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가 묻혀 있다는 금귀몰니형(金龜沒泥形)으로 잘 알려진 곳은 현재 중요민속자료 8호로 지정된 전남 구례군 토지면(土旨面) 오미동(오미동)의 운조루(雲鳥樓). 이 집은 영조 42년(1776년)에 당시 삼수부사를 지낸 유이주(柳爾冑)가 건립한 것으로 조선시대 양반가의 대표적인 집이다.
문화 유씨 중시조가 이 오미동에 구택을 마련한 것은 운조루를 짓기 120 여년 전으로 전해진다.
중시조로 전해지는 유부천(柳富川)는 왕조와 불편한 사이로 쿠데타를 음모하다 오미동으로 쫒겨와 살았다는 것. 그는 원래 축지법을 사용하는 등 술법에 능한 사람인데 풍수지리에도 밝아 집터를 잡고 주춧돌을 세우려는데 그곳에서 거북모양의 돌이 나왔다. 즉 이곳이 바로 풍수지리 비기의 금귀몰니형이었다는 것.
여기에 집을 짓고부터 유씨 집안은 자손은 물론 재물도 늘어나 지방 제일의 부호가 되었으며 그 돌거북은 가보로 전해진다. 어린아이 머리통만한 이 돌거북에는 ‘숭정기원후 삼병묘년 오미동 와가 개기시 소출석 전이 임술 오월 십일일 을사서(崇禎紀元後 三丙卯年 五美洞 瓦家 開基時 所出石 傳耳 壬戌 五月 十日日 乙巳書)’라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풍수지리서의 비기에는 금귀몰니(金龜沒泥), 금환낙지(金環落地), 오보교취(五寶交聚)의 세 진혈은 항상 한 지역 안에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금귀몰니형은 상대(上臺), 금환낙지는 중대(中臺), 오보교취는 하대(下臺)로 부르기도 하며 그 중에서도 하대를 가장 길지로 쳤다. 그 진혈에 양택을 지으면 자손번영과 고귀영달(高貴榮達)이 뜻대로 된다는 것이다.
이같이 문화유씨가 금귀몰니형, 즉 상대에 자리잡아 발복을 했기 때문에 남은 두 길지가 관심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비기대로라면 두 길지도 오미동 근처라고 생각, 이 명당 찿기에 재산을 탕진한 사람들이 많았다.
전남북은 물론 경상남북도 등지에서 더러는 양반들까지 이곳에 이주해 와 일확천금을 꿈꾸며 혈장을 찿았다. 그러나 노력없이 땅의 덕을 보려는 이가 생업에 충실할 리 없어 패가망신하고 떠나는 예가 많았다. 그래서 얼마 전까지 이곳은 으레 이런 사람들이 살고 간 빈 집 몇채가 있게 마련이었다고 한다.
[김호년 선생의 우리강산 풍수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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