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북관(北關)에 혼자 앓아 누워서
어느 아침 의원(醫員)을 뵈이었다.
의원은 여래(如來) 같은 상을 하고 관공(關公)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더니
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
평안도(平安道) 정주(定州)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씨(氏) 고향이란다.
그러면 아무개씨(氏) 아느냐 한즉
의원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
막역지간(莫逆之間)이라며 수염을 쓸는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의원은 또다시 넌즈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아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 머위마음이 서로 통하면 못 이룰 것이 없다 ⓒ 우리꽃 자생화^^^ | ||
어떤 사물을 바라보는 시인들의 시각은 너무나 다양하기만 합니다. 꼭 같은 사물을 바라보더라도 시인들의 붓끝에서 머리를 흔들며 나오는 시들은 제 각각 다르기만 합니다. 하지만 그 시 속에 담고자 하는 내용은 거의 비슷합니다. 단지 얼굴만 달리 하고 나온다는 것뿐입니다.
이 시를 읽으면 다시 한번 내용과 형식의 중요성이 떠오릅니다. 왜냐구요? 시는 곧 사람이니까요. 그게 무슨 소리냐구요?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무슨 그런 웃기는 소리를 하느냐구요? 조금도 웃기는 소리가 아닙니다. 시는 문장을 적당히 행갈이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니까요.
시는 사람처럼 살아 있어야 합니다. 활자가 숨을 쉬고 살아 꿈틀거려야 시가 됩니다. 또한 시를 읽으면 자신도 모르게 그 시 속으로 빨려들어가야 됩니다. 시 속으로 들어가서 마침내 시가 되어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시가 좋은 시이며, 좋은 시읽기입니다. 그래서 시가 곧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내용과 형식, 형식과 내용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술과 술잔을 예로 들어 봅시다. 술은 내용이며 술잔은 형식입니다. 여기에 막걸리와 포도주가 있습니다. 또 한쪽에는 그 술을 담을 사발과 유리잔이 있습니다. 자, 막걸리는 어디에, 포도주는 어디에 담는 것이 좋을까요.
만약 막걸리를 유리잔에 담고, 포도주를 사발에 담는다고 합시다. 그렇다고 그 맛(내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술도 제게 맞는 잔(형식)에 담아야만이 제 맛이 나겠지요.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는 우리 속담처럼 말입니다. 막걸리는 사발에, 포도주는 유리잔에 담아야 제격이라는 그 말입니다.
백석 시인의 시 '고향'은 설명이 불필요한 시입니다. 이 시는 비유법을 많이 동원한 그런 어려운 시가 아닙니다. 또한 글을 적당히 꼬부리거나 비틀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읽으면 읽는 그대로 피가 되고 살이 됩니다. 이런 시들을 문단에서는 리얼리즘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몸이 아파 의원에게 갔더니 의원의 얼굴은 부처처럼 자비롭게 생겼고 수염은 유비처럼 기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맥을 짚는 의원이 마치 신선처럼 고향이 어디냐고 묻고, 그곳에는 아무개씨가 살고 있으며, 자신과는 절친한 사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그 아무개 씨는 자신이 아버지처럼 섬기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의원은 또다시 넌즈시 웃고/말없이 팔을 잡아 맥을 보는데/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그렇습니다. 서로 몰랐던 의원과 환자의 마음이 하나로 통하는 극적인 장면입니다. 이 시속에서의 의원은 말 그대로 심의(心醫)입니다. 환자와 의원의 마음이 서로 통하니 고치지 못하는 병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래서 의원집이 곧 고향이고 의원이 곧 아버지이며 고향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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