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문칼럼] 올림픽과 ‘저녁이 있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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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문칼럼] 올림픽과 ‘저녁이 있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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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파방송.양파뉴스 이강문 총괄사장 ⓒ뉴스타운

‘저녁이 있는 삶’, 말만 들어도 기분 좋아지는 말이다. 2012년 대선주자 손학규는 ‘저녁이 있는 삶’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다. 자정을 넘어 귀가하기 일쑤인 직장인들, 대학입시 학원을 전전하다 파김치가 된 고3 학생, 노곤한 일상까지 다독여 주는 따뜻하고 품격 있는 슬로건이다. 개인의 자유, 삶의 질, 공동체에 대한 존중 등과 같은 국민들의 욕구를 약속하는 호소였다.

그러나 당시 국민들은 ‘국민성공시대’를 내건 이명박 후보를 선택했고, 그의 정의로운(?)목표, 이른바 747공약은 오로지 ‘저녁이 있는 삶’보다 국가와 국민의 경제적 성공만을 목표로 국민들을 내몰았다. 그러나 결과는 2018년 3월 검찰 포토라인에 서야했고, 재판부의 구속위기에 처해 있다. 많은 사람들은 국민의 삶보다 자신의 삶을 위해 5년의 기회를 이용했다고 비평하고 있다.

우리사회는 더 자본주의적이고, 더 시장 경제적이며, 더 경쟁지상주의적인 모습으로 변모해 갔다. 그러게 내몰리면서도 한쪽 구석이 썩어 문드러지는 것을 최순실로 부터 알았고, 박근혜로 부터 확인할 수 있었는데, 드디어 747의 공약을 꿈의 궁전처럼 환상에 젖어 있던 국민들을 몰락으로 몰아넣고 4대강, 다스, BBK 같은 추한 몰골을 보이면서 법정에 서야했던 이명박으로부터 확인할 수 있었다.

도덕적 경건함, 행복과 즐거움, 휴식과 평안, 가족과 공동체를 찾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에서도 시장과 경쟁, 사적소유와 빈곤, 서열의 차별, 등이 더 자연스러웠을까. 신에 대한 경배, 사람에 대한 사랑과 용서, 자신의 죄악에 대한 반성과 회개의 공간인 교회나 사찰에서도 더 많은 신도 더 많은 헌금, 더 큰 교회당을 두고 경쟁을 한다. 심지어 당선을 예견한 모 사찰은 이명박 당선 사례금으로 수억을 보냈다고 하니 할 말이 없다. 

고인의 명복을 빌고 그 가족들의 상처를 위로하는 빈소에서 그 자손들의 사회적 성공 네트워크를 드러내는 근조문구와 화환들이 경쟁을 한다. 결혼식장에서는 본인과 부모의 출신, 성공을 보여주는 화환들이 경쟁을 한다. 심지어 고단한 사회생활에서 벗어나 심신의 휴식을 취하려는 동호회 활동에서도 사회적 지위의 우열경쟁과 갈등, 구별 짓기를 해서 동회의 의미를 상실시킨다.

올림픽에서도 그렇다. 평창올림픽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올림픽 기간 중에는 금메달 수와 국가 순위, 그리고 메달리스트들의 판에 박힌 성공담이 언론을 장식한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처음에는 북한의 일거수일투족이 뉴스를 압도 하다가 중후반으로 가면서 우리 선수들의 경기자체가 온 국민들이 환호하거나 아쉬워하면서 몰입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성적인 정의로움에 식상해 하면서 감성적인 정서로 소통하는 모습은 이전과는 달라보였다. 스피드스케이팅 여자팀 추월 경기에 분노한 국민들은 오히려 시골 의성의 ‘팀킴’의 여자 컬링에 환호를 보냈다. 이전에도 올림픽을 보면서 분노했던 일이 많았다. 쇼트트랙 김동성, 펜싱의 신아람, 피겨의 김연아 들의 사례에서 심판의 오심, 선수의 속임수, 주최국의 정치적 영향력 등이 우리를 분노케 했다.

스포츠의 순수성을 훼손하고, 그 본질인 공정성을 앗아가 버린 사건들이었다. 이와 달리 여자 팀추월 경기에서 국민들이 분노한 이유는 저조한 실력이나 불공정성이 아니었다. 팀워크를 붕괴시킨 선수간의 불화와 그러한 사태를 촉발한 빙상연맹 내부의 파벌갈등이었다. 이에 반해 여자컬링은 5명의 선수들의 눈빛 교환과 열정적인 사투리를 들으며 컬링 훈련장마저 없었던 의성의 ‘팀킴’에 흥분을 했다.

국민들은 소외와 차별을 이겨내고 ‘하나의 팀’을 만들어낸 그들은 동지애와 끈질긴 노력으로 더 큰 하나가 되었다. 웃기는 얘기는 그들이 일본을 물리치고 은메달을 차지한 후 지역이나 정치권에서 보여준 웃지 못 할 해프닝은 우리를 아연케 했다. 이기고 나니 선수들과 사진 찍기, 우리 의성을 빛냈다고 숟가락 얹기가 우리를 웃겼다.

게임에 승리하여 메달을 획득하면 온 국민이 열광하면서 쾌감을 느끼고, 불공정한 상황에서 패배를 하면 분노를 하던 이전의 상황이 바뀐 것이다. 지극히 경쟁지상주의적이고 능력위주의 사회를 추구해왔던 국민들은 이제는 동일한 경쟁을 보면서 다른 가치와 느낌을 찾고 있다는 기대감이 든다. 747의 몰락과 ‘저녁이 있는 삶’을 기대해 보면서 MB의 비극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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