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을 추종하게 하고 소중한 돈을 헌금하게 하는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기적같은 영적 능력을 가진 남녀의 교주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예컨대 기독교를 내세워 전도를 하다가 종착역에는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며 천문학적인 대졸부(大猝富)가 된 교주도 있고, 불교에서 미래에 온다는 미륵불 사상으로 포교하다가 마침내 자신이 미륵불이라고 주장하고 결론은 대졸부(大卒富) 노릇을 하고 있는 교주적 남녀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나는 교주적 남녀들을 나름으로 종교천재라고 보며 이 글을 쓴다.
성질 급한 혹자는 파르르 격노하여 나의 종교천재 주장론에 “희대의 사기꾼이지 무슨 종교천재?” 일언지하에 맹공(猛攻)을 퍼붓는 사람들은 있다. 이러한 주장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나의 분석에는 신비한 일이 있는 것이다. 나는 예화들 들어 설명해보겠다.
동학이요, 천도교의 교주인 수운(水雲) 최제우도 애초에는 역시 불교에 입문한 승려였다. 그는 당시 사회에서는 과거시험을 통해 관직에 입신양명(立身揚名)할 수 없는 유학자의 서자(庶子)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인정을 받는 유학자였고, 아버지로부터 유학의 글을 배웠다. 하지만 그는 출신이 서자여서 관계에 출세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는 슬피 울며 탄식하고 속세를 떠나 승려가 되었다.
그는 금강산에서 양심적인 지식인 노승을 만나 가르침을 받았다. 노승은 당시 돈에 환장 한 듯한 당시 일부 불교계의 폐해를 설명해주고 사찰을 떠나 스스로 창교(創敎)할 것을 당부하고, 불교의 핵심적인 교리를 원용(遠用)할 것을 깨우쳐 주었다.
최제우는 환속하여 동학, 즉 천도교를 세워 민족종교라고 널리 선전하여 성공하였다. 그러나 속세에 출세할 수 없는 울분에 달밤이면 칼춤을 추며 당시 조정의 제도를 혁파해야 한다는 식의 검가(劍歌)를 부르는 것을 좋아 하였는데, 이것을 관아에 고변한 자 때문에 역도로 몰려 48세의 나이로 대구 감영(監營)에서 참수 당하고 말았다.
또하나의 예화가 있다. 전북 김제와 전주, 신태인 등 소위 만경평야를 중심으로 일어선 종교천재는 증산교(甑山敎)를 세운 강증산(姜甑山)이다. 그는 처음에는 불교에 입문하여 불교를 배우다가 나름의 깨달음을 얻어 불가에서 환속한 후 자기만의 창조적인 교리를 주장하고 추종자들을 모와 증산교를 세웠다. 그 증산교는 교주 증산이 38세로 요절한 후 영특한 제자들에 의하여 대순진리회(大巡眞理會)등 부지기수(不知其數)의 교파로 한국사회에 퍼져나가 자리를 잡았다.
증산은 신도들에게 자신은 미륵불(彌勒佛)이며 중국에서 존중받는 옥황상제(玉皇上帝)라 자칭하였다. 그는 유언하기를 “나는 김제 금산사 미륵불상에 가 있을 것이다”고 했다. 신도들은 증산이 요절했지만 그의 진신은 금산사 미륵불상에 있다고 믿어 무력으로 금산사를 장악하려는 시도도 했었다.
지금은 금산사 부근에 증산상제(甑山上帝)의 신사(神祠)를 모시고 숭배하고 있다. 신도들은 이미 요절한 증산을 여전히 “우리 상제, 우리 미륵”이라고 호칭하며 치성을 다하고 있고, 신도들은 전국적으로 맹신하고 있다.
전북 익산시(益山市)를 중심으로 일어난 또하나의 신흥종교는 원불교(圓佛敎)이다. 원불교의 교주는 증산과 마찬가지로 초기에는 불문에 입문하여 불교 수행을 하다가 새롭게 창교(創敎)를 하여 교단명을 원불교라 칭하였다. 원불교는 교주의 말씀을 경(經)으로 추존하는데 그 경속에는 교주가 사찰을 방문하면 사찰 주지 등 승려들이 자신을 공경하고 귀의했다는 주장을 하였다.
내가 분석하기에는 사찰의 주지 등이 사찰을 찾아온 손님에게 예의를 갖추어 대접하였을 뿐이지 진짜 귀의하였다는 주장은 자신을 높이려는 자존망대(自尊亡大)라고 본다. 어쨌거나 원불교를 창시한 소태산(小泰山) 박중빈교주는 큰 무리를 따르게 하는 영적 능력자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의 교단은 튼튼한 재력으로 국내를 넘어 외국으로 까지 전도되고 있다.
나는 전술(前述)한 것 외에도 불교를 원용하는 인사들의 새로운 창교(創敎)의 교주는 부지기수(不知其數)이다. 이 사례를 일일이 열거할 지면은 따로 있어야 할 것이다.
나는 창교(創敎)를 한 교단을 찾아 교주를 만나보고, 그의 주장의 교리를 들어보는 목적으로 전국을 돌아 다녔다.
교주들은 큰 교단의 교주도 있지만, 가족적인 교단도 있었다. 예컨대 계룡산 큰 바위를 중심으로 아버지는 교주요, 어머니는 부교주, 큰아들은 총무원장으로 행세하는 가족적인 교단도 있었다. 모든 교주는 인류 최후의 심판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말세론(末世論)을 주장하였다.
어느 교주는 내게 심판의 날이 왔다고 주장하여 나는 어떠한 심판이 오느냐고 물었더니 “하늘에서 수천에서 수만의 날선 낫이 일시에 내려 자신을 믿지 않는 자들은 모조리 낫으로 목이 잘린다”는 험악한 인상으로 나를 보며 강력히 주장하였다. 나의 분석에는 그 교주는 낫을 많이 사용한 농부 출신 같았다.
어느 성공한 교주는 대졸부(大猝富)가 되었는데, 사인(死因)의 증언이 나를 경악하게 하였다. 그의 왕성해가는 교단을 위해 이름은 밝히지 않겠다. 그는 돈이 많아서 여자들이 많이 따랐다. 둘째 부인이 20년 나이차로 경북 모 도시에 사는데, 30대 후반의 둘째 부인이 맛있는 요리를 준비하기 위해서 시장을 갔을 때 17세 하녀를 성폭행 하다가 복상사(腹上死)를 하고 말았다. 복상사한 그는 지금은 부처님 같은 등신불(等身佛)로 신도들이 예배하고 다투워 헌금하고 있다.
나는 일본국에서 유명한 천리교본부도 찾아갔다. 천리교는 시골 무명의 아낙네가 산기도 끝에 창교한 교단이다. 놀랍게도 천리교에는 천리시(天理市)가 있었다. 그 도시에는 중,고등학생들의 교복의 등 쪽에는 천리(天理)가 적혀 있었다. 본부의 목조 건물에는 수많은 남녀들이 걸레로 목조 건물의 마루 등을 닦으며 주력(呪力)으로 “천리(天理)”를 반복하여 염불 외듯 하였다. 나는 그 의미를 물으니 “만병통치요, 한 가지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나는 천리교를 창교한 신비한 아낙네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나는 큰 무례를 범했다. 사람들이 없을 때, 절대 엄금인 성역 안으로 돌진하였다. 겹겹이 드리워져 있는 베일을 걷어가며 들어가니 마지막에는 그 아낙네의 얼굴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나의 상상은 깨졌다.
마지막 성소에는 일본을 상징하는 빛나는 동으로 만든 태양이 나무 걸개에 걸려 있을 뿐이었다. ”아아!“ 나는 감탄사를 토하며 역시 재빨리 성소에서 빠져 나왔다. 차제에 천리교를 신앙하는 신도들에게 한국 조계종의 비구승이 무단 침범 한 것에 대해 깊이 사과한다. 천리교는 이제 세계적 종교가 된 지 오래이고 경의로 박수를 보낸다.
나는 신흥교단에 대해 무한한 신비감과 경외감과 호기심에 전국을 찾아 다녔고, 일본국에 까지 찾아 나섰지만 결론은 천편일율적(千篇一律的)인 것은 신비한 영적 능력이 있어야 교주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교주의 마음에는 오행공부가 기초가 되어 있었다.
인간의 화복(禍福)이나 국가의 흥망성쇠, 지구촌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오행공부로 통찰하는 능력위에 창교가 있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따라서 이 나라 능력 있는 명리학자는 교주가 될 수 있지만, 대부분 교주가 되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 양심적인 학자들로 나는 경의의 박수를 보낸다.
부처님은 만나서 가르침을 청하는 사람에게는 때로는 그의 삼세(三世=과거, 현재, 미래)를 말해주었다. 따라서 창교한 교주들은 부처님같이 수행을 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주로 인적이 끊긴 바위 동굴이나 고봉정상, 또는 바위 밑에서 또는 밤하늘에 별이 빛나는 우주를 관찰하여 어떤 신비한 영적인 깨달음을 얻었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것은 면벽참선(面壁參禪)하여 화두공부해서는 절대 얻을 수는 없는 마음공부였다.
언제부터인가, 한국불교는 팔만대장경의 설법으로는 호구지책(糊口之策)이 어려운 시절이 되어 버렸다. 영악한 중생들은 부처되는 것 보다는 자신과 기족이 건강하고 무병장수하며 부자 되기를 소망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지기수(不知其數)의 승려들은 사주공부, 즉 오행(五行) 공부를 하고, 풍수지리학을 배우는 것이다.
또한 신비한 귀신이야기와 한국인의 효사상(孝思想)과 조상숭배사상(祖上崇拜思想)을 이용하여 죽은 이의 천도의식으로 호구지책을 삼아야 효력이 있고, 앞서 열거한 교단들도 천도의식으로 호구지책을 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끝으로, 지구는 태양을 인연이 다할 때까지 돌고 도는 윤회열차와 같다. 우리는 윤회열차에 함께 탄 승객들이다. 무슨 종교를 믿던 안 믿던 인연이 다하면 죽고 만다. 석가도 갔고, 예수도 공자도 마호멧도 갔다. 외롭지 않으려고 내 종교만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방하착(放下着) 해야 할 일이다.
모든 종교는 언재 죽을지 모르는 윤회열차의 승객들에게 마음의 위안일 뿐이다. 작금에는 진심으로 위안의 말도 인색한 자들이 신불(神佛)을 팔아 중생이 죽던 말던 돈만 받아내면 된다는 자들의 전성시대이다. 제발 먹고 살기 고달픈 고해중생에 진심으로 희망과 용기를 주는 위안의 말씀이라도 해주고, 돈을 받던 말던 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주장과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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