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우리 그림이 욕실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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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우리 그림이 욕실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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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미술놀이

큰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미술놀이를 즐겨왔다. 어렸을 때 그래봤자 이제 겨우 7살이니 불과 몇 년 되지는 않았지만 이 아이는 모든 것을 미술로 연결시킬 만큼 좋아한다. 어느 때 지켜보면 딸아이는 하루종일 쌓였던 모든 스트레스를 미술놀이를 하면서 푸는 것 같이 보일 때가 많다.

이에 비하면 작은 아이는 그런 면이 확실히 적다. 하지만 이녀석도 미술놀이를 참 좋아한다. 그런 아이들을 위해서 오늘 나는 <욕실에서의 미술놀이>를 시도해본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간 사이 동네 문구점에 가서 커다란 전지를 한 장 사왔다. 그걸 들고 욕실로 들어가서는 욕조 가까이에 있는 한 쪽 벽면 가득 전지를 붙여두었다. 혹 비뚤어지지는 않았나 살펴가면서. 그리고는 물감을 풀어 꼬마 주스병에 색색깔로 담아두고 한 켠에 물총 두 개를 나란히 준비해 두었다.

늦은 오후에서야 집에 들어서는 아이들에게 허름한 옷으로 갈아입으라 하니, 아이들은 영문을 몰라하며 잔뜩 기분이 얹짢은 티를 낸다. 하기사 나라도 그럴 것이다. 집에 오니 엄마가 난데없이 금방이라도 버려야 할 것 같은 옷으로 갈아입으라고 하니 황당하고 또 조금은 서글프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물감놀이를 하고나면 반드시 물감이 옷 여기저기에 묻을 것이고 그걸 손빨래 해도 잘 지워지지 않을 때가 많으니 엄마인 나로서는 이 방법이 최선의 방법인지라 어쩔 수가 없단다 얘들아, 이해 해다오.

드디어 옷 갈아입기가 끝이 난 아이들을 데리고 욕실로 들어가 말없이 시범을 보여주었더니 그제서야 아이들은 입이 함지박만해진다. 물감을 물총에 담고 전지를 향해 마음껏 발사!

아이들은 신이 나서 더이상 엄마가 필요없어져 버렸다. 좁은 공간에 세 명이 있을려면 비좁으니 엄마는 나가 달란다. 자기들끼리도 충분히 잘 할 수 있다고 하면서 나를 밀어낸다. 괘씸한 녀석들이다. 챙길 것 다 챙겼으니 이제 필요없다는 식이니...

한참 하더니 "엄마아~" 하고 나를 부른다. 설것이 하던 손을 닦고 가보니 물감이 어느새 바닥이 나 버렸다나 어쩐다나. 그래서 다시 물감을 풀어주었더니 이번엔 전지 가득 물감이 흘러내리고 바닥이 더러워졌다고 호들갑이다. 그건 샤워기를 틀어서 이러~엏게 물줄기를 한번씩 휘둘러주면 다시 깨끗해진다고 했더니 아이들은 어느새 그것까지 배워서는 이리저리 물줄기를 뿌려대기 시작한다.

에고, 조금전에 욕실 청소 깨끗하게 해두었는데 아무 짝에 쓸모없겠군. 다시 청소를 해야하는 사태가 벌어질 것을 왜 진작 몰랐을까?

몇 번이나 이같은 활동을 반복해도 아이들의 미술놀이는 끝이 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아이들에게 협박 반 조언 반으로 "내일 또 해주마. 그때 다시 하자." 하면서 아이들을 거실로 불러냈다. 순진한 아이들이지만 이 조건에 쉽게 동의 하지는 않았다.

늦은 퇴근을 하는 아빠가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아이들은 옷 갈아 입을 시간도 주지 않고 아빠를 욕실로 끌고가면서 이야기를 재잘재잘 늘어놓는다.

"아빠, 이리 와봐요, 빨리 와봐요. 여기 우리 그림이 욕실에 있어요."

하지만 아이들은 잊어버렸나 보다. 나오기 전 샤워기로 깨끗이 지워버린 것을. 단지 자기들이 신나게 물감놀이를 했다는 것만 기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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