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자연. 자연은 인간을 감싸지만 인간은 자연을 파괴해 인간과 자연이 마치 적인 것처럼 존재해간다 ⓒ www.netpakistani.com^^^ | ||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조금씩 없어지는 줄 모르게 재산 같은 것이 줄어들어 가는 것을 뜻한다.
자연(自然)도 우리 인간들의 무작정 개발에 의해 때로는 눈부시게(?) 사라지고 때로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야금야금 사라진다.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 자연은 우리와 함께 한다. 그러나 지구 온난화 등으로 자연이 몰라보게 훼손되면서 자연은 우리 인간과 함께 할 수 없는 존재로 변해갈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자연 없는 인간을 생각할 수 없다는 말이다.
“가까운 길 마다하고 먼 길로 간다.” 편하고 빠른 방법이 있는데도 구태여 어렵고 힘든 방법을 택한다는 뜻으로 우리 인간은 자연을 살릴 방법이 얼마든지 있는데도 구태여 개발이라는, 파괴라는 단어를 우리 삶 속에 집어넣으며 자연을 우리와 함께 하지 못하게 한다.
“자연이 나를 부른다(The Nature calls me now)" 우리 인간의 삶은 이런 자연의 부름 속에 살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자연이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아니 들으려 하지 않는다. 이때부터 인간과 자연은 벗이 아니라 적으로 변한다. 자연과 인간이 ”적과의 동침“을 하는 셈이다.
“각주구검(刻舟求劍).” 칼을 강물에 떨어뜨리자 뱃전에 표시를 했다가 나중에 그 칼을 찾으려 한다는 뜻으로, 어리석어 시세에 어둡거나 완고함의 비유하는 말로 인간은 각주구검처럼 자연에 대해 어리석은 일을 버젓이 행한다. 인간 스스로의 죽음을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는지 모르는지 자연을 어리석게 대한다.
고대 사상에서 우리 조상들은 하늘(天)을 숭배했다. 하늘은 자연의 다른 표현이기도 했다. 천명(天命), 천도(天道), 천리(天理), 천시(天時) 및 천행(天行) 등 고대 사람들은 생활 전반에 걸쳐 하늘, 즉 자연을 숭배하고 자연의 도와 이치에 따르고, 자연이 주는 시간에 자연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함께하는 지혜가 있었다. 자본이 생활 깊숙이 스며들면서 개발이라는 자연파괴가 자본과 결탁하며 자연과 인간이 적이 되다시피 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생물학자들도 이 같은 자연파괴 현상을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해 전 지구적 테스크 포스(Task Force)를 만들어 생물 다양성(Biodiversity)을 살리자는 운동을 하자고 요구하기도 하지만, 어쩐지 선진국은 물론 그 외의 국가의 사람들도, 특히 ‘있는자들’은 더욱 이러한 외침을 도외시하는 경향이 있다. 돈이 되지 않는 다는 이유에서 그럴까?
2004년 국제자연보호연맹(IUCN=International Union for Conservation of Nature and Natural Resources)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조류의 종(種=species)중 의 12%가, 포유동물의 23%가, 구과(毬果)식물인 침엽수의 25%가, 양서동물의 32%가, 소철류(類)식물의 52%가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이들을 두고 학자들은 “살아있는 화석(Living Fossil)”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 기후변화(Climate Change)로 종(種)의 15~37%가 다음 세기 전반기 안에 조기 멸종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한다. 우리 세대가 그때까지 살 것이 아니므로 우리와 상관없다는 사고는 “자연은 우리 후손에게 빌려온 것”이라는 속설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사고방식으로, 자기 자식 잘 되기를 바라는 우리 인간은 자식이 함께 살아가야 할 자연이 잘 보존되기를 기원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해야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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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없는 인간은 없다.
인간들은 이제부터라도 환경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