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광등 굵기 학꽁치를 제법 낚아 올리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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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광등 굵기 학꽁치를 제법 낚아 올리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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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마음따라> 경북 영덕 '고래불 모래사장'

그저께 내린 봄비에 촉촉하게 물이 오른 벚나무가 꽃몽오리를 동글동글 말기 시작하면서 남녘 곳곳에서 꽃축제가 열린다는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매화꽃 축제와 더불어 산수유꽃 축제, 개나리꽃 축제, 벚꽃축제, 진달래꽃 축제 등.

춘곤증으로 졸린 눈을 겨우 뜨고 TV를 켜면 이내 또 꽃 소식이 전해진다. 그런데 왜 나는 꽃 소식을 들으면서도 문득 문득 봄 바다가 그리워지는 것일까. 바다와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다고, 봄만 되면 이상하게 바다로 바다로 가고 싶은 것일까.

봄 바다에 가서 갓 건져 올린 그 싱싱한 생선회라도 먹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하늘과 땅이 몸을 섞고 있는 그 봄 바다에 가서 그동안 내가 살아온 세월이라도 낚아 올려 그 옛날로 되돌아가겠다는 심보인가.

 

 
   
  ^^^▲ 고래불 해수욕장바다는 늘 물빛이 변한다
ⓒ 경상북도^^^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번호입니다"
"이상하네?"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번호입니다"

병곡 고래불해수욕장 관리사무소의 전화는 몇 번이나 해도 녹음된 어떤 여성의 반복되는 목소리만 들려온다. 그런데 이건 좀 심하다. 관광 안내도에 또렷하게 새겨진 이 전화번호가 아예 없는 번호라니. 아무리 해수욕장을 개장하는 여름철이 아니라고 해도 관리사무소 전화번호까지 아예 없어지다니.

몇 해 전, <월식>의 시인 김명수 선생이 잠시 서울에서 내려와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강구 앞 바다에 살 때 서너 번 가보았던 그 강구항 그리고 그 강구항을 따라 펼쳐진 918번 해안도로를 따라가면 목련 꽃망울이 터지듯이 툭 터져나오는 모래사장 그곳이 그 이름도 독특한 고래불 모래사장(해수욕장)이다.

"큰 고래가 떼지어 장난하면 하늘이 흔들리고, 사나운 새가 외로이 날면 그림자 떨어져 노을 닿네. 그 위에 대(臺)가 있어 굽어보니 눈 가운데 땅이 보이지 않네"
(이색 '관어대부'(觀魚臺賦) 일부)

경북 영덕군 병곡면 해안마을 6곳에 걸쳐 드러누워 있는 고래불 모래사장. 위의 글처럼 고래불이란 이름은 고려말 학자 목은 이색 선생이 붙였다고 전해진다. 경북 영덕군 영해면에서 태어난 목은 선생은 어린 시절 상대산(上臺山)으로 불리는 관어대에 올랐다가 문득 모래사장 앞 바다에서 고래가 물줄기를 하얗게 내뿜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때부터 이곳 바다를 '고래뿔'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고래불 모래사장은 영덕읍에서 7번 국도를 타고 찾아가면 훨씬 가깝고 편리하다. 하지만 그렇게 가면 모처럼 떠난 여행이 싱거워진다. 그래서 이곳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강구항에서 대진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30여㎞의 918번 해안도로를 이용한다. 왜냐하면 그 해안도로를 달리다 보면 금진포구와 무인등대 등을 동시에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저 언덕을 넘어가면 그 유명한 대게 원조마을인 죽도산과 죽도등대가 보이니더. 그라고 대게 맛도 유명하지만 오징어 피대기도 맛이 끝내주니더"
"피데기라니요?"
"덜 말린 오징어를 말하니더. 불에 구워 묵으모 말랑말랑한 기 끝내주니더"

그랬다. 축산에서 잠시 바다를 내버려두고 한동안 달리다가 다시 바다를 만나는 해안도로에는 덜 마른 오징어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그리고 바로 코앞에 있는 저 항구가 강원도 고성의 대진항이 아니라 영덕 영해면 대진항이다. 저 대진항은 고래불과 더불어 바가지 요금을 받지 않는 곳으로 유명하단다. 세상에, 살다 보니 별게 다 유명하다.

대진항을 돌아 언덕에 올라서면 개천 사이에 송천(松川)대교가 걸쳐져 있다. 고래불 모래사장은 이 대교가 있는 송천천을 경계로 대진 모래사장과 정겹게 마주 보고 있다. 또 왼쪽으로는 1,000여㏊에 달하는 영해평야가 가물거리는 아지랑이 속에 연초록 봄을 물고 끄떡끄떡 졸고 있다.

"아니, 저 모래사장의 길이는 대체 얼마나 됩니까?"
"8km쯤 된다고 하니더"
"이곳의 모래는 다른 곳보다 조금 더 굵은 것 같습니다"
"그렇니더. 예로부터 이 모래로 찜질을 하모 심장과 순환기 계통에 아주 좋다고 하니더. 기왕 오신 김에 모래찜질 한번 하실랍니꺼?"
"아, 아니요"

 

 
   
  ^^^▲ 고래불 모래사장금방이라도 고래가 물을 뿜고 나타날 것만 같다
ⓒ 경상북도^^^
 
 

고래불 모래사장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백사장이 길고 웅장하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길고 아름답다는 필리핀 보라카이 화이트비치도 고래불처럼 전체 길이가 8㎞에 이른단다. 하지만 그곳은 바깥쪽으로 휘어져 있어서 눈에 들어오는 길이는 고래불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곱사등처럼 휘어진 모래사장 곁에는 금방이라도 솔숲들이 마악 용트림을 하며 하늘로 치솟아 오를 것만 같다. 소금끼 묻은 바다 바람을 발효시켜 내뿜는 은은한 솔향도 그만이다. 솔향은 벌써부터 소주 한잔 마실 궁리를 하고 있는 내 머리 속까지 깨끗히 긁어낸다. 고래불 모래사장은 끝에서 끝까지 걸어서 갔다 오는 데 1시간 30여분이 걸린다.

당시 목은 이색 선생이 올랐다는 상대산(183m)에 실제로 올라가 보면 이내 진청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툭 트인 바다와 마치 활처럼 휘어져 있는 모래사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또 출렁거리는 바다를 가슴에 품고 연초록빛으로 싹트고 있는 영해평야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세상의 때가 묻은 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이곳 방파제에서는 주로 어떤 고기가 낚히나요?"
"바다에 사는 물고기는 다 낚이니더"
"제 말은 그게 아니라 꾼이 아닌 일반인이 낚시를 하면 어떤가 해서요"
"때에 따라 다르지만 망상어 서너 마리 정도는 손쉽게 건져 올릴 수 있니더"
"이야기를 듣기로는 학꽁치도 쉬이 낚을 수 있다고 하던 데요?"
"요즈음은 이곳 어민들이 그물을 많이 치가꼬 쉽지 않니더. 그렇다고 생계를 위해서 친다는데 싸울 수도 없고. 그래도 꾼들은 형광등 굵기 만한 학꽁치를 제법 낚아 올리니더"

오는 길에 고래불에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전통마을 '괴시리 한옥마을'도 그냥 지나치기에는 섭섭하다. 또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다면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의 촬영지 강구항에 가서 그 유명한 영덕대게도 맛보고, 물 맑기로 소문 난 강구 앞바다에서 건져 올린 돌미역과 꽁치과메기가 아닌, 청어과메기를 먹을 만치 사오는 것도 또 하나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겨질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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