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40) 산업혁명(産業革命, Industrial Revolution)(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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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40) 산업혁명(産業革命, Industrial Revolution)(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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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빈 교수의 ‘빛의 환타지아’]

원자력(原子力, atomic energy)

원자력의 발견 역시 인류역사상 가장 의미심장한 사건중의 하나이다. 핵분열(核分裂, nuclear fission)과정은 중성자(中性子, neutron)를 우라늄(uranium)과 같은 무거운 원소의 원자핵과 충돌시키면 원자핵이 중성자를 흡수하면서 중(中)정도의 무게를 가진 2개의 원자핵으로 갈라지게 되고 이때 약간 줄어들게 되는 질량의 차이가 엄청난 에너지로 방출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핵분열 시에는 원래의 중성자수보다 더 많은 중성자를 방출하게 되는데 예를 들어 우라늄 235의 핵분열에서는 2~3개의 중성자가 새로 방출되면서 우라늄원자핵을 잇따라 분열시켜 지속적인 연쇄반응(連鎖反應, chain reaction)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핵분열이 서서히 진행되면 우리는 이것을 발전(發電, generation of electricity) 등과 같은 평화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지만 이것이 급하게 진행되면 대량살상무기인 원자탄(原子彈, atomic bomb)이 된다. 실제로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맨해튼 프로젝트(Manhattan Project)라는 이름으로 원자탄을 개발하여 1945년 8월에 일본의 두 도시 히로시마(廣島, Hiroshima)와 나가사키(長崎, Nagasaki)에 투하함으로서 일본의 항복을 좀 더 일찍 받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전후에도 강대국들은 경쟁적으로 점점 더 강력한 핵무기들을 개발하고 제작하여 이제 전 세계가 보유한 핵무기는 지구 전체를 몇 차례나 파괴하고도 남을 지경이어서 자칫 이들에 대한 통제를 잃게 된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비극을 맞게 될 것이다.

한편 인류는 수많은 원자력발전소(原子力發電所, atomic power plant)를 건설하여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도 힘써 왔으나 1986년 4월 26일 우크라이나의 키예프(Kiev) 남쪽 130 km에 있는 체르노빌(Chernobyl)원자력발전소 제4호 원자로에서 방사능이 누출되며 폭발이 일어나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방사능피해를 입음으로서 그 전부터 있어왔던 원자력발전에 대한 찬반토론은 아직도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 원자탄 폭발 ⓒ뉴스타운
▲ 바이런 원자력발전소 ⓒ뉴스타운
▲ 사고 후의 체르노빌 4호 원자로 ⓒ뉴스타운

산업혁명에 따른 인류사회의 변화

산업혁명은 단순히 경제구조에만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이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구조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종래의 지배계층이던 귀족과 지주계층이 쇠퇴하고 상인과 산업자본가 등의 시민계층이 부상하면서 이들은 1832년의 선거법 개정에 의해 피선거권(被選擧權, eligibility for election)을 얻었으며, 또한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이들은 그들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에 방해가 되는 과거의 중상주의적인 모든 규칙과 통제를 철폐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 결과 1813년에서 1814년에 걸쳐 도제조례가 폐지되었고 1834년에는 구빈법이 개정되었으며 1846년의 곡물법(穀物法, Corn Law: 지주계급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곡물의 수출입을 규제하도록 제정된 법률임) 폐지, 1849년의 항해조례(航海條例, Navigation Act: 1651년에 제정된 해운무역의 보호입법으로서 유럽 이외 지방의 산물을 영국 및 그 식민지로 수입하는 경우에는, 영국이나 그 식민지 선박으로 수송할 것 등을 규정하고 있음) 폐지가 뒤를 이었다. 그 밖에 수출입 관세가 인하되었으며 1860년에는 자유주의 경제체제가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거의 완성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산업자본의 발전에는 노동자들의 희생이 뒤따랐기 때문에 이들의 단결도 불가피하였으며 그에 대한 탄압도 만만치 않았다. 1799년에는 단결금지법(團結禁止法)이 제정되었고 1819년에는 피털루사건(Peterloo Massacre: 이해 8월 16일 맨체스터의 센트 피터 광장에서 약 6만 명이 의회개혁, 선거권 확대를 요구하는 집회를 벌였는데 지도자 헨리 헌트의 연설도중 기병대가 습격하여 헌트는 체포되고 사망자 11명, 부상자 약 400명을 내었음. 이 사건을 광장의 이름과 4년 전의 워털루전투에 빗대어 이렇게 부르며 '피털루의 학살'이라고도 함)이 발생했으며 뒤이어 6개의 노동탄압법령이 제정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공장에서의 지나친 비인도적 노동조건을 개선하려는 움직임도 있어 1802년에 제정된 최초의‘공장법(工場法, factory law)’에서는 도제에 대한 12시간 이상의 노동 및 심야작업을 금지시킨 것을 비롯하여 각각 1819년과 1833년 그리고 1844년에 개정된 공장법에서는 점차 청소년의 노동시간이 단축되었고 1847년에는 원칙적으로 1일 노동시간을 10시간으로 하는 10시간법이 의회를 통과했다.

또한 1824년에 단결금지법이 철폐된 이후 스트라이크가 빈발하고 노동조합(勞動組合, trade union) 결성이 전국적으로 확대되었으며 노동자는 조직력에 의해 고임금을 획득함과 동시에 노동조합과 상호부조 하여 현재의 사회를 개선함으로서 새로운 사회를 이룩하려 하였다.

그리하여 1833년에는 전국노동조합대연합(全國勞動組合大聯合, Grand National Consolidated Trades Union)이 결성되었고 1844년에는 맨체스터의 로치데일(Rochdale)에 최초의 협동조합(協同組合, cooperative)이 설립되었으며 노동자들이 참정권을 얻기 위한 차티스트운동(Chartism: 1838∼1848년 영국의 노동자들이 참정권을 얻기 위하여 전개했던 민중운동임)도 격렬하게 벌어졌다. 이 운동은 당시에는 성공하지 못했으나 1867년과 1884년의 선거법 개정에서 결국 소시민과 노동자에게도 참정권(參政權, franchise)이 부여되었다.

▲ 피털루 사건(1819) ⓒ뉴스타운
▲ 최초의 협동조합 건물이던 로치데일 박물관 ⓒ뉴스타운
▲ 차티스트운동 ⓒ뉴스타운

산업혁명은 인간의 노동과 소비, 그리고 개인의 의식이나 사고(思考, thought) 뿐만 아니라 가족구조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산업혁명이 무르익은 사회에서는 농업 및 농촌경제가 자본가 및 도시경제로, 그리고 가구(家口, household), 가족경제에서 산업경제로 바뀌었으며 각 개인의 사회적 책임(責任, obligation)도 달라졌다.

농경시대의 가족은 기본적으로 대가족(大家族, multi-generation family)이고 다산(多産, fecundity)이 미덕이었으며 가부장(家父長, patriarch)의 권위가 살아있었다. 그러나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차차 핵가족(核家族, two-generation family)으로 바뀌게 되었고 자녀의 수도 줄어들게 되었다.

직업은 전문화(專門化, specialization)되었으며 많은 여성들이 직업을 가짐으로서 경제력이 개선되고 사회참여가 증가함에 따라 여성의 지위가 향상된 반면 가부장의 권위는 실추되었다. 재산(財産, property)도 농경시대에는 소유(所有, ownership)가 최우선이었으나 이제는 이용(利用, use)의 관점이 강해졌으며 부부관계에서도 이혼(離婚, divorce)이 급증하였고 지역에 따라서는 결혼(結婚, marriage)도 하지 않은 채 동거(同居, living together)만 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그리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이 극심한 가족구조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허우적거리고 있는 실정이다.

▲ 한국의 어느 대가족 ⓒ뉴스타운
▲ 핵가족 ⓒ뉴스타운

영국에서 일어난 시민혁명은 프랑스에도 이어져 1789년에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으나 그 후에 여러 차례 엎치락뒤치락 하였다. 그 외에 다른 나라들에서는 혁명다운 혁명이 없었고 러시아와 중국에서는 오히려 노동자계급에 의한 프롤레타리아혁명(proletarian revolution)이 일어나 공산주의(共産主義, communism)국가가 되어버렸다.

그런 속에서도 산업혁명은 유럽 여러 나라와 미국, 러시아 등으로 확대되었으며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및 라틴아메리카로 확산되었다. 산업혁명이란 다시 말하면 공업화의 과정으로서 그 기원을 18세기에 일어나기 시작한 급격한 변화에 두고 있지만 어떻게 보면 사실은 그 이전부터 시작되어 온 점진적이고 연속적인 기술혁신이 좀 더 빨리 진행되면서 농업중심사회에서 공업사회로 이행되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역사적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 러시아 볼세비키 혁명 ⓒBoris Kustodiev ⓒ뉴스타운
▲ 볼세비키혁명을 주도한 레닌 ⓒ뉴스타운
▲ 중국공산혁명을 주도한 마오쩌둥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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