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조선호텔 뒤에는 고종이 황제로 즉위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팔각정 건물인 환구단(圜丘襢)과 석고단(石鼓襢)이 있다.
환구단은 고종이 황제로 승격되자 태조를 태조고황제(太祖高皇帝)로 추존, 천신지지(天神地祉)에 제사를 올렸던 단이고, 돌로 북모양을 만들어 고종황제의 성덕을 찬양한 글을 새긴 것이 석고단이다. 주나라때 선왕의 공을 칭송하는 글을 돌북에 새겨 열 곳에 세웠다는 고사를 본떠 만든 것이라고 한다. 왜 북모양으로 돌을 깎았을까?
풍수지리 형국론에서도 북모양, 즉 고형(鼓形)을 빼 놓을 수 없다. 북의 기능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집약하면, 두드리면 멀리 울려 퍼진다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무속에서는 북 속에 사람의 이름을 써넣고 장수를 빌거나 출세를 기원하기도 한다. 조선 영조때 영의정을 지낸 김상로(金尙魯)의 묘는 대표적인 고형(鼓形)으로 꼽힌다.
경기도 화성군 우정면 조암리 쌍봉산 아래에 있는 김상로의 묘는 그 혈장의 형국이 북모양인데 북에 필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북을 두드릴 북채다. 두드려야 소리가 나기 때문이다. 김상로의 묘 앞산에는 집채 만한 바위가 있고 그 바위 위에도 바위가 올라 앉아 옆으로 길게 늘어져 꼭 북채 모양을 하고 있다. 북형국의 혈에 북채모양의 안산이 있어 북이 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에 명당이라는 이치이다.
그래서 이 자리를 잡아 준 지사는 안산, 즉 북채에 이상이 생기면 이 명당의 시운이 끝나는 것이니 그렇게 알라고 일러 주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해 여름 번개가 심하더니 벼락이 바위를 쳐서 북채바위의 중간이 땅에 떨어져 버렸다. 그 떨어진 바위가 지금도 그대로 있는데 그후 지사의 말대로 잘 지내던 김씨 가문은 후손들이 한때 저조했다고 전해온다.
[김호년 선생의 우리강산 풍수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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