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여, 우리 물이 되어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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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여, 우리 물이 되어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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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보는 세상 42>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 물은 흐르는 곳곳에서 제 모습을 찾는다
ⓒ 호박소/밀양시^^^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 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 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 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물... 물은 생명의 원천입니다. 물이 없는 이 세상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물은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르면서도 이 세상 모든 것을 변화시킵니다. 물은 그 스스로 주어진 형상이 없으면서도 모든 형상을 담아냅니다. 물은 천지만물을 생성시켜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소멸시키기도 합니다.

불... 불 또한 생명의 원천입니다. 불이 없는 이 세상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불은 가장 낮은 곳에서 타기 시작하여 가장 높은 곳으로 타오릅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지만 불은 아래에서 위로 타오릅니다. 물과 불은 서로 상극관계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상극관계 속에는 곧 상생의 관계가 이어져 있습니다.

이 시 곳곳에서는 은방울 소리를 굴리며 티 한 점 없이 흐르는 맑은 물소리가 들립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정겨운 목소리가 내 가슴 속에 비오는 소리가 되어 흘러내립니다. 그리하여 이윽고 그리움의 강물이 되어 제 스스로 깊어지고 깊어지다가 저절로 흘러내려 사랑하는 사람의 가슴에 맨 처음으로 닿고 싶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불로 만나려"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제 스스로 깊어지고 저절로 넘쳐서 바다에 닿는 그런 강물이 아니라 금새 뜨거워지는 불꽃처럼 그렇게 거세게 활활 타오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성급하게 타올라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만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에게 이렇게 속삭입니다.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라고.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대가 오는 그때는 모든 불이 꺼진 "인적 그친/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며 다시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합니다.

이 시는 요즈음 젊은이들의 성급한 판단, 성급한 생각, 성급한 행동, 성급한 사랑에 대해 충고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은 금새 불타 올라 재가 되어버리고 만다는 그런 충고 말입니다. 시인은 사랑도 그리움도 기다림도 모두 물처럼 그렇게 흘러내려 저절로 깊어져고 저절로 넘쳐흘러야 한다는 것을 흐르는 물을 통해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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