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사회를 꿈꾼 박정희
이 세상에서 정치가 존재하는 목적은 궁긍적으로 복지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데 있다. 복지란 무엇인가/ 국민의 행복이다. 세상의 모든 생물체는 모두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경제적으로 먹고사는 데 부족함이 없고, 신체적으로 건강하며, 정신적으로 편안한 상태를 행복이라고 말한다.
박정희 복지사회를 이룩하기 위해 전쟁, 가난, 압제,무지, 질병, 사회부조리, 신체장애, 이별, 죽음, 사고 등 여러가지 요인들을 제거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것을 꿈꾸며 경제건설, 자주국방, 국민교육헌장, 새마을운동 등을 복지 염원에 힘을 쏱아부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 민족사에 천년에 한 명 나타날까 말까 하는 위대한 지도자였다. 그리고 국민이 원한다면 그에게 다시 출마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유신이 있었다. 국민이 그 유신 헌법을 지지하였기 때문에 그가 독재자인가. 아니다. 정치학 박사인 이승만 대통령의 임기도 연장되었었으며, 미국에서도 1930년 대 경제 대공황에서 탈출하기 위해 국민의 합의에 따라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계속 유임할 기회를 주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5개년 경제개발계획처럼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디일 정책도 대성공이었으며, 만일 루즈벨트 대통령이 1945년 독일의 항복 며칠 전에 서거하지 않았더라면 그의 임기가 얼마나 더 연장되었을지 모른다.
자유중국의 쟝개석 총통도 평생 집권하였으며,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도 장기 집권하였다. 뿐만 아니라 아직 서부 개척 시대의 후진 경제를 벗어나지 못했으며, 여전히 카우보이가 미국 생산 인력을 대표하던 미국의 경제를 크게 발전시킨 루즈벨트의 경제 정책도 독재 성격이 강하였다. 왜냐하면, 본래 경제 개발은 강력한 정부의 역할을 필요로 하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루즈벨트가 독재성이 있는 경제 개발 정책을 실시하였으며, 장기 집권하였기에 미국인들이 그를 독재자라고 부르는가.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그는 대통령직은 두번 이상 유임할 수 없다는 관례를 어긴 대통령이다. 그런데, 왜 그를 독재자라고 부르지 아니하는가.
그것은 본래 민주주의의 목적은 위대한 지도자의 선택에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대통령직은 두번밖에 할 수 없다는 규칙을 엄수하기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보다 휼륭한 지도자를 선택하기 위해서 있다. 그리고 그것은 노무현씨처럼 판단력 성숙에 관한한 아직 미완의 인물을 선택하기 위함이 아니다. 진정한 민주화 운동은 미국의 루즈벨트처럼, 그리고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처럼 위대한 지도자를 국민이 선택하기 위하여 있는 것이다. 그 민주주의 정신을 모르는 사람들이 박정희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불렀다. 만일 박정희 대통령의 임기가 국민 투표에 의해 한두번 더 연장되었다고 해서 그가 독재자라면 우리나라 오천년 역사에서 역대 제왕들은 모두 독재자로서 규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왕의 임기를 4년 혹은 8년으로 못박았다면 결코 세종대왕 같은 위대한 지도자는 출현하지 못하였을 것이며, 한글도 발명되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역사의 양방향에서 도전을 받는다. 민주주의 역사가 짧기 때문에 과거로부터 받는 도전이 있으며, 모더니즘 문명이 채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포스트모더니즘의 나쁜 것만 수입해 오는 포스트모던 좌파 때문에 미래로부터 받는 도전이 있다. 그런데, 역사의 과거로부터 받는 도전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점진적으로 발전하여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미국의 정치학자들의 보는 시각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장기 집권은 민주주의 발전과는 별개의 목적이다. 서구의 민주주의는 결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만일 한국의 민주주의가 1948년 8월 15일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기를 기대하였다면 그 기대는 잘못된 것이다. 오천년 동안 왕정의 통치를 받았으며, 일제 치하에서 전혀 민주주의에 대한 경험도 지식도 없는 국가가 하루 아침에 민주주의 국가가 되는가? 아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 민주주의는 발전하고 있었으며, 한국의 민주주의발전을 위해 유시는 시대의 요청이었다. 미국에서는 대통령 임기가 두번에 제한되는 규정이 아주 유효하다. 그러나 1970년 상황에서 우리가 그것을 기대할 수 았었는가. 아니다.
그렇다면, 1970년대의 미국과 한국의 민주주의는 어떤 상황이 달랐던가. 1970년대의 민주주의는 아직 어린아이였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되려면 다수당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 야당을 이끌 만한 지도자가 없었다. 김영삼씨? 그는 외화벌이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아무 것도 모르는 자였다. 그가 수출 자금을 조이면서 한 국토 개발은 모두 시행 착오로 엄청난 국고를 낭비했는데, 그 중 한 예가 농촌지원사업이었다. 실로, 엄청난 자금을 농촌에 쏟아부었는데 농촌이 엄청난 빚을 지게 되었다. 왜, 아무런 생산성이 없는 사업들을 농가에 장려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경제 정책에 관한 한 치밀한 계획이 없었다. 거기다가, 한국의 경제 상황도 모르면서 서둘러 신자유주의 정책을 도입하였기에 한국에 IMF 사태가 터지는 주요 원인을 제공하였다. 만일 미국의 신속한 도움이 없었다면 국가가 부도날 뻔했다. 그리고 비록 IMF 기금으로 국가 부도의 위기를 모면할 수는 있었으나 우리에게 경제 주권을 상실한 상처를 남겼다.
그동안 일방적으로 매도 당했것이 사실이다. 과거사 등등...
이렇게 용기 있게 역사의 정당성을 보도하며 행동하는 뉴스타운에 찬사와 박수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