제도적 취지는 흔히 '화백제도'에서나 볼 수 있었던 동네 유지가 모여앉아 시정을 논하고 여론을 수렵하며, 보다 미래지향적인 광역문화의 창달에 있었다함은 불문가지의 일이다. 여기에는 중앙 정치, 행정등의 경륜과 폭 넓은 경혐을 뿌리내리게 함으로써 정치서비스의 진수를 베푼다는 민주주의의 깊은 뜻이 바탕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급여나 보수'에 대한 생각은 언감생심이었다. 오로지 베푸는 자의 기쁨을 누리는 기회에 다름 아니었다.

그동안 받아 온 국민적인 성원과 개인적인 능력도 사회의 공유에 다름 아니라는 점, 그것을 보답한다는 다분히 정치철학적인 논거가 광역의회의 출발을 도운 것이었다. 이제 그것이 4대 10년을 이어 내려져 오는 동안 그 진용을 이룬 면면을 드려다 보자. 혈기방장한 젊은 층의 출세를 향한 돌파구로서 어느 새 탈바꿈하고 있었다는 격세지감이 국민 사이에 심심치 않게 회자되어 왔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경제로 본다면야 경쟁시장이고 정치적으로는 자유민주인데, 그것이 변하지 말란 법이 따로 있을 수가 있겠는가? 문제는 오래지 않은 제도의 취지를 이렇게 난도질하듯한 밑바닥에는 한국 정당정치의 보스Boss화가 골간을 이뤄왔다는데 있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초,중등학교 반장선거나 대학의 회장선거도 누구나 참여하는 직접,평등에 의한 참여선거방식인데, 하필 그 정치를 펼치는 최고의 기관인 국회의원, 대통령 선거는 정당공천이란 민주방식을 강구해 놓고도, 애매모호한 시스템을 떡 주무르듯한 일부 목소리 큰 사람들의 농간에 놀아나 하향식 흔적을 덕지덕지 잉태 시켰다는 점이다.

지난 16 대 대선에서 그것의 변형을 두고 '평가'할만 하다는 논자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눈가리고 아웅'했다는 혹평의 댓거리로 등장한 것 또한 간과할 수가 없다는 것이 솔직한 견해다. 바로 지금 우리들 주변을 현혹시키는 '정당정치의 개혁'논자들을 들여다 보라. 하나같이 '신당'이라는 간판주의말고는 찾아 볼 수가 없음을 본다. '제 4대 정당'의 창출이라는 비교적 그럴싸하게 덧씌운 논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저마다의 목소리 내기 외에는 별반의 의미를 부여하기가 거북한 '이벤트 정치'일 뿐이다.

그러한 행태가 자연히 풀뿌리 정치에도 영향을 파도치게 할 소지를 보인 것이 바로 6일 '부곡하와이 이색 모임'의 해프닝이 아닐까 한다. 당장 급하니까 달려가 한표를 구걸하는 행색이라니 그야말로 야누스의 면모를 보는 듯하지만, 그것이 또한 현실인 것을 어찌할 것인가? 진작에 광역화 의원을 배려(?)하는 의젓한 의회활동을 방기한 채 지내다가 앗, 뜨거워저서야 달려드는 모습이라니. 실로 당대를 헛 살게하는 듯 국민의 부끄러움을 접하는가 싶어 절로 씁쓸해 진다. 이것은 비단 한나라 당의 6일에 국한한 것이 아님을 민주당 저들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바야흐로 민주시대의 방울 소리 울리려는가? 광역과 국정이 하모니를 이룬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열리려는 것인가? 한 시대를 살아 온 '고급화 민주정치'의 면모를 광역화 시킬 생각은 눈꼽만치도 없다는 말인가? 십년이면 변하지 않는 권력의 무상을 노략질 하려는 것인가? 동거의 깃발을 들고 누이좋고 매부 좋을 정치장터를 또 하나 시끄러이 구경시키려 하는가?

국민을 위한 것이라면 모른다. 국민에 의한 것이라면 또 모른다. 국민의 것이라면 정말 모른다. 어느 특정정당의 이익을 나누기 위한 국민호도 용이라면 국민은 단연코 그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소위 신당론자들을 비롯하여 작금의 정치집단에게 던지는 이것이 이 시대의 경고다.

국민에의 봉사가 그들이 존재하는 생의 가장 아름다운 사업임을 믿는 자들이라면 가슴을 손에 대라. 입에 대고 눈에 가까이 대라. 정치천하의 진리, 민주주의 앞에 올 곧게 서라. 그대들이 무엇을 요구하기 전에 국민 속으로 달려가라, 베풀도록 하라. 그대들이 가진 지금의 몸과 마음이면 충분하다. 더 이상 바랄 것이 무엇 있겠느냐?

모름지기 '국민'이란 이름의 산과 바다에 깨끗이 바쳐라! 쳐 올려라! 그것을 우리는 거룩한 '민주주의의 새 종(鐘)'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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