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도 꽃이었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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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도 꽃이었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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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보는 세상 8> 최영미 “선운사에서”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 동백그 누군가가 애타게 그리워 저렇게 붉은 울음을 우는 것일까
ⓒ 우리꽃 자생화^^^
 
 

지금도 선운사에서는 동백이 새색시처럼 빨간 입술을 도톰하게 내밀고 있을까요. 아니면 "피는 건 힘들어도/지는 건 잠깐" 인 것처럼 벌써 땅에 다 떨어지고 말았을까요. "골고루 쳐다볼 틈도 없이" 그렇게 시들어 버리고 말았을까요. 땅에 떨어져 누운 그 꽃잎마저 모두 흙분을 바른 채 모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을까요.

선운사는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에 있는 선운산 가슴팍에 마치 와불처럼 드러누워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24교구 본사입니다. 선운산은 도솔산이라고도 불리며, 김제의 금산사와 더불어 빼어난 자연의 몸매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오늘도 시집을 가는 새색시의 입술처럼 빠알간 동백 꽃송이를 피워내는 선운사... 그래서 시인은 선운사에 가서 자신도 모르게 굳게 닫힌 마음의 빗장이 풀리기를 바랐을까요. 그리하여 빠알간 동백꽃이 금세라도 자신의 차거운 마음의 입술을 따스하게 입맞춰주기를 바랐을까요.

선운사는 신라 진흥왕이 창건했다는 이야기와 백제 위덕왕 24년(577)에 고승 검단(檢旦, 黔丹)이 창건했다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신라 진흥왕이 말년에 왕위를 내주고 도솔산의 어느 굴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이때 미륵삼존불이 바위를 가르고 나오는 꿈을 꾼 뒤, 중애사(重愛寺)라는 절을 창건하면서 선운사의 시초를 열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이곳은 신라와의 세력다툼이 심했던 백제의 영토였기 때문에 신라의 왕이 이곳으로 와서 사찰을 창건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합니다.

선운사의 자리에는 용이 살던 큰 연못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루는 검단선사가 이 곳에 와서 용을 몰아낸 뒤, 돌을 던져넣어 연못을 메워나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인근 마을에서 눈병이 심하게 돌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연못에 숯을 한 가마씩 갖다 부으면 신기하게도 눈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고 합니다.

이후부터 인근 마을 사람들은 누구나 숯과 돌을 이 연못에 던져넣었으며, 그로 인해 마침내 커다란 연못이 메워지게 되었고, 그 자리에 검단선사가 절을 세웠다고 합니다. 이 때 검단선사는 '오묘한 지혜의 경계인 구름에 머무르면서 갈고 닦아 선정의 경지를 얻는다' 하여 절 이름을 선운(禪雲)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합니다.

이 시를 읽다 보면 문득 "꽃은 피어서 곧 지고 사람은 나면 이윽고 죽는다" 라는 불경의 한구절이 떠오릅니다. 그와 같이 이 시에서 말하는 "꽃이/피는 건 힘들어도/지는 건 잠깐이더군" 은 "꽃은 피어서 곧 지고"와 같은 맥락으로 보입니다. 또 "잊는 건 한참이더군/영영 한참이더군." 은 "이윽고 죽는다"의 "이윽고"와 같은 뜻일 것입니다.

시인은 "멀리서 웃는 그대" 와 "산 넘어 가는 그대" 를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잊으려 해도 쉬이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그대가 처음/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잊는 것 또한 그렇게", 꽃이 지는 것이 잠깐인 것처럼 그렇게 영원히 잊혀지기를 애타게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대는 좀처럼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꽃이 피는 것이 힘든 것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힘들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이 시에서 시인이 생각하는 것은 꽃이 피는 것과 사람의 마음은 거꾸로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군가를 쉬이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헤어짐은 만나는 것처럼 그렇게 쉬이 끝나지지가 않는 것입니다.

비록 땅바닥 한구석에서는 빨간 동백이 쉬이, 그리고 서둘러 떨어져 빨간 입술에 흙을 묻힌 채 시들어가고 있지만, 오늘도 동백나무에서는 연이어 빠알간 동백이 무더기로 피어나고 있습니다. 내가 한때 사랑했던 사람의 실루엣이 끝없이 내 마음 속에 그늘로 드리워지는 것처럼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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