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매화유난히 입술이 빠알간 그 소녀는 어디에 ⓒ 우리꽃 자생화^^^ | ||
빈 가지에 바구니 걸어놓고
내 소녀 어디 갔느뇨.
…………
박사(薄紗)의 아지랑이
오늘도 가지 앞에 아른거린다.
들판에 아지랑이가 가물가물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아득히 멀고도 푸르른 하늘에선 종달새가 한점 티끌이 되어 진종일 지저귀고 있습니다. 온 세상이 연초록 빛 속에 갇혀 있습니다. 어디선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줍게 피어난 연분홍 꽃들의 향기가 코끝을 향긋하게 간지럽히고 있습니다.
눈 시리도록 맑은 냇물이 졸졸졸 흐르는 둑 위에서는 파아란 쑥이 촘촘히 돋아나고 있습니다. 연초록 풀빛이 짙어오는 둑 위에는 한 소녀가 산토끼처럼 깡총거리며 쑥을 캐고 있습니다. 소녀가 한 발자국 깡총거릴 때마다 소녀의 단발머리가 배추 흰나비처럼 나폴거리고 있습니다.
소녀의 바구니 속에는 이미 파아란 쑥이 제법 담겨져 있습니다. 소녀의 바구니 속에는 그 파아란 쑥만 담겨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소녀의 파아란 꿈이 쑥으로 캐어져 담겨 있습니다. 마악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그 소녀의 젖가슴처럼 소녀의 아름다운 내일도 담겨져 있습니다.
아지랑이가 소녀의 하얀 목덜미에 간지럼을 먹이고 있습니다. 아지랑이는 어느새 소녀의 부풀어오른 젖가슴을 포근하게 감싸안고 있습니다. 아지랑이는 소녀의 갸녀린 허리와 이제는 제법 요강단지처럼 둥그런 소녀의 엉덩이를 매끄럽게 쓸어내리고 있습니다.
이윽고 소녀가 아지랑이로 가물거리기 시작합니다. 둑도, 바구니도, 하늘도 모두 아지랑가 되어 가물거리기 시작합니다. 보이는 것은 모두 아지랑이의 가물거림 뿐입니다. 온통 아지랑이 세상입니다. 이제는 소녀가 아지랑이인지 아지랑이가 소녀인지 분간조차 할 수가 없습니다.
문득 금방이라도 푸른 물이 쏴아아 하고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비취 빛 하늘을 슬쩍 바라보다가 다시 둑을 바라봅니다. 어~ 어느새 소녀가 보이지 않습니다. 아지랑이가 어지럽게 가물거리는 그 둑 위에는 소녀의 바구니만 달랑 남아 아지랑이를 바구니 가득 담아내고 있습니다.
단발머리 나폴거리던 그 소녀는 어디로 갔을까요? 파아란 쑥을 바구니 가득 담아놓고, 냇가에 손을 씻으러 갔을까요? 아니면 쑥이 되어 스스로 바구니 속으로 들어가 버린 것일까요? 그도 아니면 가물거리는 아지랑이가 되었을까요? 둑길 위에는 소녀의 바구니를 휘어감는 아지랑이만이 아스라히 가물거리고 있을 뿐입니다.
"내 소녀 어디 갔느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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