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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시나리오] 5·16 군사혁명과 5·18 광주사태의 진실과 역학5.18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제창된다. 역사는 우연이 아니다
맹세희 논설위원  |  suok11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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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5.18  11:22:30
   
▲ 5.16군사혁명을 거사한 박정희 소장과 군인들 ⓒ뉴스타운

1961년 5.16 군사혁명과 1980년 5.18 광주사태(1997년 김영삼 정권에 의해 민주화운동으로 규정되기까지 폭동으로 알려짐) 사이에는 어떤 역학 관계가 있을까.

이것은 아직 역사가 규명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포함하고 있어 '가상 시나리오'라는 제하에 논의를 펼치고자 한다.

1960년의 4.19학생의거는 해방 이후부터 정부수립 후에도 지속되어 결국 6.25를 불러왔음에도 지속되었던 한국사회 혼란의 정점이었다. 3.15부정선거 논란에 대해 이승만 대통령이 책임을 지고 결국 하야를 선언했던 데에는 청년학도들의 저항이 컸다. 학자 출신의 이승만 대통령에게는 대학생들의 저항이 가장 뼈저린 일이었을 것이다.

4.19 학생의거로 자유당 정권은 붕괴되었지만, 정국은 혼란스러웠다.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허정을 내각 수반으로 하는 과도 정부가 구성되어, 내각책임제와 양원제를 골자로 하여 헌법을 개정하고 총선거를 실시했다. 이 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을 거두고, 새로 국회가 구성되고 윤보선을 대통령으로, 장면을 국무총리로 선출한다. 이것이 장면 정권, 장면내각이다.

그러나 민주당 장면 내각 시기는 대혼란의 시대였다. 국민의 민생고는 극에 달했다.

인내천(人乃天)이었을까. 결국 민생도탄을 보다 못한 군인들이 쿠테타를 일으켜 군사혁명정권을 세운 것이 5.16군사혁명이다. 형식은 쿠테타였지만 내용은 혁명이었다. 그 중심에 박정희 소장이 있었다. 

   
▲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된 박정희 ⓒ뉴스타운

박정희 정부는 18년간의 통치기간동안 ‘한강의 기적’으로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산업화와 근대화를 성공시킴으로써 민주국가로의 물적 토대를 마련하는데 성공했다. 세계 어느 나라도 이렇게 짦은 시간내 산업화와 근대화를 동시에 성공하여 경제력을 키우지 못했다.

그러나 박정희 군사정부와 체제대결에서 실패한 북한 김일성 집단은 대남공작을 끊임없이 도발한다. 남한의 공산화를 노린 그들은 남한 내 공산주의 조직들과 동조세력들 그리고 사회불만세력들에게 침투하여 수많은 간첩조직과 사회주의 혁명세력을 키운다. 인혁당 사건, 사노맹 사건, 왕재산 간첩사건까지. 현재까지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수립 후부터 정치계에는 남한의 자생적 공산주의자 외에도 북의 지원을 받는 인물들이 대거 침투한 것으로 추정된다. 가장 성공한 인물이 DJ였다고 보여진다. 그는 집권 후 ‘간첩’이라는 단어를 쓰지 못하게 했다. 그 의미는 여러가지다. 그중에서도 가장 우려되는 것은 스파이 출신이 청와대 주인이 되었으니 더 이상 간첩이 아니라는 뜻일 수도 있다는 역설이다.

그는 학력사기 등 정계 입신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은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젊은 세대들에게는 부정적 행적은 은폐되고 민주화 영웅으로 의식화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김정일과 그의 커넥션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전교조, 노조 합법화 등의 거래를 거쳐 그들의 최종 거래가 정상회담이었다.

1979년 10.26 박정희 암살 사태와 그 이전의 1974년 육영수 여사 시해 사건 등도 모두 북한이 개입되어 있음은 확인된 역사적 사실이다. 북한의 지령을 받는 일본 조총련 소속 문세광은 “박정희가 김대중을 납치해서 죽이려 했기 때문에 보복하려 암살을 감행했다”고 육여사 암살 후 자백했다.

DJ 납치암살설은 사실일까. 그들의 주장일 뿐이라고 본다. 군 장성 출신의 대통령인 박정희가 그를 암살하고자 했다면, 우수한 스나이퍼(저격수) 하나 고용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야인으로 일본에 체류하는 그의 소재를 이미 대사관 중정요원도 알고 있었으니 언제든지 암살할 수 있었다. 따라서 DJ측의 납치설은 북한과 짜고치는 고스톱이거나 자작극일 가능성이 크다.

친북 성향의 미국 카터와 박정희의 갈등이 박정희 핵무장 추진을 가져왔고, 이것이 결국 중정부장 김재규를 통한 CIA의 박정희 암살로 이어졌을 것이라는 것이 유력한 암살 배후설이다. 이에 내부에서 김정일과 밀거래해온 것으로 추정돼온 DJ측과 국회의원 제명으로 박정희에 불만이 극대화된 YS가 손발을 맞췄을 거란 가설은 설득력이 있다. 79년 부마사태와 10.26 그리고 80년 5.18은 이런 맥락에서 벌어진 상호연관된 사태들이다.

   
▲ 5.18광주사태와 북에서 온 특수군 추정 인물들 ⓒ뉴스타운

박정희 암살로 인해 패닉에 빠진 남한을 점령할 절호의 기회를 노리고, 80년 5월 광주에 1개 대대 규모의 북한 특수군이 왔다는 것은 그래서 설득력이 큰 가설이다. 그 내부에서 문을 열어준 자가 누군지 이미 우리가 추론하고도 남는다. 경상도 군인들이 전라도 씨를 말리러 온다, 는 식의 유언비어가 퍼졌다. 지역감정의 선동이었다.

5.16군사혁명으로 한국은 일부 야당과 좌파 재야운동권 세력을 ·제외하고는 국민총화라는 이름하에 단결해서 경제기적을 이뤘다. 그것을 깨기 위한 것이 5.18이다. 원래 이것은 5.17이 거사일로 예정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5.16이 원래 계획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5.16을 깨기 위한 김일성의 계획이 남한 내 혁명기지로서의 해방구였을 것이니까.

북은 남한 내 김일성 김정일의 하수인 정권을 세우길 원했고, 그를 통한 내부 공작으로 분위기가 조성되자, 10.26 암살과 5.18 해방구 침투를 했던 것이다. 그것이 5.18이다. 이것이 역사의 합리성이고 논리성이고 진실이고 역학일 것이다. 역사는 제 나름의 법칙을 가지고 있다. 역사의 물결은 흐름을 가지고 있다. 물은 역류하지 않는다.  

황석영이 김일성을 위해 썼다고 알려진 ‘시’를 곡으로 만들었다는 운동가요 ‘님을 위한 행진곡’이 9년만에 다시 오늘 5.18기념식에서 불렸다. 역사는 우연이 아니다.

역사를 바로잡지 않는 자들에게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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