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진성, 오마이뉴스의 반론을 박(駁)함
5월1일자 오마이뉴스 '생나무'기사에서 '곽진성'기자는 '박선협 기자의 <뉴스타운> 기사에 대한 반론'을 달았다. 먼저 곽 기자의 관심에 정중한 경의를 전한다. 그가 오마이뉴스를 대변할 위치에 있는지의 여부를 떠나, 같은 기자신분임을 유의하여 박駁론 날린다. '논쟁의 관점'을 그는 '고양시의 타 사이트에 문제의 기사를 올린 문제 자체를 떠나서 박선협 기자의 기사 자체의 정당성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전제하고 있다.
곽기자가 '오마이뉴스 데스크'의 외곡된 진의파악과 전달에 동조편승하고 있지 않느냐라는 중대한 과오를 드러내고 있음을 잊고 있다는 것을 개탄한다. 이유는 '오마이뉴스'의 일관된 자세가 '박기자가 오마이뉴스 기자이름으로 타 사이트에 기사를 퍼나른 행위의 부당성'에 있음을 상기치 못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곽 기자 말대로 '기사의 정당성'문제만을 국한한다면야 '오마이뉴스 데스크'의 판단이나 곽기자는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기자의 기사 순위상 1,2,3 이든 생나무,잉걸이든 그것이 당장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시궁창의 쓰레기와 장미꽃'을 굳이 비교하는 사이비 잣대가 아니라면, 기자가 쓰는 기사는 '기사'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한 매체의 창에 날아 든 기사가 인위적으로 지워지거나 절로 사라지지 않는 이상, 그 매체의 한 부분으로서의 생명력을 담보하고 있음에 다름아님은 한갖 미물인 지나던 송아지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오마이뉴스'는 오마이뉴스 기자이름을 함부로(?) 타 매체에 올리지 말라는 강제해석을 허구적 약관으로 포장하고 싶은 데 있다.
전체적인 흐름을 보라! 예의 '고양시의회' 기사는 고양시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한 사실의 보도였다. 그것이 '오마이뉴스'의 창에서 생나무, 잉걸이면 어떤가? 채택이란 점에서 보면, 주변머리로서의 취급을 받은 기사라는 점에서 당당한 저작권은 물론, 타매체 이동 자유를 보장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을 부정할 궁색 떨기가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가타부타 왈가왈부할 성격이전의 문제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니까 그렇다고 표기한 것은 누가 봐도 당연한 것이다. 오마이뉴스가 어느동네 인터넷 신문인지, 아닌지 도시 알지를 못했던 독자나 시민에겐 돈 안들이고 고마운 공로성 선전을 해줘서 잘했으면 했다는 것이 사회통념이라 할 것이다. 무슨 '압력수단' 운운하여 지례 겁먹은 시의원들이 '오마이뉴스'에 항의시위성 '전화'를 퍼붓게 되다보니, 솥뚜껑을 보고선 아이쿠 자라구나 겁먹고 놀란 나머지 고개 숙이고 예~예하며 기자더러'사과'해라, 경고한다고 호들갑을 떤 행위에 문제의 기자정신 말살의 핵심이 있다.
'정당성正當性' 이란 '법령또는 사회통념으로 미루어 정당하다고 인정되는 상태'다. 오마이뉴스의 약관이 엄연하게'저작권을 서로 배타적으로 주장하지 않습니다. 기자는 OhmyNews에 실린 글을 다른 매체에 실을 수 있습니다'라고 규정하고 있는 이상 그것이 생나무건 잉걸또는 톱기사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기사가 부당하려면 진실성의 결여가 법적으로 인정되는 것이 기본 아닌가?
약관의 애매모호성도 문제지만, 그것을 '해석'이란 잣대아래 '무소불위'성 법령경시, 사회통념 부인이란 誤魔耳紐手式(오마이뉴수식)프리즘을 여과없이 통과시켜 독불장군, 안하무인하려 한 것이 시비의 본질인 것을 우리의 곽 기자는 파악해야 하고 인식해야 할 것이다. 박 기자가 오마이뉴스 데스크'를 자른 이유는 곽 기자가 보듯 ''기사에 대한 저작권은 OhmyNews와 기자가 함께 갖습니다'라는 그 점이 아니지 않은가?
오프라인 매체에서는 '다루지 않는 기사'는 오프라인의 어느 구석에도 자리하지 않는다. 곽 기자가 얘기하듯 채택되지 않은 기사는 사장될 운명을 타고 나는 것에 다름아니다. 생나무, 잉걸은 그런 오프라인 상의 비 채택 기사와는 판이한 성격을 가진다. 독자가 맘만 먹으면, 마음대로 클릭하여 읽어불 수 있다는 점에서 오프라인 매체의 성격과 동일선상에 있는 것이다. 내부 운영상 원고료 수수라는 차별화 올가미를 덧 씌우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 말고, 뉴스벨류를 평가하는 것은 독자 자신의 몫인 것이다.
중심기사를 정하는 것이야 데스크에 있지만, 일단 어느 구석에든 날아든 것을 포착했으면, 그것은 영낙없는 기사다. 하늘의 별이 곽 기자의 눈에 띄지 않는다 하여 별이 아니고 별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강변할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의 곽 기자는 '이런 문제점이 지적된 이상, 약관의 내용을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보충해 다시는 이런 문제점이 재발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그 말미에 박 기자를 배려, 두둔하는 인사성 글을 다는 예의를 지키고 있다. 가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기자가, 기사로 말할 때 형평성이라든가 균형감각을 내세워 두리뭉실한 포장을 하려든다는 것은 관례화된 매체 병리현상이다. 매체가 '거울'이라는 생리를 지키려는 금도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병리 중엔 또 다른, 기자가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잣대가 있다는 사실을 유의 할 필요가다. '기자와는 불가근 불가원'하라는 것이고 '소 닭보듯 하라"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기자의 세계를 백안시하는 풍조가 없지 않다는 이 사실은 그동안 기자세계의 품위에 형형색색의 색 안경이 혼재하고 있었다는 감회를 적시한다고 할 것이다.
곽 기자의 반론이 빛을 내려 한다면, '기사의 정당성'을 강조하되, 오마이뉴스가 과연 매체로서의 기본생명인 '약관'을 함부로 들먹임으로서, 천하기자 뉴스논객을 입막음하려는 행태의 상존을 잘라내야 한다는 데에 귀기울어야 함을 결코 부인해서는 안될 것이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옳고 그름의 어느 편에 이분법의 잣대를 가지고 나서라는 요구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선택은 자유다. 그러나 잊지 말것은 중용에도'공시의 공신력'이란 법언法諺'을 준수하는 가치척도를 중시하는 동시대적 기자정신에서 물러서서는 안된다는 고언만은 정중히 들려주고 싶다. 모처럼의 반론을 박駁한 박기자의 충정을 '오마이뉴스' 곽기자는 심기일전 감상하시라.
곽기자가 '오마이뉴스 데스크'의 외곡된 진의파악과 전달에 동조편승하고 있지 않느냐라는 중대한 과오를 드러내고 있음을 잊고 있다는 것을 개탄한다. 이유는 '오마이뉴스'의 일관된 자세가 '박기자가 오마이뉴스 기자이름으로 타 사이트에 기사를 퍼나른 행위의 부당성'에 있음을 상기치 못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곽 기자 말대로 '기사의 정당성'문제만을 국한한다면야 '오마이뉴스 데스크'의 판단이나 곽기자는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기자의 기사 순위상 1,2,3 이든 생나무,잉걸이든 그것이 당장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시궁창의 쓰레기와 장미꽃'을 굳이 비교하는 사이비 잣대가 아니라면, 기자가 쓰는 기사는 '기사'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한 매체의 창에 날아 든 기사가 인위적으로 지워지거나 절로 사라지지 않는 이상, 그 매체의 한 부분으로서의 생명력을 담보하고 있음에 다름아님은 한갖 미물인 지나던 송아지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오마이뉴스'는 오마이뉴스 기자이름을 함부로(?) 타 매체에 올리지 말라는 강제해석을 허구적 약관으로 포장하고 싶은 데 있다.
전체적인 흐름을 보라! 예의 '고양시의회' 기사는 고양시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한 사실의 보도였다. 그것이 '오마이뉴스'의 창에서 생나무, 잉걸이면 어떤가? 채택이란 점에서 보면, 주변머리로서의 취급을 받은 기사라는 점에서 당당한 저작권은 물론, 타매체 이동 자유를 보장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을 부정할 궁색 떨기가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가타부타 왈가왈부할 성격이전의 문제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니까 그렇다고 표기한 것은 누가 봐도 당연한 것이다. 오마이뉴스가 어느동네 인터넷 신문인지, 아닌지 도시 알지를 못했던 독자나 시민에겐 돈 안들이고 고마운 공로성 선전을 해줘서 잘했으면 했다는 것이 사회통념이라 할 것이다. 무슨 '압력수단' 운운하여 지례 겁먹은 시의원들이 '오마이뉴스'에 항의시위성 '전화'를 퍼붓게 되다보니, 솥뚜껑을 보고선 아이쿠 자라구나 겁먹고 놀란 나머지 고개 숙이고 예~예하며 기자더러'사과'해라, 경고한다고 호들갑을 떤 행위에 문제의 기자정신 말살의 핵심이 있다.
'정당성正當性' 이란 '법령또는 사회통념으로 미루어 정당하다고 인정되는 상태'다. 오마이뉴스의 약관이 엄연하게'저작권을 서로 배타적으로 주장하지 않습니다. 기자는 OhmyNews에 실린 글을 다른 매체에 실을 수 있습니다'라고 규정하고 있는 이상 그것이 생나무건 잉걸또는 톱기사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기사가 부당하려면 진실성의 결여가 법적으로 인정되는 것이 기본 아닌가?
약관의 애매모호성도 문제지만, 그것을 '해석'이란 잣대아래 '무소불위'성 법령경시, 사회통념 부인이란 誤魔耳紐手式(오마이뉴수식)프리즘을 여과없이 통과시켜 독불장군, 안하무인하려 한 것이 시비의 본질인 것을 우리의 곽 기자는 파악해야 하고 인식해야 할 것이다. 박 기자가 오마이뉴스 데스크'를 자른 이유는 곽 기자가 보듯 ''기사에 대한 저작권은 OhmyNews와 기자가 함께 갖습니다'라는 그 점이 아니지 않은가?
오프라인 매체에서는 '다루지 않는 기사'는 오프라인의 어느 구석에도 자리하지 않는다. 곽 기자가 얘기하듯 채택되지 않은 기사는 사장될 운명을 타고 나는 것에 다름아니다. 생나무, 잉걸은 그런 오프라인 상의 비 채택 기사와는 판이한 성격을 가진다. 독자가 맘만 먹으면, 마음대로 클릭하여 읽어불 수 있다는 점에서 오프라인 매체의 성격과 동일선상에 있는 것이다. 내부 운영상 원고료 수수라는 차별화 올가미를 덧 씌우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 말고, 뉴스벨류를 평가하는 것은 독자 자신의 몫인 것이다.
중심기사를 정하는 것이야 데스크에 있지만, 일단 어느 구석에든 날아든 것을 포착했으면, 그것은 영낙없는 기사다. 하늘의 별이 곽 기자의 눈에 띄지 않는다 하여 별이 아니고 별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강변할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의 곽 기자는 '이런 문제점이 지적된 이상, 약관의 내용을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보충해 다시는 이런 문제점이 재발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그 말미에 박 기자를 배려, 두둔하는 인사성 글을 다는 예의를 지키고 있다. 가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기자가, 기사로 말할 때 형평성이라든가 균형감각을 내세워 두리뭉실한 포장을 하려든다는 것은 관례화된 매체 병리현상이다. 매체가 '거울'이라는 생리를 지키려는 금도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병리 중엔 또 다른, 기자가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잣대가 있다는 사실을 유의 할 필요가다. '기자와는 불가근 불가원'하라는 것이고 '소 닭보듯 하라"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기자의 세계를 백안시하는 풍조가 없지 않다는 이 사실은 그동안 기자세계의 품위에 형형색색의 색 안경이 혼재하고 있었다는 감회를 적시한다고 할 것이다.
곽 기자의 반론이 빛을 내려 한다면, '기사의 정당성'을 강조하되, 오마이뉴스가 과연 매체로서의 기본생명인 '약관'을 함부로 들먹임으로서, 천하기자 뉴스논객을 입막음하려는 행태의 상존을 잘라내야 한다는 데에 귀기울어야 함을 결코 부인해서는 안될 것이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옳고 그름의 어느 편에 이분법의 잣대를 가지고 나서라는 요구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선택은 자유다. 그러나 잊지 말것은 중용에도'공시의 공신력'이란 법언法諺'을 준수하는 가치척도를 중시하는 동시대적 기자정신에서 물러서서는 안된다는 고언만은 정중히 들려주고 싶다. 모처럼의 반론을 박駁한 박기자의 충정을 '오마이뉴스' 곽기자는 심기일전 감상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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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기자는 써서 넘겼으되, 오마이뉴스에서 채택하지 않은 글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조선일보에서 어느 기자가 술먹고 정신나간 상태에서
"1818 엿가튼 세상이다. ...."라는 제하의 기사를 써서 송고했다고 치자. 물론 데스크는 한 번 웃고 그냥 지나쳐버린다. 그러면 그게 기사인가? 기자가 쓴 문자는 다 기사인가?
박선협은 오마이에 단 한 번도 기사를 올리지 못한 것이며, 곽진성의 기사 또한 생나무였다면 기사가 아니다. (생나무기사로 오른 반박기사를 가지고 오마이의 논리와 다르다는 걸 꼬투리잡는 추잡함이란...)
그나저나 무지무지 재미는 있다. 조갑제 홈피만큼이나 재미있다. 이런 재미에 뉴스타운, 그리고 더 화끈한 독립신문 본다. 깝깝한 세상에 한 번 웃을 여유를 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