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를 동여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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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를 동여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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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보는 세상 37> 황동규 “조그만 사랑 노래”

 
   
  ^^^▲ 어린 날 배 고픈 기억처럼 하얗게 피어나는 밥풀떼기꽃
ⓒ 조팝나무/이종찬^^^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환한 저녁 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눈 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니는
몇 송이 눈.

오늘 하루도 우리는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또 편지를 받습니다. 물론 요즈음에는 대부분 메일로 여러 가지 사연을 주고 받고 있지만요. 하지만 예전에는 칸이 일정하게 그어진 하얀 편지지에 여러 가지 사연을 연필에 침을 묻혀가며 꾹꾹 눌러서 썼습니다. 또 그렇게 편지를 다 쓰고 나면 그 하얀 편지지가 이내 글씨 모양에 따라 울퉁불퉁해지곤 했습니다.

그랬습니다. 그때 우리들은 우리네 한많은 사연처럼 울퉁불퉁해진 그 편지지를 하얀 편지봉투 속에 곱게 접어 넣은 뒤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주소를 또박또박 적어넣었습니다. 그리고 빨간 사각 칸이 그려진 우편번호란에 암호 같은 아라비아 숫자를 적어넣고 예쁜 우표 한 장을 부쳐서 빨간 우체통에 넣었습니다.

이 시에서 시인이 받은 편지는 "어제를 동여맨 편지" 입니다. 어제를 동여 매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바로 자신이 살아온 지난 날의 추억이 담겨져 있는 그런 편지라는 뜻이겠지요. 그래서 시인은 자신도 모르게 어린 날의 기억 속으로 스르르 빨려 들어갑니다. "여기저기서 어린 날/우리와 놀아주던 돌들이/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는 그런 기억 말입니다.

편지, 아름다운 사연이 담긴 편지는 언제 받아도 가슴 설레고 즐겁기만 합니다. 그래서 "늘 그대 뒤를 따르던/길 문득 사라지고/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맙니다. 그리고 젊은 날 "사랑한다 사랑한다" 고 몸부림치던 그 "추위 환한 저녁 하늘"이 보이고 그 추운 하늘 사이로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깊은 잠 같은 기억 속에서 문득 깨어보니 "성긴 눈" 이 바람에 날리고 있습니다. 그 눈은 마치 시인의 마음처럼 "땅 어디에도 내려앉지 못하고/눈 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니"기만 합니다. 어서 오라, 어서오라, 며 애타게 손짓하며 지금도 바람에 날리는 저 하얀 꽃잎처럼 말입니다.

마악 피어나는 꽃잎을 시샘이라도 하는 듯 추적추적 봄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어제 밤부터 보슬비가 하염없이 내려서 그런지 마음이 자꾸만 추워집니다. 이런 날에는 한통의 편지를 쓰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어제" 의 기억을 살포시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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