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상옥 의사(義士), 김상옥 거리를 아시는가? 윤봉길의사와 이봉창의사는 국민들이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김상옥 의사(義士)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 뿐더러 김상옥 거리가 종로5가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특히 종로 3가에 전국 노래자랑 가수 송해 거리가 있고, 종로 5가 연동교회와 기독교연합 회관 앞 거리가 김상옥 거리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왜 이 거리를 김상옥 거리라고 명명 했을까? 일제 치하에서 김상옥 의사는 대한독립운동가를 잡아 가두는 종로 경찰서를 폭파 했으며 시가전을 방불케 하는 게릴라전을 하는 등 큰 저항을 했다.
기자는 최근 한 집회에서 김상옥 의사를 소개하는 강연을 들었다. 광복절 날 SBS에서는 영화 “암살”을 방영했다. 일제 치하에 결혼식장에서 주인공이 하객으로 첨석한 일본군 지휘부를 향해서 기관총으로 난사하는 장면이었는데 식민치하에서 피지배민족이 바라는 아주 시원한 풍경 이었고 그러나 그것은 단지 희망사항이고, 픽션 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로 영화 ‘암살’은 김상옥 의사가 일제 시대 민족을 탄압하던 종로경찰서룰 폭파하고 1대 1,000의 일본군경과 대치하는 등 김상옥 의사에게서 모티브를 잡았다는 것이다.
김상옥 의사는 1923년 1월12일 독립운동 탄압 본거지인 종로경찰서를 폭파하여 이 날 일경 및 일본 기관지 매일신문 사원 등 10여명의 중경상자를 내었고 17일에는 일본 의회에 참석차 동경에 가는 사이토 총독을 서울역에서 처단코자 현장 대비 완료하고 후암동에서 은신 대기 중 당일 새벽 5시, 17여명의 일본군의 기습에 총격전으로 4명을 처단하고 일본 군경 500 여명의 포위에 맨발로 대설이 쌓인 남산을 종단 탈출했으며 22일에는 효제동 생가 옆 이혜수 동지 댁에 은신, 동상 치료 중, 적 군경 1,000여명의 삼엄한 경계 속에 포위되어 근접 4중 포위한 1,000여명과 대적하여 2정의 권총을 양손에 쥐고 생가 주변 5집을 넘나들며 3시간 혈전 끝에 적 16명 이상 처단하고, 마지막 1탄으로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고 자결하여 순국했다. 거의 시가전이었으며 일당백이 아닌 일기당천 이었다.
이것은 3.1 운동 직후란 시기, 한국 심장부라는 장소의 특성상 만주독립군의 부대 단위 승첩과 맞먹는 것으로 일제의 3.1 운동 왜곡 선전을 세계에 폭로한 “승리한 의거”였으며 많은 청년들을 항일독립투쟁에 참여시키는 결과를 낳았다고 기념회는 소개 하고 있다.

그는 상해임시정부와 긴밀히 협의 했으며 김상옥의사의 투쟁은 후에 나석주 의사의 동양척식회사 폭파(1926년), 윤봉길 의사의 상해 홍구공원 폭탄투척(1932년), 이봉창 의사의 일본국왕 저격(1932년)으로 이어졌다.

사단법인 김상옥의사 기념사업회 민승 회장은 “조국이 독립 한지도 어언 73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도 70년이 지나 가는데 김상옥 의사님의 생가복원은 물론이고 기념관 하나 제대로 건립하지 못한 것은 부끄럽기 짝이 없고 2023년에는 김상옥의사 기념관과 승전 현장 재현을 비롯한 생가 복원도 완성해서 청사에 빛나는 대한민국의 혼, 김상옥 의사님 애국 정신을 후대 애국 교육의 상징으로 우뚝 세워드리는 것이 후손들의 떳떳한 태도가 아니겠느냐? 며 각계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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