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이건 무슨 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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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이건 무슨 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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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에세이> 미나리

 
   
  ^^^▲ 미나리는 잃어버린 입맛을 되살려 준다
ⓒ 미나리/우리꽃 자생화^^^
 
 

코끝을 상큼하게 맴도는 싱싱한 미나리로 쌈을 싸 먹고 싶은 봄날입니다. 이슬 같은 물방울이 초롱초롱 맺힌 파아란 미나리. 그 미나리 위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쌀밥과 쌈장을 얹어 볼이 미어지도록 한입 집어넣으면 이내 입안 가득 맴도는 그 상큼한 미나리향...

봄날 저녁, 싱싱한 미나리쌈이 얹힌 식탁, 꽃내음과 흙내음이 물씬 풍기는 고향집의 툇마루. 그 반질반질한 윤이 나는 툇마루에 앉아 배가 부르도록 미나리쌈을 싸먹는 그런 시간이 만약 다시 온다면 이 세상에 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을 것만 같습니다.

내가 어릴적 살았던 마을 앞에는 두어 마지기쯤 될만한 제법 넓은 미나리꽝이 두 개나 이어져 있었습니다. 그 미나리꽝은 우리 마을에서 대대로 살아온 오가네가 주인이었습니다.

지난 겨울에도 우리 마을 아이들은 꽁꽁 얼어붙은 그 미나리꽝에서 어설프게 만든 스케이트를 타고 낮새도록 놀다가 가끔 미나리꽝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런 때 우리는 메거지(메기) 잡았다, 고 하면서 부모님께 꾸중을 들을 생각에 걱정부터 앞서곤 했습니다.

마침내 봄이 오고 미나리꽝에 얼어붙은 얼음이 녹기 시작하면 마을 어머니들께서는 하루 품삯을 받고 그 미나리꽝에 나가 밑둥치에 살이 통통하게 오른 그 미나리를 벴습니다. 그런 날에는 우리 마을 곳곳을 흐르는 상큼한 미나리 내음이, 그렇찮아도 배가 고픈 우리들의 아랫배를 더욱 쪼르륵 거리게 만들었습니다.

 

 
   
  ^^^▲ 미나리꽃미나리는 꽃이 피기 전에 수확을 해야 한다
ⓒ 우리꽃 자생화^^^
 
 

우리 마을에서 미나리를 베는 날은 마치 잔치가 열린 것처럼 왁자지껄했습니다. 마을 어머니들은 열심히 미나리를 벴고, 미나리의 허연 밑둥치가 가지런히 쌓인 미나리꽝 둑에서는 마을 어르신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미나리를 안주로 삼아 막걸리잔을 기울이기도 했습니다.

그 미나리꽝에는 거머리가 참으로 많았습니다. 그래서 마을 어머니들은 그동안 모아둔 구멍 난 스타킹을 기워서 신은 뒤 미나리꽝에 들어갔습니다. 거머리가 장단지에 낀 스타킹이 미끄러워 빨판을 붙히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랬습니다. 스타킹을 신고 미나리꽝에 들어간 마을 어머니들의 장단지에는 실제로 거머리가 잘 붙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거머리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그 중에 똥색을 띤 왕거머리란 놈이 있습니다. 그 놈은 스타킹을 신은 마을 어머니들의 매끈한 장단지에도 거침없이 빨판을 붙여 피를 빨았습니다.

우리는 마을 어머니들이 장단지에서 떼낸 그 왕거머리들, 얼마나 피를 많이 빨았던지 통통하기까지 한 그 거머리들을 대꼬챙이에 끼워넣어 홀라당 까뒤집은 뒤 햇살이 따갑게 내리쬐는 냇가 돌멩이 위에 얹어놓고 말렸습니다. 왕거머리가 마을 어머니들의 피를 빨아먹은 댓가였습니다.

당시 마을 어르신들은 미나리를 날것으로 먹을 때에는 조심을 하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깨끗히 씻어도 미나리 줄기 속에 간혹 거머리가 붙어있는 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을 어머니들은 통통하게 살찐 미나리를 잎사귀까지 일일이 확인을 하며, 도랑가에서 몇번이나 씻은 뒤 우리들 식탁에 올렸습니다.

"아빠! 이건 무슨 풀이야?"
"미나리라는 풀이란다. 너도 한번 먹어볼래? 과자보다 훨씬 맛있어"
"근데 왜 풀을 먹어?"
"상큼하고 맛이 있으니까. 그리고 영양가도 뛰어나고"
"그런 나도 한번 먹어 볼래"

참으로 오랫만에 미나리를 먹었습니다. 작은딸 빛나는 내가 시퍼런 미나리를 멸치젓갈에도 찍어먹고, 쌈장에도 찍어먹고, 하얀 쌀밥을 얹어 쌈으로 먹기도 하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게만 보이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어릴적 기억을 떠올리며 미나리를 먹어보아도 예전에 먹었던 그 맛있던 미나리맛이 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맛이 어때? 이를 닦는 것처럼 입안이 상큼하지?"
"잘 모르겠어. 근데 아빠, 나도 아빠처럼 멸치젓갈에도 한번 찍어줘 봐"
"자~ 맛이 어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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