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를 넘고 또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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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를 넘고 또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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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켜켜이 이어진 시간을 꿰고 있다

^^^▲ 펜로즈의 삼각형^^^
碧山峨峨(벽산아아) 푸르른 뫼는 아득히 솟아있고
碧澗泱泱(벽간앙앙) 푸르른 물도 끝없이 이어지네.
自歌自舞(자가자무) 홀로 노래하고 홀로 춤추면서
憂樂兩忘(우락양망) 슬픔도 기쁨도 함께 띄우리라.

- 김시습의 시, 謔浪笑(껄껄 웃고 말지) 중에서 -

사실이지 사람은 모두 비슷하다. 느끼고, 생각하고, 갈망하는 것이 해부학적으로 같은 만큼 서로 닮아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마다 여러 갈래 길에서 나간 방향은 사뭇 다르다. 신숙주, 성삼문, 김시습은 거의 같은 시대를 살았던 유생(儒生) 출신이었으나, 세조의 왕위찬탈에 대한 대응에서는 위상이 확연하게 다른 세 갈래 길로 서로 나뉘어졌다. 왜 그랬을까?

먼저 세 분은 존경 받을만한 걸출한 인물이었으며, 또 개인적으로도 당대의 천재였다. 천재란 무엇보다 진실을 바탕으로 삼아야 한다. 스스로 속이거나 자신을 덮어 가리면 그만큼 타고난 기질이 발휘될 수 없다. 따라서 세 분 모두 자기에게 진실했고, 죽음보다 진리를 더욱 사랑했다. 그런데 한분은 죽음에 비켜섰고, 한분은 죽음으로 꾸짖었고, 한분은 죽음을 넘어갔다.

죽음 앞에서 세 사람은 이때 무엇을 생각했을까? 삶에서 격리된 소외(疏外), 즉 하늘로부터 버림받음, 사람들로부터 따돌림, 땅으로부터 떨어짐, 이런 고립(孤立) 또는 적멸(寂滅)이 그 바탕을 이루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받아드린다면, 소외는 그때 세 분만의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 동서고금 누구나 접촉되는 영원한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세 분은 소외를 푸는 과정이 서로 달랐다. 같은 사건을 놓고 제시한 답안(solution)이 세모꼴의 꼭지 점으로 천지인(天地人)만큼이나 서로 다르게 보인다. 또 뒤틀려 보이는 것은 세 가닥의 꼭지를 연결한 겉모습이 펜로즈(R. Penrose)의 삼각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외를 극복한 자존(自尊)의 시야에서 내려다본 구조는 하나의 세모뿔 심플렉스를 구현하고 있다.

보통 “펜로즈의 삼각형”이라 불리는 이 그림은 3차원 막대기 고리구조를 2차원의 평면에 그려놓은 것이다. 세 변이 1차원 선분이라면 다른 문제가 없다. 그러나 2차원 테이프(tape)라면 뫼비우스의 띠처럼 적어도 한번은 180도로 꼬아야 한다. 이 그림에서 부분은 오류가 없으나, 전체는 보다시피 불가능한 삼각형이다. 그러나 이러한 착시에는 역설(paradox)로 통하는 창문이 숨어있다.

이 그림을 살피다 보면,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인식에 도달한다. 만약 사람의 눈이 3차원 공간에 묶여있다면, 우리가 실제로 4차원 공간에서 살고 있더라도 4차원 사물의 구조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차원이동은 펜로즈의 삼각형처럼 보통 이루어 질 수 없는 현실이다.

영화필름 한 컷(cut)은 사진 같이 정지된 2차원 영상을 재현한다. 그러나 토막 난 컷들을 모아 1초에 20여 회 바꾸어주면 망막의 잔광효과에 따라 우리는 동영상을 시청할 수 있다. 뭐, 다 아는 영화상식이지만, 여기서 주목할 포인트는 (2차원 공간+시간 차원=3차원 시공)의 실현이다. 그리고 영화 한편은 전체로 역동적인 이야기 한마당이다. 즉 언어로 엮인 가상공간이다.

3차원 시공으로 실현한 영화는 사람의 삶을 모사(simulation)한다. 그렇다면 삶의 실제상황은 (3차원 공간+시간 차원=4차원 시공)과 같은 상위차원의 이동으로 유추할 수 있다. 마치 켜켜이 잘라놓은 식빵처럼 생긴 3차원 공간이 시간 차원에 따라 바삐 움직이고 있는 장면을 떠올리자. 그리고 컷과 컷 사이는 안팎의 구별이 없는 뫼비우스의 띠 같이 뒤틀며 이어질는지 모른다.

그러나 사람의 눈은 여전히 3차원 공간의 “컷”만 보인다. 상위차원과의 접속은 현실이지만 펜로즈의 삼각형처럼 착시의 카테고리에 넣어둘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한계이다. 이런 착각으로부터 해방은 믿음의 눈으로 극복된다. 이때 전체에서 따로 소외된 “컷”들은 마침내 자존을 획득한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그리고 컷과 컷 사이는 말씀으로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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