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지대학교 설립자 겸 제8대 총장 김문기 박사가 국민에게 보내는 호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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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지대학교 설립자 겸 제8대 총장 김문기 박사가 국민에게 보내는 호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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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타운

상지대학교 설립자 겸 제8대 총장 김문기 박사가 상지대학교의 실상을 밝히고자 국민들에게 호소문을 발표했다.

다음은 상지대학교 설립자 겸 제8대 총장 김문기 박사의 호소문 전문이다.

[호소문]

상지대학교의 실상을 소상히 밝히고자 합니다.

­불순세력들은 상지대를 이른바 “해방구”로 정하고 잘못된 이념을 전파해 무법천지로 만든 후 갖은 비리와 부정을 일삼았습니다.

사실을 알리는 일은 매우 어렵습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습니다. 부끄러움이 없는 삶에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1993년 정치적 사정에 의해 터무니없이 학원비리 설립자로 매도당해 상지대학교에서 쫓겨났습니다. 인생을 다 바친 곳에서 쫓겨나 교도소에 갇힐 때 실로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없는 죄를 인정하고 교도소에 간 것은 교직원들을 보호하고 학교발전을 보장하겠다는 집권당 사무총장의 말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21년간 학교를 빼앗겼습니다. 임시이사와 임시총장 그리고 그들과 영합해 교수가 된 자들에 의해 대학은 무법천지가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 인내하고 진실을 알리는 노력 끝에 2014년 8월 14일 학교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어느새 제 나이 적지 않은 85세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건강하게 활동할 수 있는 것은 초심을 잃지 않고 더 노력하라는 하늘의 뜻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85년의 삶을 산 제게 71주년 광복절은 남달랐습니다. 전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지금 상지대학교는 교육부의 특별감사를 받고 있습니다.

시련의 세월이 끝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새벽녘 하얀 화선지 위에 초심(初心)이란 글자를 썼습니다. 김문기의 초심은 무엇일까.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가는 인생에서 저의 희망과 초심은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이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하고 선진화와 통일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인재를 길러 내겠다는 사명이 바로 그것입니다.

1974년 상지학원 설립 당시 건학이념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다듬은 상지정신이 떠올랐습니다. 열네 살 때 맞은 광복의 기쁨이 그러했듯이 상지학원의 건학이념을 세상에 내 놓았던 마흔두 살 때의 가슴 벅참도 그랬습니다. 제가 창시한 건학이념은 이러합니다.

“본 대학은 우리나라 교육이념인 홍익인간과 교육입국의 정신을 이어받아 민족의 예지를 닦고 역량을 길러 국가의 장래를 설계 창조할 지도자적 영재를 기르는 터전으로 세워졌다. 따라서 본 대학은 대학 자체의 기능인 진리탐구와 인격도야에 충실한 학풍을 진작하고 여기서 함양된 인재들은 대학이 인류사회에 져야 할 경세치용의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지행합일의 교육을 지향한다. 특히 본 대학은 설립자의 굉원(宏願)인 상지정신을 학문의 바탕으로 삼아 인간의 존엄을 되찾고 인성의 선단(善端)을 확충하여 천지간 어디서도 부끄럽지 않은 당당한 인간상을 정립하고 국가민족의 원기인 사풍을 진작한다. 또한 본 대학은 지방에 위치한 특수성에 비추어 지역사회발전의 창조적 원동력으로 자임하고 필요한 연구시설과 훈련 기구를 부설하여 풍교순화와 산업개발 등 지역문화 향상에 적극 기여한다.”

상지대학의 설립을 구상하면서 교육철학으로 상지정신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 심적 갈등이 심했습니다. 사업과 인연 그리고 조국의 미래 등으로 불면의 밤은 깊었습니다.

저는 촉망받는 청년사업가였습니다. 가구 분야의 국내 1위를 기반으로 세계시장 진출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준비된 자금도 충분했습니다. 당시 저는 제 건물에 강원도민회 사무실을 무료로 내 줄 정도로 고향에 대한 애정이 깊었습니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저를 대학 설립의 적임자로 적극 추천했고, 특히 인연이 남달랐던 민관식 문교부장관의 간곡한 부탁은 실로 막중한 책임감으로 다가왔습니다. 가구 사업의 터전이 종로구인 관계로 맺어진 민관식 장관과의 인연에서 그 분의 올곧음과 성실 근면함은 제 인생의 사표로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성장가도에 있던 기업이 세계시장 진출을 준비하던 당시 산간벽촌이던 원주지역에 대학을 설립하는 것은 대단한 모험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육영사업에 뛰어든다면 저의 야심찬 사업은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랜 시간 혼자 고민하다 결정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보여준 조국 근대화에 대한 열정과 인간미도 크게 작용했습니다. 당시 청와대 건설공사에서 외부는 현대건설 정주영 회장이, 내부는 우리 회사가 맡았습니다. 가끔 현장을 찾던 박정희 대통령께서 차 한 잔 주시면서 “이봐, 젊은 김 사장 잘 돼가지.”라며 격려해 주시던 말씀이 새로웠는데 그 대통령께서 조국의 미래를 위해 원주에 대학 세울 사람을 찾는다고 하니 눈앞의 이익만을 생각할 수는 없었습니다.

세계시장 진출 대신 대학설립을 선택한 저는 인생의 목표를 대한민국과 세계가 필요한 대학을 만들 것을 다짐하면서 상지정신을 가다듬었습니다. 그런 상지정신이 상지대학교의 발전을 훼방하려는 사람들에 의해 ‘김문기 우상화’로 매도당할 때 제 마음은 이루 형용할 길이 없습니다.

조국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고민도 제 마음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가구 사업의 세계진출과 대학설립을 통한 인재육성 중 어떤 것이 조국의 미래에 더 큰 도움이 될 것인지, 갈등의 연속이었습니다. 대학설립의 연원은 제1군사령부 한신 장군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원주는 제1군사령부가 있던 곳으로 부실하게 운영되던 청암학원의 원주대학(야간부)이 폐교된 이후 군인들이 배울 수 있는 대학이 없었습니다. 한신 장군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원주지역에 대학 설립을 요청했습니다. 국군의 유능한 장교를 길러내기 위해 대학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박정희 대통령은 민관식 문교부장관에게 대학설립자를 찾아보라고 지시했습니다. 민관식 장관은 우선 강원도 출신 실업인들을 대상으로 의사를 타진했습니다. 대학을 설립할 만한 재정 능력이 있는 몇몇 사람들에게 요청했지만 모두 어렵다며 난색을 표했습니다.

제가 대학의 교육철학으로 정한 상지정신에서 상지(尙志)는 선비 정신으로서 인에 살면서 의를 따르는 것을, 또 상지정신은 홍익인간과 선비정신이 구현된 인(仁) · 의(義) · 예(禮) · 지(智) · 신(信)을 뜻합니다.

상지학원 설립 이후 오직 한길로 매진했습니다. 그 결과 상지학원은 1987년 대학원 설치인가를 받았고, 1989년 종합대학교로 승격되었습니다. 1992년에는 상지대학교 부속 한방병원을 개원했습니다. 상지대학교가 종합대학교로 발전하는 사이 조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뤘습니다. 남은 과제는 선진화와 통일입니다.

21년의 공백 끝에 상지대학교로 돌아왔을 때 대한민국의 과제인 선진화와 통일에 발맞춰 상지대학교를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를 생각했습니다. 상지대학교를 중흥시킬 방안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그 동안 대학환경은 대내외적으로 많은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주인을 내쫓고 주인행세를 하던 사람들이 저질러 놓은 행위를 탓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사학비리가 바로 상지대’란 잘못된 인식도 신경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풀 한포기와 나무 한 그루에도 제 혼과 땀이 깃들어 있는 상지대학교 중흥만을 생각했습니다. 모든 구성원들이 정심정도(正心正道)로 나가면 조국의 선진화와 통일에 기여하는 대학이 될 것으로 믿으며 초심으로 돌아가 발전계획을 구상했습니다.

이러한 저의 구상이 반영되어 구성원들은 “개교 50주년(2024) 중장기발전계획”을 수립하였으며, 도전과 공영, 혁신과 창의, 소통과 화합의 3대 강화 전략과 7대 핵심역량을 수립했습니다. ▲핵심역량은 인성을 겸비한 글로벌 미래인재 양성 ▲더 잘 가르치는 교수 ▲더 열심히 배우는 학생 ▲더 헌신하는 직원 ▲끝까지 책임지는 교육 ▲끝까지 해결하는 행정 ▲본분을 지키며 하나 되는 상지공동체입니다. 이를 위해 36개 중장기 실행과제와 70개 중장기 세부 실행과제를 만들었습니다.

저는 6.25의 고교생 학도병 출신으로 보국헌신의 길을 기업에서 대학 설립으로 전환한 교육자로서 항상 언행일치를 강조했습니다. 기업 활동은 무엇보다 신뢰가 생명이었습니다. 믿음은 언행일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저의 이러한 소신은 건학이념인 상지정신에 구현되어 있습니다.

‘개교 50주년(2024) 중장기 발전계획’도 그랬습니다. 실천이 뒤 따르지 않는 발전계획은 사람들을 현혹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자연치유와 관련된 많은 연구와 자료를 토대로 이 분야를 학문화 하고 더욱 발전된 국면을 위한 차원에서 자연치유원을 설치하고자 2016년 2월에 새로이 70만평의 임야를 확보했습니다.

주지하시는 바와 같이, 기업 활동을 통해 얻은 수익을 상지대학교 발전에 아낌없이 출연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저의 소명의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일은 천지지지아지자지(天知地知我知子知)입니다. 하늘과 땅과 나와 상대가 알게 됩니다. 비밀은 없습니다. 제가 상지대학교를 설립하고 발전시킨 과정이 거짓이라면 어떻게 제가 1993년 수사를 표적사정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으며, 2007년 대법원의 판결에서 승소할 수 있었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김문기는 사학비리의 표본이라는 인터넷상의 기사를 진실로 믿고 있습니다. 저는 그동안 그런 기사를 접하고 걱정해 주는 분들에게 사실이 아니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상지대학교를 탈취하여 무법천지로 만들어 놓은 사람들에게 동조하는 일부 정치권과 일부 언론을 일일이 대응할 가치가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 시간에 어떻게 하면 상지대학교를 중부권의 우수한 대학으로 발전시킬 것인가를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주인은 상황을 탓하지 않고 늘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에 대한 음해 모략이 대법원에서 무죄로 판결 되고 사면복권 후 임시이사 시절 교수로 들어와 학교를 파행으로 이끌어가다 비위사실로 파면된 자들과 그 동조자들은 야당 원내대표의 상지대학교 방문과 교육부의 특별감사를 요청하는 등 상지대학교 발전의 방해 활동을 계속 전개했습니다.

파면된 교수들 중에는 김일성대학을 방문하고 상지대와 자매결연을 맺자고 주장한 교수도 있습니다.

제1야당의 우ㅇㅇ 원내대표는 2016년 6월 21일 학교를 방문하여 자신이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고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고 돌아갔습니다. 그런 후 당의 제47차 비상대책위원회의 모두 발언에서 “상지대학교처럼 30년 이상을 김문기 전 이사장 때문에 정상적인 교육이 중단 된 학교는 없다.”, “상지대는 무법천지인 것을 확인했다.”, “사실상 해임 된 상지대의 전 총장 김문기 씨가 학교 관계자들을 불러서 사실상의 결재권을 행사하고 있다.”, “심지어 21세기 대명천지에 대학생들을 상대로 김문기 선생의 철학을 인성교육이라고 가르치고 있는데, 이 책을 보면 김일성 주체사상처럼 김문기선생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면서 상지정신의 책을 욕보였습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상지정신이란 책을 읽어 봤다면 그런 말을 감히 입에 담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제1야당의 원내대표가 홍익인간과 선비정신을 담은 상지정신을 김일성 주체사상과 비교하는 것을 보면서 국가적으로 큰일이다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ㅇㅇ 원내대표의 상지대학교 방문은 악의적인 편견에 기인한 정당의 포플리즘이었습니다. 민생투어를 핑계로 학생운동 시절 맺어진 인연의 사람이 그 동안 어떤 잘못을 범했는지도 모르고 편파적인 정치적 이익을 도모하려는 행동이었습니다.

현재 대학은 학령인구의 감소와 대학 정원 조정 등 대내외적 환경이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상지대학교 구성원 모두는 글로벌 인재 양성과 중부권 명문사학으로 발전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습니다. 이런 노력과 헌신은 대학의 안정화를 가져 왔습니다. 그런데 부정과 비리에 관련된 교수들은 학내분규를 야기하면서 학사운영 전반을 파행으로 몰아가려고 합니다. 21년 동안 불법 비리를 저지른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덮기 위해 특정 정치인과 언론을 이용하여 중상모략적인 음해를 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삶은 유한합니다.

85세인 저는 유한의 끝자락에서 무한의 문턱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만 돈을 더 벌겠다는 욕심도 명예를 더 쌓겠다는 욕망도 없습니다. 누구와 싸워 쟁취하겠다는 투쟁심도 없습니다.

저의 소망은 오로지 상지대학교가 세계중심대학으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상지대학교 설립이란 육영의 뜻을 세운 후 제 인생은 상지대학교 그 자체였습니다. 근면하고 성실, 봉사의 자세로 상지대학교 발전만을 생각하고 실천했습니다. 상지대학교 발전이란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탈취당한 21년의 세월 동안 온갖 모욕을 이겨내고 분노를 삭일 수 있었습니다.

제 인생의 시간은 많이 남지 않았습니다. ‘개교 50주년(2024) 중장기 발전계획’을 이행하기 위한 발길이 바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상지대학교를 무법천지로 만든 사람들은 타당치 않은 이유로 제 노년의 열정과 희망을 꺾으려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음해와 훼방을 일삼고 있습니다.

잘못된 학생운동으로 반대를 위한 반대만을 일삼는 사람들이 1993년 임시이사라는 지렛대를 활용하여 상지대학교에 들어 왔습니다. 그들은 제가 없는 사이 상지대학교를 자신들의 잘못된 이념을 전파하고 실험하기 위한 투쟁의 해방구로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전략과 전술에 따라 만들어진 매뉴얼대로 상교협의 이사회 무력화와 실질적 경영권 장악, 상교협 교수의 법인 사무국장(정ㅇㅇ 1996년 8월)과 학교 사무처장(임ㅇㅇ 1994년 3월) 취임 후 법인과 학교의 인사권·재정권을 장악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그들은 상지대학교를 완전히 탈취하기 위해 상지대 도립화 추진과 원주시민대학을 추진하기도 했습니다. 강원도의 도립화 불가 표명과 원주시 유지들의 질책과 반대로 그들의 획책은 완전히 실패로 끝났습니다. 심지어는 상지대와 한신대, 성공회대 3개 대학을 민주대학 컨소시엄 결성이란 것으로 묶고 경인여대, 덕성여대, 세종대, 동해대 등 사학탈취 사건에 적극 개입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윤덕홍 교육부 장관은 2003년 12월 시민대학 추진 정이사 선임 및 승인을 했습니다. 교육부에 의해 사립학교가 최초로 탈취당하는 사건이었습니다. 법치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상지대학교를 탈취한 정이사 명단은 대한민국의 교육 역사에서 영원히 불명예로 남을 것입니다. 이사장 변ㅇㅇ, 이사 김ㅇㅇ, 이ㅇㅇ, 최ㅇㅇ, 김ㅇㅇ, 박ㅇㅇ, 하ㅇㅇ, 박ㅇㅇ, 김ㅇㅇ 등 그들이 누구인지는 자료를 통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상지대를 해방구로 삼은 이들은 2005년 6월말 평양을 방문하여 김일성대학과 교류협력을 타진했다는 방북 보고서까지 내 놓았습니다. 학교발전기금 241억 원을 임시이사 파견 1년 만에 흥청망청 한 푼도 남기지 않고 썼습니다.

비대위 교수들은 학점을 볼모로 학생들을 선동하여 버스 안이나 집회현장에서 출석부에 서명하게 하는 방식으로 정규 교과 시간에 집회 장소로 끌고 다니면서 불법집회를 개최했습니다.

그들이 저지른 천인공노할 해악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습니다. 심지어 학교 부지 4,868평까지 불법매각하였습니다. 학교 법인카드를 사용하여 유흥업소를 출입하고, 천문학적인 비자금도 마련하였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임시이사 체제 하에서 학교 운영은 참담했습니다. 약 1조1천3백억 원을 집행하고도 2014년 정부재정지원제한 대학으로 지정당했고, 2015년 대학구조 개혁평가에서 D- 등급을 받는 기초를 제공했습니다. 제가 1974년 상지대학을 설립하여 1989년 종합대학으로 승격하고, 1992년 상지대 부속한방병원 개원하면서 5개년 발전계획수립(소요자금 241억원 조성) 등 20여년 만에 중부권 명문사학으로 발전시킨 것과 비교해 볼 때 지난 21년간의 상지대학은 불순세력들의 해방구로서 처참한 몰골 이었습니다.

그런 내용을 아는지 모르는지 제1야당의 원내대표는 그들의 요구에 응해 상지대학교를 방문하여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들은 후 상지대를 “어떤 법도 통하지 않는 김문기 독재체제의 아성과 같았다.”는 말로 저를 폄하하고 인격을 모독했습니다. 저도 3선의 국회의원을 역임했지만 국회의원이란 직함은 망나니가 칼을 휘둘러 대듯 가볍게 행동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국회의원은 사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법 절차에 따라 움직여야 합니다.

저는 2014년 8월 14일 제8대 총장에 취임했습니다. 종전이사측 이사 4명, 학내 구성원측 이사 2명, 관할청 이사 2명, 임시이사 1명으로 구성된 이사회에서 책임경영을 위해 만장일치로 총장으로 추대되었습니다. 총장 취임 후 무보수 봉사와 기숙사 부지 무상 기증 그리고 글로벌 대학 추진을 위해 국제사업 다수를 성공시키고 해외 대학과 다수의 협약을 맺으면서 1974년 상지대 설립 당시의 초심을 발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2014년 교육부가 특별종합감사를 실시했습니다. 임시이사 체제 21년간의 부정비리는 덮어 두고 저를 향한 표적 종합감사 이었습니다. 교육부는 2015년 7월 13일 행정업무 단순 사항으로 총장 해임을 통보 했습니다. 해임 이유는 ▲대학총장에게 배정된 관사를 상지대 한방병원장 숙소로 무상 임대 ▲계약 직원 2명 특별채용 ▲일부 교수에 의해 자행된 수업거부로 인한 수업결손이었습니다. 교육부는 총장 해임이 이뤄지지 않을 시는 임원취임승인을 취소하고 임시이사를 파견하는 행정 계고를 했습니다. 교육부 감사결과 지적사항을 모두 원상회복한 저는 그렇게 학교에서 또 다시 억울하게 쫓겨났습니다.

상지대 건학이념에 반하는 불순한 세력의 교수들이 대학이 파탄에 이르고 있다며 일시적으로 전략적 과대시위를 하고, 이를 빌미로 재임 4개월 만에 종합감사를 받고 해임되었습니다. 기숙사 신축과 한방병원 분원설치, 국제대학 설립, 직능 · 소상공인교육원 설립, 평생교육 단과대학 추진 등이 중단 · 지연되었습니다.

총장 취임 이후 일부 교수들이 학생들을 선동했습니다. 교내에 불법 시설물인 농성천막을 설치하여 학사일정과 행정을 마비시킬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제 임기 중에 대학 운영이 파행된 적은 없었습니다. 1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기숙사 신축을 위해 사유지를 대학에 교지로 편입시켜 신축에 대한 절차를 진행 중이었습니다. 또한 한방병원분원 개원을 위해 강릉시 옥천동 요지에 있는 지하 1층 지상 5층의 빌딩을 병원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리모델링을 80% 진행하고 있습니다.

교육부의 총장 해임 통보는 상지대의 중부권 명문사학으로 발전이 좌절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인생에서 마지막 남은 꿈인 상지대학교를 세계중심대학으로 발전시키는 것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법원에서 현명한 판결을 내려주시도록 호소했습니다. 결국 2016년 2월 14일 교육부 총장해임 행정소송 무효판결에서 승소했습니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기에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초심을 세웠습니다. 모든 열정과 재산을 쏟아 반듯이 상지대학교를 중부권 명문사학이며 세계의 중심대학으로 발전시키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런 사이에 제1야당 원내대표가 상지대를 방문했습니다. 뒤이어 사실확인이란 기본을 무시하고 제 입맛대로 쓰는 일부 언론들이 마녀사냥 하듯 상지대학교와 저를 매도하고 폄하하며 모욕을 주는 기사를 쏟아 냈습니다. 그런 뒤 일부 정치권의 압력에 굴복한 교육부는 8월 8일부터 19일까지 16명의 감사위원을 파견하여 종합감사를 벌이고 있고, 다시 감사기간을 8월26일까지 연장하였다고 합니다.

저는 학교 관계자들에게 한 점의 의혹이 없도록 교육부의 종합감사에 최선을 다해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입니다. 법치국가는 국가가 법에 의해 국민을 다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보편타당한 원칙과 상식이 통하고 지배하는 사회입니다. 그런데, 법과 원칙이 무시되고 중상 · 음해모략, 떼법만이 무성합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국민들에게 호소합니다.

상지대학교를 설립한 교육자 김문기의 소망은 단 하나입니다. 남은 인생의 열정을 바치고 사재를 출연하여 상지대학교를 홍익인간과 상지정신으로 경쟁력 있는 세계중심대학으로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과거 불순한 세력의 편에 선 사람들에 대해 잘잘못을 따지지 않을 것입니다. ‘개교 50주년(2024) 중장기 발전계획’ 이행에 앞장 서는 사람들은 손을 잡고 함께 갈 것입니다. 반면 잘못된 사고와 행동으로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고 시위를 직업화하면서 학교 발전에 걸림이 되는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법질서에 따라 함께 할 수 없을 것입니다.

21년 동안 불순세력들의 해방구가 된 상지대학교가 건학이념이 무너지지 않고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대한민국의 희망세력들이 용기와 격려 그리고 행동으로 함께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사학의 정체성에 대한 믿음으로 비대위의 도립대학 추진을 막아준 강원도민과 시민대학 추진을 무산시켜 준 원주시민 그리고 상지정신 실현에 앞장선 상지대학교 총동창회, 상지정신실천교수협의회 등이 있어 가능했습니다.

또한 전국 NGO연대와 공동체의식개혁국민운동협의회(공개협) 등이 중심이 되어 2002년 3월 결성된 상지학원 · 상지대학교 진실규명 및 설립자학교찾아주기운동본부의 사회 지도층 인사와 430여개 시민단체의 회원님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이분들이 저의 진실을 믿고 함께 해주셨기 때문에 시련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상지대학교 정상화를 위해 인내할 수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의 희망세력이 찾아 준 상지대학교 이제는 지켜주십시오.

상지대학교를 설립한 저 또한 85세의 노구를 이끌고 현장에서 쓰러지는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상지대학교를 세계중심대학, 경쟁력 있는 대학이 될 수 있도록 설립자로서 열과 성을 다하겠습니다.

[상지대학교 설립자 겸 제8대 총장 김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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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레기날다 2016-10-05 13:45:11
김영란법 실행됬다 이따위 기사 쓰면.. 잡혀간다 기레기야~

???? 2016-09-06 09:44:53
뭐라는거야?

상지사랑 2016-08-29 21:09:00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하늘이 보이지 않겠습니까?
그 어느 누구도
그 어떤이의 논리도 학생들을 불편하게 해서는 안될것입니다.
학교는 공부하는 학생의,
공부를 하고자하는 학생들의 성역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의 열정과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무거운짐들을 내려놓을때가 된것같습니다....
그 누구든....

ㅇㅇㅇ 2016-08-29 15:45:02
광고비 많이 들었겠다.

학생 2016-08-28 17:18:18
그럼 이 내용에 가장중요한 학생들앞에서 이런 한마디 없이 피하시기만 하시고 이런 총장님의 마음을 찌라시로 보게 되네요.과연 정말일까요.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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