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래야, 너는 왜 그리도 목이 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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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래야, 너는 왜 그리도 목이 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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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에세이> 겨울의 흔적

"어! 벌써 저녁 먹을 시간이야?"
"밖이 훤하니까 시간 가는 줄을 모르는 모양이지?"
"계절이 무섭기는 무섭네"

일년 중 낮과 밤의 길이가 꼭 같다는 춘분이 지난 지도 오래 되었습니다. 이제 낮은 점점 더 길어질고 밤은 점점 더 짧아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은 연초록빛에서 초록빛으로, 초록빛은 다시 진초록빛으로 변할 것입니다.

 

 
   
  ^^^▲ 매화꽃잎이 바람에 흩날리고
ⓒ 이종찬^^^
 
 

하지만 아직도 목덜미를 휘어감는 봄바람은 제법 차갑습니다. 응달진 곳 여기저기에서는 아직도 희끗희끗한 겨울의 흔적이 더러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산 속 깊은 골짜기, 수정 같이 맑은 물이 졸졸졸 흐르는 돌틈 사이에서도 갯버들이 노오란 꽃송이를 매달고 있습니다.

매화꽃잎이 꿈결처럼 바람에 하얗게 휘날리고... 들길 곳곳에서는 보랏빛 제비꽃과 노오란 양지꽃이 활짝 피어나고 있습니다. 과수원에 줄지어 선 살구나무와 복숭아나무 가지에서도 갓 태어난 애기 젖망울 같은 연분홍 꽃몽오리가 망울망울 맺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겨울의 흔적은 깡그리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산비탈에 다닥다닥 붙어 이마에 주름을 잡고 있는 다랑이밭에서는 혹독한 추위를 이겨낸 배추가 겨우내 제 몸을 따스하게 감싸준 지푸라기를 여미며 초록빛 얼굴을 빼꼼히 내밀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바람이라도 불면 금새 달팽이처럼 지푸라기 속으로 얼굴을 쏘옥 감춥니다.

"봄이 왔대. 봄이"
"아냐. 조금 전에 나가보니 아직은 너무도 추워"
"근데 나는 왜 이리 이마에 땀이 자꾸 나지?"
"며칠만 더 참아. 옆집 논아저씨가 배꼽을 드러내놓고 가슴을 긁는 걸 보면 이제 곧 따스한 햇살과 달콤한 바람이 우리를 데리러 올 거야"

 

 
   
  ^^^▲ 겨울배추가 짚풀이 더운 듯 파아란 얼굴을 내밀고 있다.
ⓒ 이종찬^^^
 
 

겨울을 이겨낸 배추들이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소곤거리고 있는 바로 그 옆집 다랑이밭은 이미 겨울배추 수확을 모두 끝냈습니다. 겨울배추가 떠난 빈 자리에는 파아란 풀들과 이끼들이 서로 누가 더 푸르나 내기를 하며 자라고 있습니다.

다랑이밭 옆에 드러누워 기지개를 켜고 있던 다랑이논은 부지런한 농부가 벌써 가지런하게 갈아놓았습니다. 속내를 샅샅히 드러낸 흙더미 사이에서도 파아란 뚝새풀이 나 보아란 듯 쑥쑥 자라나고 있습니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이미 봄맞이를 끝냈습니다. 이제 들풀들도 하나 둘 봄을 맞을 채비를 서두르고 있습니다. 잘 갈아놓은 그 다랑이 논둑에서는 마른 풀 사이로 파아란 쑥이 고개를 내밀고, 달래가 기린보다 더 긴 목을 빼며 마악 꽃대를 올리는 냉이를 툭툭 건드리고 있습니다.

"달래야, 너는 왜 그리도 목이 기니?"
"누가 누가 더 늦잠을 자나 보려고"

 

 
   
  ^^^▲ 누구를 향한 긴 기다림인가
ⓒ 달래/우리꽃 자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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