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한국의 산업혁명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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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한국의 산업혁명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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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한국의 산업혁명 과정 (下)

 
   
  ^^^▲ 박정희 대통령 주도하에 우리나라는 「수출제일주의」와 「공업입국」을 국시로 정한 이후 정부와 기업과 온 국민이 수출에 전력을 다하였으며, 목표 달성을 위하여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 현장을 직접 방문하고 있는 모습
ⓒ 뉴스타운,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회 ^^^
 
 

수출제일주의와 공업입국

인력밖에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로서는 값싼 노동력을 활용해서 제품을 생산, 수출하는 길밖에 없었다.

이러한 제품이란, 섬유제품, 운동화, 가발 등의 제품, 전자제품 조립 등 여공들의 몫이었다. 그런데 이들 여공들의 노임이 달러로 환산했을 때 국제 경쟁력이 없었다.

1964년 초만 하더라도 시간당 노임은 일본이 미화 56 센트(?), 한국이 20 센트(?)였다. 전후(戰後) 일본은 일찍부터 섬유제품 등 경공업 제품을 수출하기 시작, 최신 설비를 설치했고 공정(工程)도 개선해서 1인당 생산량이 크게 향상되어 있었다. 품질도 고급화해서 비싼 값을 받을 수 있었고, 수출망도 구축돼서 안정적인 판매를 할 수 있었다.

환언하면 인건비가 올라가도 이를 소화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싼 물건은 대만에 위탁 · 가공시키고 있었다. 결국 우리나라는 일본과는 상대할 입장이 못 되고, 목표는 대만 등 개발도상국가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런데 대만의 노임은 시간당 20 센트(?)로서 우리나라와 똑같았다. 인건비가 똑같은 조건하에서는, 우리나라보다 한 발 앞서가고 있는 대만과 도저히 경쟁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朴 대통령은 이를 시정하기 위해서 일대 결단을 내렸다. 당시 환율 130원 : 1$를 약 2배인 255원 : 1$로 인상한 것이다. 이로서 우리나라 인력의 시간당 평균 노임은 미화 10 센트(?)로 되고, 비로소 대만이나 태국, 필리핀보다 싸져 국제경쟁력을 갖게 됐다(註 : 시간당 10 센트(?)라면 월간 20달러이다). 이러한 값싼「인력」「우리나라 공업의 수출 체제로의 전환」이라는 국가적 전략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유일무이한 자원이 되었던 것이다.

 

 
   
  ^^^^^^▲ 박정희 대통령 주도하에 우리나라는 「수출제일주의」와 「공업입국」을 국시로 정한 이후 정부와 기업과 온 국민이 수출에 전력을 다하였으며, 목표 달성을 위하여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 현장을 직접 방문하고 있는 모습
ⓒ 뉴스타운,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회 ^^^^^^
 
 

산업혁명

공업의 수출체제로의 전환은 순조롭게 출발됐다.

1964년 11월 30일에는 朴 대통령이 지시한 「1억달러 수출」을 달성, 정부는 이 날을 「수출의 날」로 제정하고 대대적인 경축행사를 거행했다. 그리고 그 해 말에는 상공부 수출목표 1억 2천만 달러를 달성한다. 전년 대비 43.2%의 증가율이었다. 다음 해에도 공산품의 수출이 순조롭게 증가해서 수출총액은 급격히 증가했다.

그 결과 1965년도에는 전년대비 약 50%가 증가한 1억 8,045만 달러를 수출했다. 그 후에도 수출 증가율은 매해 40%를 넘어 1967년도에는 대망의 3억 5,859만 달러를 수출했는데 이는 대단한 사건이었다.

당시는 5개년 계획의 기준을 1960년도의 실적치로 잡고 있었기 때문에 ― 1960년도의 수치와 비교해보면(註 : <도표 2-2> 참조) 그 해의 수출액은 3,283만 달러이니 ― 1967년도의 수출액 3억 5,859만 달러는 1960년도 수출액의 10배가 넘은 액수이다. 그리고 1960년도의 총수입액은 3억 3,435만 달러였으니 1967년도의 수출액은 1960년도의 수입 총액보다 많다는 뜻이 된다.

1960년 전반기까지만 해도 「미국원조금액(연간 약 3억 달러)정도만 수출하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것이 정부와 국민의 소망 이었다. 그러나 당시 학자나 업계에서는 3억 달러 수출이라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목표라고 비관하고 있었다. 이런 뜻에서 3억 달러 수출 돌파는 정부나 국민에게 크나큰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 1967년도에 수출한 공산품 액수는 2억 5,118만 달러, 총 수출액(3억 3,435만 달러)의 70%를 점한다.

공산품 수출이 주역을 담당했다는 뜻이다(註 : 수출액 통계에는 통관기준과 입금기준(入金基準)이 있는데 수치상 약간의 차이가 있다. 당시는 입금기준을 사용했기 때문에 여기서도 입금기준을 사용). 매해 수출액이 40% 이상 증가하자 한국을 보는 외국의 시선이 달라졌다.

「희망이 없는 나라」로부터 「발전 가능한 나라」로 보기 시작했고 - 일본과의 국교정상화(1965) 이후 일본자금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 외자도입은 매우 순조로워지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1차 5개년 계획 사업도 순조롭게 진행되어 1967년경에는 모두 완공, 가동을 개시했다. 한편 수출량과 수출상품의 증가로 여러 종류의 수출품 생산공장이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났다.

시설비가 적게 드는 반면 근로자를 많이 고용하는 중소 기업형 공장이었다. 공업정책적 입장에서 보면 중소기업 발전과 공업의 지방분산에 기여한 바가 크다. 그리고 고용증대 효과가 클 뿐만 아니라 근로자에 대한 급여는 저소득층의 생계에 크게 보탬이 되었으며 국내수요 유발로 이어졌다. 이에 따라 자연히 국내시장이 확대되었고 그 파급효과는 전 산업에 미쳤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입장에서 생각하면 우리나라의 산업혁명은 유럽에서 발생한 「산업혁명」및 이에 대한 학설과는 그 유형을 달리한다.

부유한 농민층의 수요를 시장으로 삼았던 것이 아니고, 빈곤한 후진국이 살아남기 위해 과잉노동력을 활용해 수출하는 방식으로 경제발전을 했던 것이다.

 

 
   
  ^^^▲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 개발 현장과 국토 개발 현장을 일일이 직접 방문하여 점검하였다. 사진은 공업단지 건설과 안동댐 건설 현장에서 공사 진척 현황을 보고 받고 점검하는 박정희 대통령 모습과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도 보인다.
ⓒ 뉴스타운,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회 ^^^
 
 

원료의 국산화

해를 거듭할수록 수출 및 국내수요가 증가하자 이를 공급하기 위한 생산이 늘어났다.

특히 섬유제품, 신발, 플라스틱제품 등 생필품과 농업용, 건축용 및 공업용 합성수지 제품 등의 증가는 놀랄만 했다. 필연적으로 이들 품목을 생산하기 위한 원료의 수입 또한 급격히 증가했다. 이처럼 「수입의존형 수출공업」의 특성으로 원료 수입량이 급격히 늘어나자 경제학자나 언론계에서는 「일본 예속형 경제구조」라고 평하면서 정부를 맹공격 했다. 결국 「원료의 국산화」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될 수밖에 없었다. 정부는 원료국산화 전략을 다음과 같이 정했다.

(1) 수입해서 쓰고 있는 원료를 국산화하자면 원료의 품질과 가격이 국제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제품 값이 비싸져서 수출할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신 설비를 도입해야 하고 규모도 일본 정도는 되어야 한다. 따라서 공장을 건설할 때에는 작업량을 모아서 한 공장만 건설한 다음 이 공장을 국제규모로 키워나간다. 그 후 공장을 추가로 건설, 경쟁체제로 유도함으로써 독점기업의 횡포를 막는다(註 : 국제 규모화 전략이다).

(2) 원료의 국산화는 현재 수입하고 있는 상품(어떤 의미에선 반제품)부터 착수한다. 그리고는 단계적으로 이를 심화시켜 최종적인 기초원료까지 국산화 한다. 예를 들어 섬유분야의 원료 국산화는 3단계로 추진해갔다. 와이셔츠 수출공장은 초기에는 직물을 수입해 가공을 했는데 이 직물을 국내에서 생산하기 위하여 우선 직물공장을 건설하였다.

직물공장은 여성 근로자를 많이 쓰는 공업이고 원사(原絲)는 수입에 의존 했으니 최신 기계만 설치하면 품질과 가격 면에서 수입품과 경쟁이 가능했다. 원료 국산화의 제1단계이다. 제2단계의 국산화는 원사까지도 국산화하는 과정이었다. 원사 중 천연섬유인 면사(綿絲)나 모사(毛絲)는 이미 국산화가 되었으므로 공장만 증설하면 해결될 문제였다.

나머지 문제는 합성섬유(合成纖維) 공장의 건설이었다. 이렇게 돼서 나일론 공장, 아크릴 공장, 폴리에스테르 공장들이 건설되기 시작했는데 초기에는 국제규모에 미달되었고, 이에 따라 생산원가가 비싸 국내용으로만 공급되었다. 정부는 이들 공장을 국제규모 단위로 키워 국제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신규 업체 참여는 억제하고 기존 업체의 증설만 허가하는 조치를 강력히 취해나갔다. 공장의 「국제규모화 작전」이었다. 그리고 공장 규모를 계속 확장, 국제 일류급 공장으로 키워나갔다.

(3) 원료국산화의 제3단계는 경공업부문에서는 석유화학공업, 중공업에서는 종합제철이 해당되는데 원료국산화의 마지막 단계가 된다. 이 공업만 육성되면 원료는 자급자족이 완성되는 것이다.

수출제일주의와 수출주도 공업화(EOI)

우리나라는 「수출제일주의」와 「공업입국」을 국시로 정한 이후 朴 대통령 주도하에 정부와 기업과 온 국민이 수출에 전력을 다했다.

수출이라는 단 한가지 사업에 임팩트(Impact)를 가한 것이다. 그 결과 수출부문 뿐만 아니라 전 공업분야가 활기를 띠기 시작했으며 건설, 전기산업을 위시해서 모든 산업분야가 획기적으로 발전해 나갔다. 고용도 늘고 국민의 생활도 향상되었다. 산업혁명이 일어난 것이다(註 : 1967년 3월 박충훈 장관은 통상사절단장으로 도미(渡美)하게 되었다.

당시 미국은 일본과 대만으로부터 수입되는 경공업제품 때문에 고용이 준다고 심기가 좋지 않을 때였다. 이러한 시기에 한국까지 수출에 가세하게 됐으니 박 장관은 미국 관리나 언론계에 「Export First Policy(수출제일주의)」라는 말을 쓰기가 거북했다. 그래서 「수출주도 공업화(Export Oriented Industrialization)」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수출이 전부가 아니고 목적은 공업화에 있다는 이미지를 주려고 애썼다. 수출제일주의와 공업입국의 합성어였다. 이때 EOI라는 말을 처음 썼다. 이제는 세계의 경제학자들이 EOI라고 약자(略字)만 써도 모두 알아들을 정도로 보편화됐다).

우리나라에서 급속한 경제발전이 이루어지자 외국 경제학자들이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연도별로 각종 경제지수를 따져보고 수출제일주의로 전환한 1964년부터 경제성장 속도가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한국은 EOI 전략을 씀으로서 경제발전을 이룩하고 있다. 대만의 예도 똑같은 경우에 해당된다」는 결론을 내리고 EOI를 경제개발도상국의 개발전략이라고 매듭지었다.

한국형 경제건설 모델 - 피라미드형 전산업의 수출화 구조 건설(CEOI)

공업의 수출전환정책을 추진하다 보니 테크노크라트들은 세일즈 엔지니어적인 능력을 갖게 됐고, 자연히 「수출지향적인 사고방식」이 체질화 됐다.

그 결과, 공장을 건설할 때나 공업계획을 수립할 때에는 꼭 수출가능성 여부를 따졌으며 수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공장규모를 국제규모단위, 더 나아가서 세계일류단위로 키워나가는 데 전력을 다했다. 이런 사고방식은 민간으로도 전파돼서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가 대만이나 기타 신흥공업국과는 달리 세계 일류급 공장들을 많이 갖게 된 연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정책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상공부의 테크노크라트는 우선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를 뚜렷이 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시기와 수단을 사전에 마련해야 했다.

여기서 목표라는 것은 우리나라가 장차 갖추고자 하는 공업구조와 각 업종간의 조직표가 된다. 여기에는 상세한 것까지 포함되는 것은 아니고 뼈대가 되는 구성요소만 포함된다. 이미 설명한 수출용 원자재의 국산화 과정의 각 단계가 이 구성요소에 해당된다(註: <도표 2-5> 참조).

이러한 조직을 경공업분야에서 설명한다면 석유화학이 정점이 되고, 가공 단계별로 아래 단계로 내려가는데 밑으로 내려가면 갈수록 업종이 많아진다. 그리고 맨 아래 부분이 최종제품인 의류, 플라스틱제품, 고무제품 등이 되는데 이들 품목이 노동집약적인 수출상품인 것이다. 이런 형태가 꼭 피라미드와 같아서「피라미드형 개발전략(CEOI)」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 www.ceoi.org^^^  
 

이 피라미드를 구축하는 과정은 이미 설명한대로 피라미드의 최하부인 경공업완제품을 먼저 출발시키고, 다음단계로 수입에 의존하던 반제품, 그리고 차차로 올라가서 중간원료공업의 건설, 마지막단계가 석유화학 또는 종합제철의 건설이 된다.

그리고 수출제일주의 이념 하에서는 품질과 가격 면에서 국제경쟁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 전제가 된다. 최종 제품은 물론이고 중간 원료, 심지어 정상에 위치하는 석유화학제품의 가격도 국제가격으로 생산해야 한다는 결론이다. 새로운 공업을 출발시킬 때도 예외는 아니다. 즉, 피라미드 전체가 국제경쟁력을 갖게 되는 것이며 수출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 점이「피라미드형 개발전략」의 기본사상이다.

피라미드형 개발전략을 「전 산업의 수출화 전략」이라고 칭하게 되는 연유이다. 영어로는 The Construction of Pyramid Type EOI(약자로는 CEOI)라고 한다. EOI가 「후진국에서는 노동집약적인 상품의 수출을 장려하는 정책만 쓰게 되면, 수출이라는 견인력에 의해서 공업을 선두로 해서 경제가 발전해 나간다」는 이코노미스트적 관점인 데 비해, CEOI는 「한국은 공업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수출을 기반으로 하는 산업구조(즉 피라미드)를 정부주도 하에 새로 구축한다」는 테크노크라트적인 관점이라는 것이다.

양자간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EOI에는 시간개념이 없고 공업의 구조와 질은 자연발전에 의존하는 반면, CEOI에서는 국가의 산업구조 모델을 사전에 마련하고 그 시행방안을 정부계획으로 확정한 후, 정부 주도하에 기업과 국민 3자가 합심, 차질 없이 추진해서 산업구조를 완성하고 모든 상품을 수출상품화 한다는데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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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발전 2006-05-09 15:32:55
박정희대통령을 닮아서

박 대표는 정치권 3대 부정부패 청산에 언급, "선거비리는 일명 "오세훈 선거법"으로 상당부분 깨끗해 졌고 공천비리는 한나라당이 제 살을 깎는 아픔을 무릅쓰고 척결해 가는 과정에 있다"면서 "특히 공천비리는 앞으로 10명, 20명의 국회의원을 더 잃더라도 단호히 척결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직비리에서 대해서는 "정권을 교체해서 반드시 척결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이번 5.31 지방선거는 이 정권을 심판하고 내년 대통령선거는 이 정권을 교체하는 선거가 될 것"이라면서 "한나라당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유일한 정치세력으로서 내년에 기필코 정권교체를 이루어 선진국의 기틀을 다지는 진정한 개혁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특히 "이 정권은 국민을 빈곤과 분열로 내몰고 미래보다는 과거를 파헤치며 국가의 정체성을 흔들고 있다"면서 "이는 이 정권 핵심부의 머리 속에 자기들 코드에 맞춰 나라를 바꾸려는 시대착오적인 생각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며, 이런 세력이 또 다시 정권을 잡는다면 대한민국은 파탄나고 말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대표는 이와 함께 "경제는 수년째 제 자리 걸음을 하고, 한미동맹은 흔들리며, 부동산을 잡겠다던 정책은 서민을 울리고 있다"며 참여정부의 정책을 총체적으로 비판한 뒤 "국정의 우선순위를 바로잡고 "작은 정부, 큰 시장"으로 경제정책을 대전환하면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문 라이트 2006-05-09 15:41:13
박대통령은 우리나라 사람들 잘 살 수 있게 하기위해 외국에 나가서는 그 곳 국가지도자들에게 눈물로 도와 줄 것을 호소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한가? 지뿔도 가진것 없이 자존심만 살아가지고 뭐 동등한 입장에서 맞서 맞짱뜨고 살아야 한다? 아직은 이르지 좀 더 부강해진 다음에 해도 안 늦다.

진실 2006-05-09 15:47:19
당시 민주당 정권이 만든 경제개발 5개년 계획서 표지만 갈아 키우고 마치 박정희 자기가 만든 양 으시댔다. 당시 민주당 정권의 미국과의 원조를 들여와 경제개발을 했으면, 박정희 저리가라 할 정도로 잘 할 수 있었는데, 중간에서 5.16군사 구데타를 일으켜 나라를 혼란에 빠뜨렸다.

현명한 2006-05-09 16:02:50
당시 민주당뿐만 아니라 자유당이나 장면수반 등 정권싸움에 국민들 피멍덜고 있었다. 삼천리금수강산 이 좋은 땅에서 누가 이런 짓을 했는지 한 번 물어보고 구라따라삼천리를 혀 요노무붉은무리들 또 공작시작이구먼, 이젠 아무리 세뇌선동해도 안 속는다 이넘들아...

헛소리마 2006-05-09 16:03:10
누가 또 구라따라 삼천리를 하는가?
민주당 운운하는 헛소리 재발 그만해라..
이글 저자 오원철 고문이 알면 웃는다.

우리나라 경제발전과 성장은 박정희 대통령과 대한민국 국민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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