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는 가고 오는 행동 양식을 빗댄 고대의 이름이다. 향찰식 표기는 무열왕능에서 발굴된 왕비의 팔찌에도 보인다.
- 庚子年二月多利作.
경자년 2월에 다리(달의 음사)가 만들었다는 것이다. 팔찌의 장인의 이름은 달이었다. 백제인의 이름은 달 뫼 가다 온다등 비교적 간단한 형태의 요소들이 사용 되었던 것이다. 삼국사기에 보이는 백제인의 상류층의 이름들도 이와 비슷 하다. 고이만년. 재중걸루 개로 흑치상지등이 그것이다.
온다가 왕지진에서 기와를 구을적에 백제에 유행한 노래가 있다. 산유화가가 그것이다. 산유화(山遊花)는 메나리꽃의 향찰식 표기다. 백제의 향찰식 글자의 몇가지 형태를 보자.
오름- 岳音. 벌음(벌판)- 富林. 밤-夜音. 시름-憂音. 뫼-山. 꽃-花. 절-寺. 골-谷. 구-陵. 메-見. 삽-相. 때-時. 라-樂.
산유화가는 지금 전하는 향가중에서 가장 오래된 서동요보다도 먼저 나온 노래다. 원형은 전하지 않지만 여러 연구로 인하여 가장 백제적인 노래 한 구절이 전한다.
산유화야 산유화야
저꽃 피어 번창함을 자랑 마라
구십춘광(九十春光) 금방 간다.
앵로봉(鶯露峰)에 달뜨고
사비강에 달 진다.
저 달 뜨고 들에 나와
저달 지고 집 돌아 온다.
에헤여 상사(相思)되여...
사비강은 백마강이고 앵로봉은 청남면 금강가에 있는 앵봉산이다. 이 부근의 들판은 부여 청양 일대의 가장 넓은 들판이다. 백제인들은 바로 이 들판에 나와 농사일을 하며 고단한 하루를 보낸다. 온다도 그들 농민들과 함께 열심히 일을 했을 것이다. 농사와 기와를 굽는 것이 달랐을 뿐이다.
산유화는 남녀상열이라 했다. 그러나 위의 구절로는 음난한 가사임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상사(相思)를 향찰로 읽으면 이유를 알 수 있다. 상-삽. 사- 쏘다. 고단한 일상을 털고 집에 돌아가 부부가 하나 되어 쑤시고 쏘고 하며 놀자는 것이다.
조선조 증보문헌비고는 백제의 산유화 대신 아량의 산유화를 수록 하고 있다. 무등산가와 지리산가등 이름만 전하는 백제의 향가중에 그나마 이정도의 산유화가 전하는 것도 상사를 이해 하지 못한 유학자(?)들 탓이다. 만약 그들이 이것을 눈치 챗다면 산유화가는 겨우 이름만 전했을 것이다.
오지의 뜻을 알고 이제 백제 초기로 가 늙은 여시를 만나 보자. 늙은 여시는 삼국사기에 소서노로 기록된 바로 그 여자다. 소서노는 백제의 창국모이자 창왕이다. 백제는 온조가 세운 나라가 아니라 소서노가 세운 나라다. 이땅의 최초의 여왕 소서노는 늙은 여우의 향찰식 표기다. 소서노 그녀는 누구이고 왜 백제를 세운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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