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이 인간을 상대로 끊임없이 치료의 방법들이 내려져 왔다란 점이다. 치료의 효과가 없었다면 의료의 특성상 그 치료방법은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효과없는 치료를 받는 이가 과연 있을까?^^^ | ||
한의학에 대한 폄하! 가 그것들이다.
동의보감!
허준-양예수-장한웅의 계보가 곧 동의보감의 근본이다. 장한웅 (삼교회통(三敎會通)의 거두 - 도가. 불가. 유가(의가)를 합친)은 양예수의 스승. 양예수의 저서인 “의림촬요(醫林撮要)”가 후일 동의보감의 기초가 된다. 의림촬요는 스승 장한웅의 이름을 따서 “장씨의방(張氏醫方)”이라고도 불렀다.
의림촬요는 주로 중국 금원사대가의 의학을 정리한 명나라 시대 때의 의서들을 흡수.정리했다란 점이다. 금원사대가의 의학 정리 및 명대(명나라: 중국. 한족(漢族)이 몽골족이 세운 원(元)나라를 멸망시키고 세운 통일왕조(1368∼1644)) 의학을 향약론의 전통으로 흡수 완성. 특히 의림촬요는 주로“의학정전”“세의득효방”을 정리.
선조는 양예수에게 값비싼 중국 약재 대신 향약재(향약: 지난날, 중국에서 나던 약재에 대하여 ‘우리나라에서 나던 약이나 약재’를 이르던 말) 사용 권유(향약 집험방). 양예수의 처방을 패도라 일컬었다. 빠른 효과를 위주로(인삼 등) 패도와 같아 효과가 빠른 반면 사람을 상하게 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고 한다. 특이할 사항은 양예수의 의학이 동의보감을 통해 고대의 道家的인 전통을 의서편찬의 기본철학으로 삼았다란 점이다. 물질론적인 현대의학으로 보면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허준은 당시 의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필수로 익혀야 하는 경락서인 찬도맥(纂圖脈)을 교정.개편하면서, 발문에“인체의 경락은 곧 나라의 기강과 같다”란 논리를 펴면서 그 당시까지의 의술을 폄하시 했다고 쓰여져 있다. 의학도의 자긍심의 발로는 그 때나 지금이나 다름없다. 그러한 허준은 1590년 광해군(당시 왕세자)의 “두창”을 고침으로써 명의 반열에 오른다.
허준 = 동의보감
오늘의 1년은 과거의 100년과 맞먹는 시대다. 과거의 무지를 현대인의 지식수준으로 가름질하지 말자.과거가 있었기에 오늘이 있는 법이다. 심한 말로 예수가 재림했다고 해도 현대인들은 과연 믿을까? 알량한 지식이 믿음을 부정할거다.
좋은 점은 인간이 인간을 상대로 끊임없이 치료의 방법들이 내려져 왔다란 점이다. 치료의 효과가 없었다면 의료의 특성상 그 치료방법은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효과없는 치료를 받는 이가 과연 있을까? 질병의 논리는 식습관과 주변환경에 따른 작은 변화일 뿐이다. 그 변화에도 맞는 약재들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가난했던 그 당시도 부자들은 있었으니깐. 병은 가난한 이와 부자를 구분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동의보감이 얼마나 위대한지 알기나 할까? 지금의 의료는 환자 개인에 대한 객체를 우선했지만 허 준은 국가백년대개를 위해 기획하여 왔다란 점이다.
소아의 치료가 어렵다고 한점......국가를 위해 생산력을 올려야 한다란 점......그가 왜 성리학 부분을 의료에 포한시켰을까?
삼교회통(三敎會通)을 통한 의학적 기본철학의 반영이 동의보감이다. 동의보감서의 사상기조에는 “성리학”이 함께 깔려있기 때문이다. 성리학을 철학적 분류로 보면; 우주본체를 성명론, 수양론, 의학적 분류로 보면; 인간 생명의 본원 규정, 과학적 분류로 보면; 현대 과학의 한계 극복....... 이 모든 것을 함께 아우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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