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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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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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운의 주지(主旨)에 관한 박기자의 성찰

제목의 기사는 뉴스타운의 주지(主旨)다. 2002년 10월 21 일에 나온 편집장의 논단이다.

'잘 알겠습니다'인지 아무도 의견을 다는 기자가 없었음을 안타까이 여긴다. 소속된 회사의 주지를 나름대로 성찰해 보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살아 있어야 할 활력의 주지라면 더더욱 그러한 것이다. 토론의 불꽃이 활활 타올라야 금상첨화가 아닐까?

걸어두고 보자는 것이 아니라는 대의명분상 그렇기도 하다. 아랫 글은 4월 26일에 게재한 그런 뜻을 담은 박 기자 그의 소품이다. 한 쪽에 졸고 있어서 두어자 고쳐 이 곳 [기자수첩]에 끌어 올린다.

"언론"이란 "말이나 글로 자기 사상을 발표하는 일 또 그 논(論)을 뜻한다.(이희승 국어대사전 2552 참조) 이로 미루어 이곳에서 말하는 "언론"이란 "언론계"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언론계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메세시를 표현하고자 한 것이라 본다. "언론"그 자체만 놓고 본다면 다분히 한 개인적인 의사표현 수단으로서의 영역을 지녔다고 할 수 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언론은 비유컨대 찻잔 속의 태풍에 지나지 않을 수 있으나, 언론계가 될때는 언론을 업으로 삼는 이기주의적 집단의 속성을 전제로 하기 마련이다. "자기"란 개인이거나 집단 또는 포괄적 개념으로서의 성격을 지닌 주체를 말한다 할 수 있으나 그것은 자칫 무소불위의 광범위를 포함하는 것이어서 축소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온당할 것이라 본다. 즉 "개인"에 국한 시켜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언론계가 바로 서야 한다는 전제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바로"란 "정 正"을 뜻할 것이다. 바른 말, 바른 글이면 충분하다는 뜻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부딫치는 한계가 있다. 과연 객관적인 "바름"을 새움에 있어 그 기준을 어디에다 두어야 하느냐 하는 것이 그 한계다. 이것을 우리는 세계관 차원에서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에 둘 수 밖에 없다는 것으로 귀결된다는 데에 동의한다.

언론계가 바로서야 한다는 시비는 어느 누구에 의해서 재단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접하는 만 천하 청자(聽者)와 독자(讀者)가 가름해 준다. 거기에 역사성과 정통성이 정제된 정체성이 등장하게 된다. 비판과 반대가 불가분의 관계를 유지하는 속성상 언론계의 "바로선다"는 생명은 그 수명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만인의 사랑을 받으며 장구한 생명력을 유지할 수있는 "언론계"를 새울 수가 있다면 그것을 가진 나라 또한 바로 선 나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생명력에서 어긋난 언론계는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바로 선 언론이라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우후죽순처럼 솟아 났다 하루가 멀게 사라지는 언론계의 행태를 두고 어찌 바로 선 언론계라 할 수 있을 것인가?

언론계가 바로 서기 위한 정론의 개념도 이 범주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언론개혁을 부르짓는 것은 결국 "언론계" 자체의 개혁인데, 그에 속한 시스템이 춘추필법의 정통성을 스스로 구축하려 들기전에 사회적 제도에 눈짓을 보낸다던가, 논란의 시류를 아전인수하려는 부유浮遊층의 논법에 안주하려는 모습이 엿보이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라 할 수가 없을 것이다.

듣고 읽는 대중적 정보와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있느냐의 여부를 묻는 자성의 논리이전에 "언론계"라는 찻잔 속의 논란을 사회화 하여 자기와는 상관이 없는양 깃발을 흔드는 양상이 있기 때문에 공소함을 면하기 어려운 국면이 있음을 간파해 오고 있는 우리다. 언론의 언론으로서의 일차적 가치는 바로 이러한 대칭적 차원이 아닌 스스로가 자력으로 무장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언론이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는 것은 자기정도自己正道, 자기성찰의 개념정립에서 출발하고자 하는 멧세지 일때 보다 강한 호소력을 발휘한다고 볼 것이다. 그것은 존재하는 어느 타방이 아니다. 바로 내성內省을 말하는 것이다. 기자의 말과 글이 바로 서는 일에서 모든 언론가치를 찾게 된다면, 그 다음의 일은 굳이 목소리를 높이지 않더라도 자연적인 순화현상에 의하여 정립 전파될 것이다.

밝은 사회와 바른 사회란 바로 그 구성원 자신이 일차적 생명체이기 때문이다.언론계를 구성한 기자의 일거수 일투족이 바른 말이고 바른 글이고 바른 행동일 때,그리고, 그것이 듣고 읽는 사람에 의해서 동의를 이끌어 내는 공감이 확산,정착 될 때, 나라는 저절로 바르게 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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