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 TV, 월드컵을 생중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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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월드컵 기행] ⑨ 1970년 멕시코 월드컵

 
   
  ▲ 멕시코 월드컵 포스터
ⓒ fifaworldcup.com
 
 

인류의 20세기 가장 뛰어난 창조물 중 하나라고 일컬어 지는 월드컵. 그런 월드컵은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지만 끊임없이 꾸준한 발전의 길을 걷고 있었다.

세계 유수의 선진국들은 월드컵을 개최하기 위해 그야말로 사활을 걸고 있었으며, 중진국이나 후진국들도 국가성장의 한 방법으로 월드컵 위치를 계획하고 있었으니 월드컵은 스포츠만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벗어나 그 이상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 제9회 1970년 멕시코 월드컵

▲ 개최 배경

8번의 대회를 치러 오면서 그동안 유럽과 남미에 양분되었던 대회 개최권에 대한 불만들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당시만 해도 낙후된 대륙으로 분류됐었던 아시아와 아프리카는 물론이고, 북중미 지역에서도 월드컵을 개최하려는 국가들의 노력이 보이기 시작했다.

9회 대회의 개최권을 놓고 경쟁에 돌입한 나라는 불운의 축구강국 아르헨티나, 그리고 유럽과 남미가 아닌 제3의 대륙인 북중미의 멕시코였다. 여러 가지 상황을 미루어 볼 때, 이번만은 개최권의 여신이 아르헨티나로 갈 것 같았다. 전 대회인 8회 대회의 유럽 유치 뚜렷한 남미 쪽 경쟁자가 없었다는 점이 그랬고, 무엇보다 축구 산업과 국가 기간 시설에 있어서 멕시코보단 우위에 있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의 불운이 비켜가기엔 시간이 아직 짧아서였을까? 신은 아르헨티나를 또 한 번 외면하고 말았다. 1964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FIFA 총회에서는 아르헨티나를 누르고 북중미의 멕시코가 1970년 월드컵의 개최국가로 선정되게 되었다. FIFA가 내세운 이유는 너무나 단순했다. FIFA는 멕시코의 개최 선정 이유를 '1968년 올림픽을 멕시코가 개최했기 때문에 대회 유치에 별 문제점이 없어서'라고 발표했다.

이에 아르헨티나는 또다시 경악하고 말았다. 이번만큼은 월드컵 개최를 확신하고 있었는데, 남미의 라이벌도 아닌 북중미의 멕시코에 개최권을 뺏겼다는 것에 대해 온 나라가 슬픔에 잠기고 말았다. 유럽과 남미가 아닌 다른 대륙에서의 첫 월드컵 개최, 그 희생양이 되고 말았던 아르헨티나는 7회 대회에서 칠레에 개최권을 내주었던 것보다 더 큰 충격에 휩싸이고 말았다.

하지만, 개최국 선정 후 FIFA와 멕시코는 한참을 '금전공세' 혹은 '미녀공세'라는 로비로 개최권을 따냈다는 비아냥을 피할 수 없었다. FIFA의 개최지 선정 이유가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국제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도 멕시코는 열광의 도가니로 변했으며, 온 나라는 축제 분위기였다. 그러나 정작 멕시코를 제외한 그 어느 나라도 멕시코의 개최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멕시코는 뜨거운 태양의 나라이다. 게다가 해발 1천 미터가 넘는 고원지대로 유명한 멕시코에서 체력소모가 많은 축구경기를 하기가 여간 부담스럽지 않음이었다. 이에 유럽을 위시한 많은 국가가 불평을 내놓았지만, 그러한 지리적 요건으로 월드컵을 불참할 나라는 이제 어디에도 없었다. 이미 월드컵은 상상 이상의 커다란 힘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본선 경기 장면
ⓒ fifaworldcup.com
 
 

▲ 월드컵 뒷얘기

펠레가 만든, 옐로카드 선수교체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두 가지 중요한 축구 규칙이 적용된 대회였다. 하나는 심한 파울을 경고하는 옐로, 레드카드의 도입이었고 다른 하나는 바로 선수 교체였다. 이 두 가지 규칙은 당시 축구 신동으로 불렸던 펠레에 의해 만들어졌었다.

펠레는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많은 파울과 상대의 집중 견제로 인해 제대로 경기를 뛸 수 없었다. 심지어 부상으로 경기를 하기가 힘들었지만, 교체 제도가 없어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이에 펠레는 과격한 파울을 막는 제도와 부상이나 긴급한 상황에서의 선수 교체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FIFA는 이 안건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키게 된다. '황제'의 말 한 마디가 축구 역사를 바꾼 것이다.

컬러 TV가 사람 잡네~

멕시코는 뜨거운 태양의 나라로 유명한데, 특히 5월과 6월은 1년 내 가장 기온이 높은 달이었다. 공교롭게도 5월 31일부터 6월 21일까지 대회를 치러야 하는 참가국들은 더위와의 싸움에 힘들어했다. 게다가 참각구들은 새롭게 도입된 컬러 TV로 인해 더욱더 힘든 경기를 치러야 했다.

멕시코 대회에서는 처음으로 컬러 TV 중계가 도입되었는데, 방송사에서 더욱 선명하고 화려한 화면 전송을 위해 밝은 낮에 경기를 해줄 것을 FIFA에 요청했고, FIFA는 월드컵 홍보 효과를 위해 이를 받아들였다. 이로 인해 몇몇 경기는 한낮 뜨거운 태양 아래서 치러졌고, 선수들은 더위에 지쳐 쓰러질 정도였다. 팬들은 안방에서 화려한 화면을 편안하게 전송받았지만, 당시 선수들에게는 컬러 TV가 무척이나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베켄바우어의 부상 투혼

1970년, 멕시코의 아즈테카 경기장에서는 월드컵 역사상 가장 훌륭한 경기로 칭송받고 있는 이탈리아와 서독의 준결승전이 열렸다. 1-1로 승부를 가리지 못한 두 팀은 연장에서만 5골을 주고받는 치열한 명승부를 펼쳤고, 결국 이탈리아가 4-3으로 승리하며 결승에 진출했었다.

이 경기에서 독일의 '카이저' 베켄바우어는 경기 도중 어깨뼈 탈골이라는 중상을 입고도 끝까지 경기를 소화해 많은 축구팬을 감동시켰다. 베켄바우어는 탈골 된 어깨를 한쪽 팔로 부여잡고 경기를 치렀는데, 이 모습에 감동받은 팬들은 '경기는 졌지만, 베켄바우어는 승리했다.'라며 베켄바우어의 투철한 프로 정신에 박수를 보냈다. 

 
   
  ▲ 본선 경기 장면
ⓒ fifaworldcup.com
 
 

브라질, 줄리메컵 영구 소유-영구 분실

결승전에서 이탈리아를 4-1로 대파한 브라질은 월드컵 역사상 최초로 3번째 우승을 차지한 나라가 되었다. FIFA는 브라질의 3회 우승을 기념하기 위해 월드컵 창시자인 줄리메의 이름을 딴 줄리메컵을 영구 수여했다. 브라질로서는 감격스러웠던 순간. 하지만, 이 감동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브라질은 국내에서 줄리메컵을 도난당했는데, 경찰 조사에 의하면 도둑들이 가져가 녹여 없앤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역사와 의미를 담고 있던 줄리메컵은 브라질 축구협회의 부주의로 그렇게 사라지고 말았다. 현재 브라질은 모조품을 보관중이며 이 사건을 계기로 FIFA는 월드컵 트로피의 진품을 보관하고 우승국에는 모조품을 승계하게 되었다.

개막전부터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던 멕시코 월드컵은 현대 축구의 여러 가지 틀을 잡은 중요한 대회로 기억되고 있다. 각종 축구 규칙이 새롭게 적용되었는가 하면, '텔스타'라는 첫 월드컵 공인구가 사용되는 등, 전체적인 대회의 질을 높였었다.

또, 유럽과 남미에 비해 FIFA의 관심을 덜 받았던 제3의 대륙에서도 월드컵이 엄청난 인기와 열기를 발산함으로써 축구가 더 이상 유럽과 남미의 전유물이 아니란 것을 확인시켜준 대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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