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마른 그곳에서 어찌 다시만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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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마른 그곳에서 어찌 다시만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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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촉촉한 여자일까, 아닐까?”

“남자랑 잘 때 원래 그렇게 아픈 건가요? 밤마다 고민돼요. 남편의 요구를 거절할 수도 없고, 하자니 너무 아프고. 저 혹시 불감증 아닐까요?”

성기능 장애로 찾아온 주부 B 씨. 겉으로 보기엔 호리호리한 몸매에 얼굴도 예쁘장한 모습이었는데, 보이지 않는 그 곳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모양이었다.

“원래 처음부터 지금까지 죽 아팠나요, 아니면 요즘에만 아픈 건가요?”
“신혼 때도 좀 아프긴 했지만, 지금처럼 심하지는 않았거든요. 그런데 요 몇 달 전부터는 정말 남편이랑 같이 섹스하는 게 죽기보다 싫어요.”

그녀가 지금 겪고 있는 증상은 성교통(性交痛). 말 그대로 섹스를 할 때 질이나 골반, 대퇴부 근육들이 경련을 일으켜 통증을 느끼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이럴 경우 섹스란 그야말로 노동이다 못해 고통 그 자체가 된다.

“바깥 분은 전혀 눈치를 못 채나요?”
“제가 얘기를 안 하니까 모르는 것 같기는 한데, 좋다는 표현을 안 하니까 조금 실망해 하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제가 억지로 좋은 척 할 수는 없잖아요.”

비뇨기과나 산부인과를 찾는 여성의 20% 정도는 이런 성기능 장애를 겪고 있다는 통계가 있다. 하지만 이런 여성의 대부분은 그냥 참고 견디는 것 외에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큰 문제.

왜 이런 문제들이 생기는 것일까?

우선 질내 분비물이 부족하면 성교통을 느끼게 된다. 원래 성적으로 흥분을 하면 여성의 질 내에서 분비되는 애액이 윤활유 작용을 하게 되어 있는데, 그 분비물이 원활하게 나오지 않기 때문에 남성의 성기가 삽입될 때마다 고통스러운 것이다.

이런 증상이 생기는 것은 여성의 몸에 진액이 부족하기 때문. 전체적으로 음기가 부족하고 진액이 메말라 있기 때문에 섹스를 할 때 당연히 분비되어야 할 애액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질에서 분비되는 애액이 풍부하려면 성적으로 흥분했을 때 피가 성기로 잘 몰려야 가능하다. 남성의 성기에 피가 몰려서 발기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여성은 워낙 ‘혈(血)’이 부족해 생기는 병이 많은데, 질 분비물의 부족도 바로 피가 모자라서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성교통의 또 다른 원인은 심리적인 것이다. 사실 성교통을 호소하는 여성들 중에는 실제로 통증이 없는데도 심리적으로 통증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아마도 종교적인 이유나 가정환경에서 기인한 ‘섹스 혐오증’ 때문일 확률이 높다.

또는 ‘너무 아플까봐 걱정이 되어’ 통증이 없는데도 통증이 있는 것처럼 느끼는 경우도 많다. 자꾸 머리 속으로 ‘아플 거야’, ‘아플 거야’라고 세뇌를 시키면 없는 통증도 생기게 마련.

예전에 성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거나 분만할 때 성기에 상처를 입은 경우, 또는 폐경 후 클리토리스를 비롯한 성기조직들의 기능이 퇴화된 경우에도 섹스할 때 통증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여성에게 건강상 별다른 문제가 없는데도 질 건조증으로 고통받고 있다면, 그것은 십중팔구 남편의 테크닉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테크닉이라고 하면 무조건 ‘강하게’, ‘세게’라고 생각할 남성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테크닉이란 여성을 적당히 흥분시키는 ‘전희(前戱)’를 얼마나 잘 하느냐에 관한 얘기다.

여성이 흥분하면 질에서 분비물에 나와 성기 주변이 촉촉해진다. 하지만 제대로 흥분하지 못하면 분비물이 나오지 않는다. 즉, 남성이 여성을 성적으로 흥분 상태에 몰입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질 안이 건조해지는 것이다. 이럴 때 남성이 무조건 성기를 삽입하면 여성이 고통을 느낄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

B 씨의 경우 진찰을 해 본 결과 몸의 진액이 조금 부족한 상태이긴 했지만, 그렇게 메말라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남편과의 잠자리에서 문제는 바로 그녀의 남편이었던 것이다.

“키스라든가 애무라든가 하는 걸 하는데 별로 시간을 투자하지 않아요. 그냥 얼떨결에 바로 삽입을 한다니까요. 그래서 더 아픈 건가요?”

그녀 자신도 여성의 성생활에 있어 전희가 얼마나 중요한 건지 모르고 있는 게 분명했다.

전희 중의 꽃이라 할 수 있는 키스만 해도 그렇다.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가 키스를 하며 혀를 주고 받는 순간, 심장이 뛰고 맥박이 빨라지면서 혈압이 오른다. 췌장에서는 인슐린이 분비되고, 온 몸의 피가 활발하게 움직인다. 즉, 마음의 설레임이 몸 속의 모든 시스템을 섹스하기에 좋은 쪽으로 가동시킨다는 것이다.

키스 뿐만 아니라 섬세한 애무, 다정한 밀어(密語) 등을 통해 여성이 흥분하면 충분히 성기가 젖어 큰 통증 없이 삽입 섹스를 할 수 있다.

“어머, 전 여태까지 저한테만 문제가 있는 줄 알았어요. 그렇다고 남편한테 당장 이런 얘기를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좀 위로가 되네요. 감사해요.”

B 씨에게는 일단 음기를 적셔서 진액을 보충해 줄 수 있는 자음탕(滋陰蕩)에 체질에 맞는 약재 몇 가지를 더 처방해주었다. 그녀가 그 약을 꾸준히 먹으면서 꼭 해야 할 일은 ‘남편과의 대화’. 남편과 성 문제에 관해 진지하게 대화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남편이 좀 보수적인 남자라 여성의 성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가질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밑져야 본전이니 한 번 노력해 볼 일이다.

“불감증 아니니까 염려 마시고, 남편과 진지하게 얘기를 나눠보세요. 아마 해결책이 생길 거예요.”
내 격려에 그녀는 한 번 남편과의 대화를 시도해보겠다고 했다.

그 이후로 전화가 없는 걸 보면 아마 잘 되어가고 있나보다. 환자들이 따로 연락을 해 오지 않으면 나도 무소식이 희소식이려니 하고 여기게 된다.

“나는 촉촉한 여자일까, 아닐까?”

혹시 섹스 때마다 통증으로 고생하고 있다면, 괜한 불감증 의심하지 말고 이 말을 한 번 생각해보자. 문제의 열쇠는 생각보다 간단한 곳에 놓여있다. 남편은 의외로 당신이 먼저 대화의 문을 열어주길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혈이 부족하면 약을 먹으면 된다.

어떤 열쇠든 간에 스스로 찾아나설 용기를 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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