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용(鄭義溶) 주제네바 대표부 대사는 전세계 주요 인권문제와 국별 인권상황에 관한 의제 9항을 다룬 이날 회의에서 발언을 통해 탈북자 보호문제를 우회적으로 제기했으나 '북한'과 '탈북자'라는 표현은 명시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았다.
정 대사는 "실패한 국가들에서 갈수록 증가하는 절망적인 사람들이 경제적 곤경과 정치적 억압에서 벗어나 식량과 자유를 찾아 인접국들로 도피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간혹 목숨을 잃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정 대사는 그러나 복수로 표현된 '실패한 국가들'에 북한이 포함되는 지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이어 "국제 인도법과 원칙에 따라 난민으로 분류될 수 있는 사람들 뿐 아니라 법적 지위가 모호하지만 난민과 같이 절망적인 상황에 직면한 사람들도 반드시 보호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보호의 대상이 '탈북자'라는 점도 명확히 하지는 않았다.
그는 그러면서 한국 정부는 이처럼 절박하게 보호가 필요한 사람들을 가능한한 폭넓게 안전장치를 확보하려는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과 국제사회의 당사자들의 노력을 치하하고 지지한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언급 역시 강제송환과 관련한 탈북자들의 인권침해에 대한 UNHCR과 중국 당국의 무기력과 무성의를 질타한 휴먼라이츠워치(HRW) 등 국제인권단체들의 지적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대목이다.
정부는 지난 99년 홍순영(洪淳瑛) 전 외교부 장관이 유엔인권위에 참석, 탈북자 문제를 조심스럽게 제기한 것을 제외하고는 인권위에 장.차관 등 고위급 인사를 파견하지 않았다. 탈북자를 비롯한 북한 인권상황에 관한 발언도 핵심을 비켜 나가면서 은유적인 표현으로 주변을 가볍게 거론하는 수준에 그쳤다.
이러한 대응은 일견 남북화해 분위기를 지속하기 위해 가급적 북한정권의 심기를 불편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낫다는 보다 큰 틀의 전략적인 고려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이라는 용어조차 사용하지 않은 채 국내 일각의 비판적인 시각 등을 의식해 거론했다는 기록을 남기기 위해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발언을 반복하는 것은 '참여정부' 출범을 계기로 지양돼야 한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할 말은 하고 다른 것은 달라야 한다"는 새정부의 신외교 노선에도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국 기독교 인권단체의 주선으로 최근 탈북자 2명이 제네바를 방문, 국제사회의 관심과 지지를 호소한 것과 정부의 모호한 입장 사이에는 간극이 너무 크다는 게 인권위 주변의 인식이다. (끝) 2003/04/01 23:00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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